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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번째 이야기 – 두발의 총성

이정운 변호사 piercejlee@hot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1-04-29 13:57

1948년 9월 11일 밴쿠버 아일랜드 (Vancouver Island) 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사냥철이 시작되는데 이날은 사슴과 들꿩 (grouse) 사냥철이 시작된 첫날이었습니다.

로버트 루이스 (Robert Lewis) 와 그의 일행은 퀸삼 레이크 (Quinsam Lake) 인근으로 들꿩을 잡으러 갔습니다. 이날 퀸삼 레이크 주변으로 사냥을 간 또 다른 일행이 있었는데 데이비드 쿡 (David Cook) 과 그의 친구들이었습니다.

루이스 일행이 나무숲을 지나가고 있을 때 바로 옆에서 들꿩 한 떼가 날아올랐고 마침 주변을 지나가던 쿡 일행은 이때를 놓칠세라 총을 겨누었습니다.

쿡 과 그의 친구 에이킨헤드 (Akenhead) 는 루이스 일행 방향으로 거의 동시에 각자의 산탄총을 발사하였고 연이어 숲 속에서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루이스가 피를 흘리며 나타났습니다.

얼굴에 산탄을 맞은 루이스는 이 부상으로 결국 한쪽 눈을 실명하게 됩니다.

루이스는 쿡 과 에이킨헤드를 상대로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데 배심원 재판이었던 1심에서 그만 패소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루이스에게 부상을 입힌 산탄이 누구의 것이었는지 밝힐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원고는 피해를 당한 사실과 피고의 과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루이스에게 부상을 입힌 산탄이 누구의 것이었는지 판단할 수 없었던 배심원단은 쿡과 에이킨헤드 둘 다 과실이 없었다는 어처구니없는 판단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당연히 1심의 결과는 항소 되었고 항소심에서 이 결과는 뒤집히게 됩니다. 그 이유는 1심의 판사가 배심원단에게 잘못된 법을 설명해주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항소심의 결과는 결국 대법원에 다시 한번 항소 되는데 랜드 (Rand) 대법관과 에스티 (Estey) 대법관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밝힙니다.

“만약 배심원단이 루이스에게 부상을 입힌 산탄이 쿡 또는 에이킨헤드의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했다면 쿡 과 에이킨헤드는 각각 자신의 과실이 없었음을 밝힐 의무가 있다. 만약 둘 다 자신의 과실이 아니었음을 밝히지 못한다면 둘 다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이유는 둘이 거의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산탄을 발사함으로써 루이스가 자신의 부상이 누구의 과실 때문에 발생했는지 밝혀낼 수 있는 능력을 앗아갔기 때문이다.”

즉 이런 경우 과실을 증명해야 하는 책임 (onus of proof) 이 원고에서 피고로 넘어간다는 것이지요.

물론 쿡 과 에이킨헤드 어느 쪽도 자신의 과실이 없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없었고 결과는 루이스의 승소로 끝나게 됩니다.

*법적 책임면제고지: 이 글은 법률 조언이 아니며 저자는 이 글에 대한 일체의 법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법률 조언이 필요하신 분은 변호사를 찾으십시오.

 

 



이정운 변호사의 풀어쓴 캐나다법 이야기
칼럼니스트: 이정운 변호사
  • UBC 로스쿨 졸업
  • UBC 경제학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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