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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도 말고 두려워도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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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0-01-06 11:12

심정석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인간은 근심하며 사는 존재임에 틀림없다. 오지 않은 일을 가지고 온 것처럼 미리 걱정하고,
이미 지난 일인데도 놓지 않고 여전히 걱정한다. 걱정 안하여도 될 일을 걱정하니 다 부질 없는 일이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다.”는 티벳의 속담이 있는데, 참으로 맞는 말인 것 같다.
쓸 데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걱정을 하고 사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고 (잠언 17:22),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는 (잠언 15:13)
독약이 된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염려하지 말고 근심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근심 없는 삶,
그 얼마나 좋으랴!  스트레스가 없는 삶이다. 두려움이 없는 삶은 행복한 삶이다. 그런 삶이 과연 가능할까?
“근심이 없게 하소서”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던 야베스(역대상4:10)처럼 나도 매일 “근심이 없게 하소서”라고
 기도를 한다. 근심과 걱정의 원인은 두려움이다. 두려움 때문에 근심하고 걱정한다.
그런데 이 두려움이 암을 유발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한다.
암 치료의 권위자 김의식 박사의 오랜 연구의 결과이다. 오늘날,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암에 걸린다고 하니,
우리 모두 두려움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암으로 투병 중에 계신 교회 성도님의 소식을 들었다. 중보기도 팀의 기도 부탁도 함께이다.
오랫동안 치료를 했지만 암세포가 다른 장기로 전이되었다고 한다. 얼마나 낙심되고 두려울 까.
측은하고 안타깝다. 동병상련의 아픔이다. 남의 일 같지 않다. 
내 몸 한 구석에서도 암세포가 이리저리 퍼지는 것 같다.
순간적으로 맞닥뜨리는 이 느낌에 놀라 애써 나름대로 두려움에서 벗어나려 애를 써 본다.
나이를 먹으면서 더 자주 느낀다. 그러니 이것도 다 늙음의 증상일까? 그런데 결코 즐겁지가 않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옛말이 있다.
한번 암에 걸려 놀란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이런 이야기가 결코 남의 일로 들리지 않는다.
이런 내 연약한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고 때로는 부끄럽기 조차 하다. "암은 병이 아니다”
의 책 저자 안드레아스 모리츠는 “암의 근본 원인은 두려움”이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내가 두려워하면 할수록 암은 더 퍼질 것만 같다. 그래서 근심도 걱정도 말아야지, 두려워하지도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사람은 평생을 살아가면서 생로병사의 네 가지 순서를 밟게 된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순서이다. 
이런 순서를 거쳐 사노라면 각자 나름대로 고통의 산을 넘는다. 나도 암 선고를 받아 투병의 체험을 했다.
24 년 전의 일이다. “직장암입니다. 수술을 빨리 하셔야겠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선고를 듣는 순간 세상이 끝나는가 싶었다. 암에 걸리면 당장 죽는 줄로 생각했다.
몹시 두려웠다. 나 혼자만의 외로움이 다가왔다. “왜 나에게 암이?” “하필이면 왜 나야?”
투정하는 마음이 생겼다. 나 혼자만 당하는 것 같아 억울하기도 했다.
착잡한 마음속에 순간순간 여러 가지 영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정으로 수술대에 올랐고,
전신마취 주사 한 대 맞고 잠을 자고 나니 모든 것이 끝나 있었다. 그런데 고통은 그 다음부터 시작되었다.
수술 받고 3일쯤 지나 담당 의사 선생님이 병실로 나를 방문 했다. 2-
3개월만 늦었어도 암세포가 다른 곳으로 전이되었을 뻔 했는데  적시에 발견하여 불행 중 다행이라 했다. 
그리고 약물 치료나 방사선 치료는 안 해도 된다면서 위로를 해 주었다. 그런데 항문이 없어졌다.
직장과 항문의 경계에 암이 위치하고 있어 불가피하게 항문은 폐쇄했다고 했다.
대신 나는 배꼽 왼쪽에 인공항문을 설치하고 배설물 주머니를 달고 살게 됐다. 
