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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스케치] 3시간쯤 기다리는 것은 ‘엑스트라’의 숙명

한혜성 기자 helen@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0-08-27 15:13

지난 7월 말, 보조연기자(엑스트라) 전문 모집업체에서 협조요청이 들어왔다. 한국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TV영화 촬영을 위해 한국인 보조연기자를 모집하고 있는데, 촬영날이 코 앞인데도 필요한 모집인원에서 한참이나 모자란다며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물어왔다.

자세한 사정을 알아본 후, ‘한국인 보조연기자 모집합니다’라는 제목으로 7월 29일 기사화했다. 밴조선 웹사이트와 신문 지상에 기사가 나가고 얼마 후, 샌드라 쿠드웰(Couldwell) 보조연기자 모집 담당자로부터 필요 인원 100여명을 대부분 모집했다며 감사 이메일을 보내왔다.

쿠드웰씨는 “아주 재미있는 경험이 될테니 하루 정도 직접 보조출연자가 되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해왔다. 보조출연자가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흥미가 생기기도 했고, 기사를 보고 신청한 밴조선 독자 상당수가 영어 의사소통이 매끄럽지 않아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18일 하룻동안 보조연기자를 되어보기로 했다.

등록을 한 뒤, 자세한 연락을 받은 것은 촬영일 바로 전날 밤이었다. 마지막까지 신청자들이 출연의사를 번복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후 8시 30분쯤 받은 이메일에는 밴쿠버 이스트 지역 촬영장의 주소와 도착시간, 필요한 의상(최소 3벌 이상), 사회인다운 메이크업과 헤어를 갖추고 올 것 등의 지령이 전달됐다. 이메일에는 긴 대기시간을 위해 책이나 게임기 등을 가져오라고 적혀있었다.

드디어 촬영일이 됐다. 오전 9시 30분에 보조연기자 대기실에 도착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도착시간, 개인 신상정보 등을 등록지에 적어냈다. 곧, 의상 담당자가 와서 각자 가져온 의상을 검사하고 촬영에 적합한 코디를 제안했다. 9시 30분에 시작하는 보조연기자는 1인당 2~3번씩 호출을 받는데, 각 신당 다른 사람처럼 보여야하기 때문에 의상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의상을 검사받고 나서부터는 하염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됐다.

보조연기자들은 ‘콜(call)’이 있을 때까지 대기실에서 나름대로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대기실 안에만 있으면 무엇을 하든 큰 제약은 없었다. 다행히 노트북을 가져간 터라 짬이 날 때는 기사작성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다른 출연자들은 서로 담소를 나누거나 책∙휴대용 게임을 즐겼다. 출연자 및 스태프를 위한 작은 스낵 코너에는 커피나 스프 등 간단한 먹을 것이 마련되어 있었다.

UBC 약대 대학원생, 일반 사업가, 주부, 학생 등 참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모였다. 아이가 둘 있다는 한 주부는 “생활이 무료해 오늘 하루 보조연기자 신청을 했다”며 “색다른 경험이라 신기하고 돈도 벌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대기실에 있다가 잠시 휴식이 필요할 때는 촬영이 없는 빈 촬영세트를 돌아봤다. 영화가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있어 촬영장소 곳곳이 한국처럼 꾸며져 있었다. 보조연기자 대기실 바로 옆에는 한국 시장이 들어섰다. 시장 풍경을 100% 재현해내지 못해 다소 어색한 부분도 있었지만 한국말로 된 현수막은 정겨웠다.

오전 11시쯤 보조연기자 ‘콜’이 들어왔다. 첫 촬영은 정거장에서 택시를 기다리는 신이었다. 보조연기자들은 연기 지도자로부터 간단히 각자 해야할 역할을 부여받았다. 특별히 연기가 요구되지 않는 자연스럽게 길을 걷거나 택시를 기다리는 역이었다. 주 연기자들이 수차례 리허설과 본 연기를 하는 동안 타지도 못할 택시를 기다리며 3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코업비자로 밴쿠버를 방문했다는 20대 여성은 “3시간씩 기다리는 건 지루하지만 영화 촬영에 참여한다는 것이 너무 즐겁다”며 호기심어린 눈으로 촬영장 구석구석을 사진기에 담았다.

첫번째 촬영이 끝난 뒤, 오후 2시부터 3시까지는 점심시간이었다. 부페식으로 마련된 점심식사는 각종 고기류와 샐러드로 이뤄진 식단으로 제공됐다. 점심식사가 끝나고 4시쯤 대기 중인 보조연기자 중 15명이 다음 촬영을 위해 대기실을 나갔다. 대부분은 오전 7시 30분부터 대기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9시 30분 촬영을 시작한 보조연기자들도 6시경 행인으로 출연하기 위해 대기실에서 4블록 정도 떨어진 촬영세트로 향했다. 점심식사 후 3시간을 기다리고 시작된 촬영이었다. 밴조선을 읽고 보조연기자를 신청했다는 40대 후반 한인은 대기시간 중 “이렇게 아무 것도 안하고 돈을 받는건 아무래도 좀 미안하다”고 웃으며 “오늘은 첫 날이라 아무 할 것도 안 가져왔는데 내일 촬영에는 꼭 책이라도 가져와야겠다”고 말했다.

모든 촬영은 해가 지기 전, 오후 8시쯤 끝났다. 보조연기자들은 모두 대기실로 돌아와 서류에 촬영종료 시각을 적고 짐을 챙겨 떠났다. 다른 날에도 촬영이 가능한 사람들은 따로 신청을 할 수 있었다. 출연수당은 시간당 10달러씩 계산되어(출연분량이 많거나 요구하는 소품을 가져오면 출연수당이 더 높다) 다음주에 체크로 일괄 발송이 된다고 했다.

보조연기자로 지낸 하루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촬영현장에서는 걷기, 시계보는 동작 하나하나 신중해야 했다. 혹시라도 실수해서 모든 촬영을 망칠까봐 익숙하지 않은 카메라 앞에서 긴장하는 보조연기자들도 있었다. 한 영상작품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엔딩 크레딧에도 이름이 올라가지 않는 보조연기자들의 노고가 숨겨져 있던 것이다.

글∙사진=한혜성 기자 helen@vanchosun.com


 

<▲ 촬영을 준비 중인 스태프들.>


<▲ 한국시장처럼 꾸며진 촬영세트.>


<▲ 보조연기자들은 감독이 주연에게 연기지도를 하거나 카메라를 재정비하는 동안에도 제자리에서 움직이지않고 계속 기다려야한다.>


<▲ : 보조연기자 대기실은 허름한 건물 2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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