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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知와 사랑(Philia Soph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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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0-07-06 11:13

심정석 / (사)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
8・15 해방을 맞아 일본 강점기를 벗어난 지도 75년이 지났다. 하지만 친일 논쟁은 여전하다.

나는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나 동면 산수골이란 마을에서 컸다. 산으로 둘러싸여 하늘만 뻥 뚫린
산골 마을이다. 일곱 살 되던 해 소학교에 들어갔다. 고개를 넘고 개천 하나를 건너 한 10리쯤
걸어서, 면사무소 와 주재소(파출소)를 지나야 내가 다니는 속초 소학교가 나온다. 나는 매일
주재소 앞을 지나야 했다. 괜스레 두렵고 무서웠다. 긴 칼을 찬 순사가 주재소를 지킨다. 순사는
어른이나 애나 다 무서워했다. 울던 아기도 저기 순사 온다고 하면 울음을 뚝 그친다는 시절이었다.

학교에선 한국말이 금지돼 있었다. 일본 말만 해야 했다. 내 이름도 ‘아오마쓰 마사오’라 불렸다.
담임선생님도 “하라가와 센세이(선생님)”라 불러야 했다. 늘 회초리를 들고 다니던 조선 여자
선생님이었다. 애들은 그녀를 무서워하였다. 교장선생님은 일본사람으로 늘 군복 차림에 별 달린
센또보시 라는 일본식 전투 모를 썼다. ‘이꼬’라는 예쁜 딸이 있는데 나하고 한 반이다. 딸 때문인지
우리 반을 가끔 둘러보곤 했다. 담임선생님보다 무섭지 않아 좋았다. 나도 커서 저 교장
선생님처럼, 별이 달린 센또보시 한번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것이 75년 전 그 시대 한
산골 아이의 일상의 모습이다.

소학교 2학년 때 815 해방을 맞이했다. 군복 대신 초라한 평민복 차림의 교장 선생님이 화난
군중들 앞에 서 있다. 죄인처럼 겁에 질려 땅만 내려다본다. 조심스럽게 머리 숙여 인사를 하고
부인과 딸을 데리고 쫓기듯 떠나갔다. 그 모습을 보니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반 친구였던
‘이꼬’가 마음에 걸렸다. 어린 내 마음에 그 아이가 불쌍하고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늘 칼을
차고 다니던 일본 순사는 동네 사람들로부터 매도 많이 맞고 간신히 쫓겨 갔다는 얘기를
어른들로부터 들었다. 교장 선생님 가족은 그런 험한 꼴은 안 보고 떠났으니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일본 국기의 빨간 동그라미에 칠을 하여 태극 무늬를 만들고 네 모퉁이에
건곤감리 그려 넣으시더니 “우리나라 태극기 되네” 하신다. 그때 태극기를 처음 만져 봤다.

사람들이 동네 공회당(公會堂) 마당에 모였다. 양복 차림의 신사 아저씨가 만세 삼창을 연달아
불렀다. 나도 태극기 들고 따라 불렀다. 그리고 긴 연설을 들었다. 내 어린 소견으로 다 알아들을 리
만무하지만, 마음에 와닿는 두 마디를 기억한다. ‘금수강산(錦繡江山)’, ‘삼천만 동포’라는 단어가
나도 모르게 뇌리에 깊이 각인 됐다. 훗날 나의 정체성이 흐려질 때 내가 누구인가를 일깨워 줬다.
삼천리 금수강산은 내 나라의 몸통이요 그 자태다. 삼천만 동포는 내 나라 주인이요 신명 들린
장인(匠人)들이다. 이렇게 개념화하고 되새며 내 나라 소중함을 새겨왔다.

60년대, 참 배고프던 때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못사는 나라,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랴’며
조롱받던 나라였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 ‘우리도 할 수 있네’ 노래하며 애국하는 형님들 독일
탄광으로, 누나들은 병원으로 남들 싫다는 궂은 일 마다 않고 한푼 두푼 벌어 모은 외화, 조국을
위해 송금하였다. 이 돈은 고속도로, 제철공장, 조선소를 짓는 종잣돈이 됐다. 삼천만 동포가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어느새 삼천리 금수강산 아름다운 자태 뽐낼 날이 다가왔네.

삼천만 동포? 아니다. 남한에 5천2백만, 해외동포 750만, 그리고 북한 동포를 합산하니 얼추
팔천사백만으로 3배나 자랐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Reproduce, Multiply)하라 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온전히 감당했구나 싶다. 이들이 대한민국의 주인이요 민족 자산이다. 세계 방방곡곡
흩어져 살게 하신 Korean Diaspora를 앞으로 어떻게 쓰실 계획이신지 참으로 앞날의 열매가
궁금해진다.

밴쿠버 행 오후 6시 반 출발 대한항공 비행기를 탔다. 영종도 바다를 뒤로하고 서울 하늘을 한
바퀴 휘도는 동안 창문 밖 야경을 정신없이 내려다본다. 장관이다.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가로지른
저 수 많은 다리가 도대체 몇 개나 되나? 세고 또 세다가 손가락 수가 모자라 포기하고 만다. 60년대
처음 고국을 떠날 때는 노량진 한강 다리 하나였지… 전쟁하느라 부서지고 망가진 그 많던 아픈
상처의 잿더미는 누가 어디다 다 감추었는지… 하늘로 향해 치솟은 저 많은 빌딩은 다 누가
지었지? 사막처럼 벌거숭이 민둥산들은 다 어디다 숨겨 놨지? 산마다 짙게 덮은 녹음 속에 깊숙이
숨겨 놓았나?. 원,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다니. 세계에서 열 번째로 잘사는 나라, 세상이
부러워하는 나라 대한민국. 눈물이 난다. 감격해서다. 아직 허리는 잘려있어도 삼천리 금수강산의
그 본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누나. 동방의 귀한 나라 대한민국이여 “비바 비바(Viva viva)”를
외치고 싶다.

지난주 CBMC 조찬 모임에서 강사님이 묻는다 “당신은 아는가, 대한민국을…” 아무럼요,
알다마다요. 우리는 강인하고 신바람 나는 민족, 세상을 웃기고 울리는 신명 들린 예술혼의 민족,
발명 문자 훈민정음을 만들어 쓰는 나라, 문자 만든 날을 기념하는 유일한 민족이라는 것을…

홍익인간 하는 축복의 통로 되는 나라, 대한민국은 참 멋있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 그 나라
국민임을 당신은 아시느냐고요?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저 맹목적으로 처음부터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워서 나를
알아가고, 그리고 행동하는 Philia Sophia임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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