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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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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3-09-01 09:44

김보배아이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1년 동안 미치도록 사랑한 장소가 있다. 그곳은 실제로는 본 적이 없는 장소였고, 가본 적도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침에도, 저녁에도 들락거렸다. 내가 드나든 그 곳은 캐나다 로키산맥에서 가까운 캘거리 외곽에 위치한 한 주택이다. 지금부터 본 적도, 가본 적도 없는 집을 사랑하게 된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려 한다. 

2019년, 어느 날, 집을 공짜로 준다는 믿기 어려운 뉴스를 보게 되었다. 캘거리 외곽에 ‘밀러 빌’이라는 마을에 작은 호숫가, 언덕 위의 그야말로 그림 같은 집에 사는 부인이 있었다. 부인은 자신의 집을 부동산 시장에 내놓아 팔지 않고 스스로 다음 주인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녀가 내 건 조건은 “그 집에 살게 되면, 나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를 편지 한 장에 쓰고, 25달러 참가비를 보내는 것이었다. 집주인인 부인은 마음에 드는 사연의 주인공에게 그녀의 집을 공짜로 주겠다고 했다. (부인이 이사갈 집의 비용을 이 공모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참가비를 모아서 마련하겠다는 것) 저택은 당시 싯가로 1.7 million, 당시 한국 돈으로 셈하면 15억에 달하는 고급 저택이었다. 부인은 각종 방송국과 인터뷰를 해서 캐나다 전국에 공모전을 알렸다. 기사를 처음 보았을 때는 반신반의하였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날수록 공짜 집을 꿈꾸게 되었다. 거짓말을 안 보태고 시름시름 앓는 수준이 되었다. 꿈을 꾸면 꿀수록 어렸던 나에게 집이 되어 주지 못했던 아버지가 하늘에서 네 명의 손주와 나에게 집을 주려고 준비하셨다는 믿음까지 갖고 말았다. 

아버지는 내가 일곱 살 때 엄마와 헤어지셨기에 어린 시절 나의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아버지는 집을 짓는 건축가셨다. 아이러니하게도 남의 집을 지어주면서 정작 당신의 집은 짓지 못한 사람이었다. 
집이란 무엇일까를 고민할수록, 아버지라는 존재를 연상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바로 집의 지붕과 같은 존재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비가 오면 비를 막아주고, 눈이 오면 눈을 막아주고, 뜨거운 태양 빛을 막아주는 지붕이 바로 아버지의 역할이라고 말이다. 나는 지붕이 없는 집에서 어린 시절을 살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맑은 날에는 비록 그 존재의 필요성을 잊었다가도 비가 내리는 날에는 쏟아지는 비를 맞을 수밖에 없었던… 나를 보호해 주지 못하는 집에서 나는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순간 내 어깨는 움츠렸다. 갑자기 지구의 가장 어두운 곳으로부터 쌩한 바람이 불어와 내 가슴을 얼렸다. 비를 맞을 수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눈앞에 보여 내 눈엔 뜨거운 물이 가득 차올랐다. 눈을 꿈쩍이면서 양 소매로 연신 훔쳤다. 하지만 집과 아버지라는 연결고리를 만들어 내고 부터는 서러움이 떨치지 않았다. 내가 아이 네 명을 아등바등 키우면서 집이 없이, 수도 없이 이삿짐을 싸고, 때론 쫒겨나면서 힘들었던… 집 없는 설움이 목구멍을 가득 메웠다. 
'이건 분명 아버지가 생전에 못 한 선물을 이번에 해주시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 집은 종종 온 식구가 다 함께 투표하고, 영화 한 편을 고른 후에 무비 나잇을 하곤 한다. 한 번은 <인크레더블 2>를 고르게 되었다. 이 영화는 초능력을 소유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첫 영화의 성공에 힘입은 후속편에서는 엄마가 주인공이었다. 경제적으로 가족이 어려움을 겪던 와중에 엄마가 큰 회사에 채용되어 엄청나게 멋진 사택을 제공받게 된다.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지은 집인 유명한 낙수장(落水莊·Falling water)을 오마쥬 한 듯 절벽 위에 지어진 꿈같은 디자인의 외형이었다. 온 가족 구성원이 집안으로 들어설 때 현대적이면서 미니멀한 구조의 인테리어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모습이었다. 나는 전율했다. 내가 쓴 편지가 뽑혀서 밀러빌 저택으로 이사 들어가는 장면이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영화보다도 선명하게 내 눈앞에 나타났다. 우연히 고른 만화영화는 그야말로 계시의 메시지였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영화 속 장면의 전율이 가시지 않은 채 구름 속을 걷고 있는 나날이었다. 한 지인으로부터 6인용 고급 식탁을 물려받게 되었다. 섬세한 조각으로 마감된 식탁의 우아함은 바로 밀러빌 고급 저택의 분위기에 어울렸다. 내 마음을 그 누구도 막지 못했다. 어느새 나는 이삿날을 받아놓았다. 구질구질한 살림을 다 버리고 이사할 때 식탁은 꼭 가져갈 것이라 마음먹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밀러빌 집을 들락거렸다. 현관문을 들어서 가장 먼저 오른쪽에 위치한 반원형의 피아노 방은 둘째에게 줄까, 큰아이에게 줄까 고민하였다. 문이 없으니까, 우리가 들어가서 문을 달아야 하나 걱정도 되었다. 넓은 주방 카운터 위로 온갖 주방 도구를 늘어놓고 빵을 굽고, 쿠키를 구워서 이웃집에 배달하러 갔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을 긴치마를 나풀거리며 오르락내리락하였다. 차고 위에 위치한 작은 방은 당연히 남자애들 둘이 써야겠지. 이층침대를 어느 쪽 벽에 붙여 놓을까. 큰 방으로 향하는 복도에는 내가 찍은 사진들을 주욱 걸었다. 1층 거실에는 하루가 멀다고 집구경을 온 손님들이 가득이다. 나는 귀찮으면서도 좋아한다. 큰 맘 먹고 마련한 고급 찻잔에 몇 시간 동안 우린 대추차도 내고, 커피도 매일 몇 잔이고 홀짝거린다. 2층 거실에는 큰 스크린을 설치해서 영화관으로 만들고, 한 달에 한 번은 친구들을 불러라. 일주일에 한 번씩은 여자 셋이 자쿠지 목욕을 하기로 하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아침 해가 뜨기 전 새벽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숫가를 맨발로 나가 자갈돌을 밟는 것이다. 그러다가 해가 뉘엿거리면 막내인 승연이가 진흙을 가지고 놀 것이고, 나는 그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해 두지. 