인공항문을 영어로 오스토미(Ostomy), 배설물 주머니를 오스토미 파우치(Ostomy Pouch)라고 한다.
그리고 인공항문 환자를 장루설치환자(오스토메이트, Ostomate)라 부른다.
그리 흔치 않은 의학용어들이다. 그때부터 나는 생체공학적 인간(Bionic
Man)이 되었고 만 24년째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로 인해 곤혹스런 사건도 많이 겪게 되었는데,
그 중 한 가지만 소개하겠다.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할 때마다 공항 보안검색대에서 몸수색을 받게 된다.
그런데 내가 착용한 배설물 주머니에 개스나 배설물이 모이게 되면 이 주머니가 두둑해지게 되어서 자살 
폭탄으로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특히 영어로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나라에 가면 흔치 않은 의학 용어라 설명하기도 어렵고 알아듣기
도 어렵다. 어느 해인가 결국 나는 밀실로 끌려가게 되었고, 옷을 벗고 확인시켜 주는 작업을 해야 했다.
이런 확인 절차는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다.
다 마치고 밀실을 나올 때면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고,
더럽다고 코를 가리고 도망치듯 하는 사람도 있다. 선진국과 후진국 차이를 여기서도 경험했다.
그러니 암환자는 육신의 아픔만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와 수모까지도 다 감내해야 한다.
그럴 때 속으로 “나 이런 것쯤 너끈히 감당할 수 있어. Yes, I can take it!”
하며 호주머니 속에서 주먹이라도 불끈 쥐어 보노라면 울적한 심사가 조금은 풀린다.

건강한 사람도 보통 삼만 개 이상의 암세포를 몸 안에 지니고 산다고 한다. 그 암세포는 
혈액을 통해 몸 안을 돌고 돈다. 몸에 해를 주지도 않는다. 단지,
우리 몸 안 조직이나 장기에 상처가 나거나 그 부분이 병들어 약해지면 암 세포가 둥지를 틀고 번성하게 된
다. 암 덩어리로 커지게 되면 그때서야 암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그러고 보면,
암이 나를 먼저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프기 때문에 암이 생기는 것이다.
몸 세포나 장기 조직을 약하게 만들거나 상처를 제일 많이 주는 위험요소는 우리가 매일 먹고 사는 음식(60
-70퍼센트)이다.  그래서 음식은 알고 먹어야 한다. 이것이 암 예방을 위해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내가 겪은 직장암도 내 몫을 다 하지 못해 얻은 결과이다.
나는 영양학을 가르치는 대학교수로 일생을 살아왔다.
몸은 먹는 음식대로 닮아 간다고 학생들에게 그렇게 강조하던 내가 아니었나?
지식이 없어서 암에 걸린 것이 아니라 지식을 버렸기 때문에 암에 걸렸나 보다(호세아 4:6).
나는 지식을 되찾아야겠다고 단단히 다짐했다.  그리고 아는 지식을 실천에 옮기는 노력을 해 왔다. 
그래서 24년째 건강하게 살고 있으니 이 또한 암 투병에서 얻은  유익한 선물이다.
새옹지마란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인지도 모른다.
병이 들어 근심, 걱정으로 온통 애를 썼던 과거를 생각하면 부끄럽다.
그 병은 수술 흔적만 남기고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이모저모로 유익한 아픔이었기에 나는 이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축복이 주어지는 것이라면 고통도 주어지는 것이고, 고난의 시간 동안 나는 성숙했노라고.
슬픔이 와도 또한 기쁨이 와도, 마음을 비운 사람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능히 감당할 수 있다.
그러면서 주옥 같은 지혜를 또 배운다. 암 치료에는 신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감정적,
정신적 건강의 회복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나는 축복도 받고 고통도 받았다. 생로병사의 삶의 순서마다 고통과 두려움은 우리와 함께 한다.
그러나 그것이 암이라도 두려워하지 말자. 암은 미워할 대상도 아니고 두려워 할 대상도 아니다. 다만,
달래가며 더불어 살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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