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열여덟 번째 이야기 – 해들리 형제의 방앗간

이정운 변호사 piercejlee@hot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1-04-22 13:55

1850년 영국의 글로스터 (Gloucester) 지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잉글랜드 남서부에 위치한 글로스터는 로마시대의 흔적을 아직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그 역사가 길 뿐만 아니라 세번 (Severn) 강 주변에 자리 잡고 있어 중세시대부터 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글로스터 항 (port) 에는 많은 양의 밀이 가공되지 않은 밀알 형태로 수입되었는데 이 밀알은 수로를 통해 근교의 많은 방앗간으로 운반되어 제분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방앗간 대부분이 수력에 의존했기 때문에 많은 양의 밀을 제분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사업 영감을 얻은 조셉 해들리 (Joseph Hadley) 와 조나 해들리 (Jonah Hadley) 형제는 글로스터에 대규모의 방앗간을 짓기로 하는데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증기기관이었습니다. 18세기 급속도로 개량된 증기기관은 어느덧 수력에 의존하는 물레방아를 대신할 정도가 되었던 것이지요.

증기기관을 이용한 해들리 형제의 방앗간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해들리 형제는 넘쳐나는 일감을 감당하기 위해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때 증기기관 중 하나의 크랭크축 (Crankshaft) 에 균열이 생겨 작업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문제는 이 크랭크축과 꼭 같은 것을 새로 주문하려면 망가진 크랭크축을 제조사에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해들리 형제의 방앗간에 사용된 증기기관을 만든 회사는 런던의 그리니치 (Greenwich) 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해들리 형제는 픽포드앤코 (Pickford & Co) 라는 택배회사에 망가진 크랭크축을 그리니치까지 배달해 달라고 부탁하고 2파운드 4실링을 지불합니다. 하지만, 픽포드앤코는 크랭크축을 예정된 날짜보다 무려 5일이나 늦게 배달합니다.

큰 성황을 맞던 해들리 형제의 방앗간에게 5일은 적지 않은 시간이었고 이 기간동안 놓친 일거리의 양도 상당했습니다. 따라서 해들리 형제는 픽포드앤코의 사장 (senior partner) 중 한 명이었던 백센데일 (Joseph Baxendale) 을 상대로 글로스터 순회 재판소 (Gloucester Assizes)에서 소송을 시작합니다. 근거는 계약위반 (breach of contract) 이었습니다.

이 소송에 논점은 계약위반이 아니라 손해배상의 범위였는데, 과연 해들리 형제는 “5일간 놓친 일감에 대한 손해 배상을 받을 수 있느냐?”하는 것이었습니다. 순회 재판소의 판사는 해들리 형제의 손을 들어주며 계약위반에 따라 자연적으로 발생한 결과에 픽포드앤코는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하였고 배심원들은 손해배상금으로 50파운드를 지불할 것을 명령합니다.
하지만, 픽포드앤코는 재무법원 (Court of Exchequer) 에 새로운 재판을 명령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1854년 재무법원 판사는 순회 재판소의 판결이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하고 새로운 재판을 명령합니다. 이유는 계약위반의 경우 피고는 오직 예측 가능한 범위내에서만 손해배상을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픽포드앤코는 크랭크축을 제날짜에 배달하지 않으면 해들리 형제가 큰 손해를 입으리라는 것을 예측할 수 없었다는 것이지요. 이는 해들리 형제가 당시 상황을 픽포드앤코에 충분히 설명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후 해들리 형제와 픽포드앤코는 법원 밖에서 합의를 했는지 새로운 재판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해들리 대 백센대일 (Hadley v. Baxendale) 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이 판례는 오늘날 계약법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법적 책임면제고지: 이 글은 법률 조언이 아니며 저자는 이 글에 대한 일체의 법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법률 조언이 필요하신 분은 변호사를 찾으십시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