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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동호회 “타임아웃이 없는 시합의 재미, 느껴 보실래요?”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07-04 12:04

밴쿠버 한인야구리그 “K리그” 윤재식 회장
일본의 만화 작가 아다찌 미쯔루는 자신의 역작 “H2”에서 야구의 매력을 다음과 같이 단 한줄로 요약해 버린다.

“타임아웃이 없는 시합의 재미를 가르쳐 드리지요.”

맞다. 축구나 농구와는 달리 야구는 처음부터 정해진 끝에 매어있지 않다. 양팀에게 주어진 균등한 기회가 완전 연소되기 전까지, 전광판의 불은 꺼지지 않고 꺼져서도 안 된다. 그게 야구다.

H2는 또한 야구와 인생이 어느 면에서는 무척 닮아 있다고 묵묵히 말한다. “초반에 대량 실점했어도 만회할 기회는 충분한” 야구의 속성처럼, 우리네 인생 역시 마찬가지다.

어찌됐건 다양한 생각거리를 주는 이런 야구를, 소파 깊숙한 곳에 앉아 TV를 통해 바라만 보는 것도 그리 나쁜 취미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H2 속 주인공 히로의 또 다른 명언 그대로 “야구는 보는 게 아니라 하는 것”이고 그럴 때 더 신이 나기 마련이다. 이곳 밴쿠버에도 보는 야구가 아닌 하는 야구의 재미를 온전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들은 바로 밴쿠버 한인 야구리그, 즉 “K리그” 소속 아마추어 선수들. 이 리그의 회장인 윤재식씨를 야구하기 좋은 어느 여름날 만났다.



“2008년 시작된 한인들만의 야구리그”
K리그의 거의 모든 선수들이 그렇겠지만, 윤재식씨 역시 뼛속부터 야구광이다. 어린 시절부터 MBC 청룡을 좋아했고, 캐나다에 정착한 후에도 그 후신인 LG 트윈스를 여전히 응원한다. 그런 그가 밴쿠버 한인 야구팀과 인연을 맺게된 건 무척 자연스러워 보인다.

“K리그는 현재 총 7개 팀으로 꾸려지고 있는데, 저는 그 중 한팀인 아리랑에서 뛰고 있습니다. 전년도 우승팀에서 회장을 선출하는 관례에 따라, 올해 회장으로 일하게 된 거구요.”

윤 회장의 말에서 확인되듯 지난해 K리그 우승팀은 아리랑이었다. 이외에도 밴디츠, 슬러거스, 파이러스, 블링스, 카리스, 레전드 이렇게 총 7개팀이 K리그에 있다.

“몸집은 지난해에 비해 팍 줄었어요. 작년만 해도 10개팀이었으니까…. 사람들이 빠져나간 빈 자리를 젊은 친구들이 메꾸지 못한 결과죠. 또 다른 한팀은 밴쿠버내 아시안리그(한국, 중국, 일본이 함께하는 아마추어 리그)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고….”

겉모습은 작아졌지만, K리그가 처음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던 2008년 때와 비교하면 그 속은 일취월장이란 사자성어가 저절로 연상될 만큼 견고해졌다. 

“당시엔 팀이 4개밖에 없었는데, 처음이라 경험이 없어서였는지, 미숙한 점이 많았다고 들었어요. (윤재식씨는 2009년, 아리랑에 가입했다.) 경기장 사용 허가 없이 시합을 하기도 해서, 곤란한 일이 자주 벌어지곤 했더랬죠. 지금에야 뭐 그저 추억담일 뿐이지만….”

사전 허가 없이 경기장을 뛰던 선수들은 이른바 “도둑 야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황금 같은 휴일, 야구를 하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아침 일찍 모였건만, 누군가 구장을 선점하는 경우가 많아 허탕치기 일쑤였다. 한 시합을 이 구장, 저 동네를 옮겨 가며 치른 적도 여러 차례였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초년생 K리그는 체계 갖추기에 나서게 된다. 

“팀당 회비를 걷어서 그 돈으로 경기장을 빌렸고, 자격이 있는 정식 심판을 초빙하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하다보니 그럴싸한 리그의 모습을 갖게 된 거죠.”



7월 19일, 처음으로 올스타전을 마련합니다”
달라진 것은 겉면만이 아니다. 선수들의 실력도 점차 나아졌다. 처음에는 외야로 날아오는 타구를 그 누구도 손쉽게 처리하지 못했지만 이것도 대부분의 선수들에겐 이젠 옛날 얘기다.

“아리랑팀의 경우 리그 준비 기간에는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 꾸준히 연습을 해오곤 했어요. 저희 팀에 프로 출신이 한 명 있는데, 그 선수가 나머지 선수들의 기량 향상에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실력이 좋아지면 그 재미도 덩달아 늘어난다. 원하는 곳에 공을 뿌릴 수 있고, 그 공을 몸의 탄력을 이용해 때려낼 수 있게 되면,  주말 골퍼가 운좋게 버디를 잡았을 때와 비슷한 쾌감이 느껴진다. 그 쾌감이 이민 생활의 활력소가 되어준다는 얘기에, 윤재식씨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시합하러 온 선수들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이들이 야구를 얼마나 순수하게 좋아하는지. 이처럼 뭔가 하나에 푹 빠질 수 있다는 것, 이게 이민생활의 재미 아닐까요?”

하지만 혼자서만 좋아할 거리를 찾는 아빠나 남편을 가족들이 쉽게 내버려 두기는 힘들 것 같다. 그래서 K리그의 “기특한” 선수들은, 가족도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7월 19일 오후 7시, 뉴웨스트민스터 퀸즈파크 경기장에서다.

“처음으로 올스타전을 준비했어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우리가 시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였죠. 처음 입장하는 100명에게는 도시락도 제공되니까, 많이들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올스타 경기에 앞서, K리그 각 팀들은 그 문을 언제든 열어 두고 있다. 윤재식씨는 야구를 좋아한다면 누구든 팀에 들어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럼 어떤 팀을 골라야 할까? 

“야구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은 분명 있지만, 팀마다 제각기 다른 색깔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팀을 선택할 때에는 먼저 이 특성을 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희 팀의 경우에는 야구만큼이나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합니다. 주당들이 모여있는 어느 팀은 술자리를 자주 갖는 걸로 알고 있구요. 승부욕이 강한 팀도, 그냥 노는 걸 즐겨하는 팀도 있습니다.”

끝으로 윤재식씨에게 K리그를 한마디로 요약해 달라고 부탁했다.

“음, 야구에 미친 사람들의 모임, 그게 전부죠.”

이 말 뒤에 그는 한마디 더 덧붙였다.

“미친척 하는 분들은 사양이에요. 여차저차 가입은 돼도 오래 버티지 못할 테니까요.”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 >K리그 선수들은 유통회사 직원부터 리얼터까지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다. 윤재식 회장(사진) 연방경찰(RCMP)에서 오랜 시간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K리그 다음 카페 cafe.daum.net/v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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