집을 구경한다고 장거리 운전을 마다하지 않고 친구들이 놀러 오고, 한국에서도 한 번쯤 방문한다. 캐나다의 가운데 땅에까지 오는 먼 하늘, 그리고 먼 길이다. 우리집에 오는 사람들은 저마다 차안에서 일단으로, 이단으로 어떻게 그렇게 글을 잘 써서 ‘공짜 집’을 얻었는지 수도 없이 궁금해하리라. 큰길을 지나 작은 길을 둘레둘레 지날 때, 이미 이 마을의 아늑함이 맘에 들 것이다. 드디어 도착한 집 앞에 차를 세우면 모두의 가슴은 함께 두근거린다. 휘둥그런 눈들을 하고 집 안으로 들어서면 집주인인 나는 제일 먼저 지하 포도주 창고부터 보여준다. 달팽이처럼 돌돌 말린 계단 손잡이를 잡고 두 바퀴를 돌아 내려가면 차가운 기운이 이마를 스치고 가는 것이 좋다. 나선형 계단이 전부 차지한 공간이지만, 계단을 잡은 내 손이 조명을 받는 무대같은 공간이다. 작지만 사방으로 위로부터 아래까지 갖가지 포도주가 누워있고 쟁여있는 곳이다. 눈을 뜨면 그 집 안방이었고, 낮잠을 자고 깨면, 그 집의 발코니에서 일어났다. 밤늦도록 애들은 실컷 떠들게 놔두었다. 그래도 되니까 말이다.  

나는 이제 집을 가진 인류이다. 집을 짓는 아버지와 내 어려서 살고 싶었던 그런 집에서 산다. 나는 잘 쓴 편지 한 장으로 이렇게 근사한 집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상상의 나래와 착각의 늪을 원 없이 헤매며, 일 년이라는 시간은 흘렀다. 이윽고 대망의 결과를 발표했다. 공짜 집 이벤트는 뜻밖에도 참가자 수의 부족으로 두 차례의 기한 연장을 하고 결국은 무산되고 말았다. 황당무계한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나는 진심으로 만 하루동안 식음을 전폐했다. 하지만 그 하루와 밤을 보내고, 내 심연의 목소리가 잘 들렸다. 잘 놀았다고. 후회 없이 행복했노라고. 

일 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상상 놀이는 행복했고, 평생 그토록 열망하던 집이라는 대상에 대해 원 없이 생각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은 건물이 아니다. 공간이다. 집이 건물이라는 고정관념에 머물고 있으면 비참해진다. 세상 사람들을 집을 소유한 사람과 소유하지 못한 사람으로 구분하게 된다. 하지만 집을 건물이 아닌 공간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집은 낭만적인 장소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집이 아닌 무용학원에서 자란 나에게 무용실과 엄마의 사무실이 집 일 수 있었던 것이다. 집은 아름다운 시간과 즐거운 추억으로 채워지는 공간이다. 명품 냉장고와 식기세척기가 있는 곳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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