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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의 팔씨름 한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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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3-07-17 13:23

霓舟 민완기 /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챗 GPT라는 신기술이 요즘 하도 화제가 되고, 또 신통방통(?)하다기에 컴퓨터를 켜고 다운로드하여 떠듬떠듬 독수리 타법으로 몇가지 질문을 시험 삼아 해보았다.

“‘봄’이라는 제목으로 멋진 글을 한편 만들어주고, 또 주일 대표기도문도 함께 써 줘봐요.”

 나의 공손하고도 예를 갖춘 명령어에 이 친구는 순식간에 멋진 수필을 한 편 뚝딱 만들어서 대령을 하고, 또 교회 생활 30년은 족히 하셨을 장로님이 쓰셨을 만한 은혜 충만한 기도문을 떠억하니 화면에 올려주는 것이었다. 사실 수필은 중학교 작문 책에 실릴만한 순수 감성의 글 인지라 그 함량에 약간 실망을 하였지만, 대표기도문은 교회 행사와 기도 제목만 보충한다면 주일 강단에서 읽어도 그닥 손색이 없어 보였다.

 

이어 다음 질문을 타이핑 해보았다.

"59년생, 금년 64세 남자의 잔여 수명을 가르쳐 줘.”

공연히 불안한 마음에 존대를 생략하고 하대의 말투로 질문을 던지자, 질문자에 대한 어떠한 감정이나 배려도 없는 이 친구는 너무나 사실에 근거한 정직한 문장으로 내게 답을 알려준다.

“귀하의 인종과, 출신국가, 현 신체의 상태를 모르기에 정확한 대답을 드릴 수는 없으나, 21년 WHO 통계기준으로 귀하의 잔여 수명은 16년 남았습니다.”라고 답을 한다. 잠시 16이라는 숫자가 동공에 박히며 마음이 온통 납덩이처럼 무거워지는 중에 이 친구는 쐐기를 박고 만다.

“그리고 귀하의 건강 수명은 향후 8에서 10년 입니다.”

 

챗 GPT와의 짧은 만남 이후에 마음의 돌파구가 필요하였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책자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었다. 미수(米壽)를 지나 암과 씨름하던 이어령교수는 제자 한 명을 집으로 불러 평생의 수업을 정리하는 일대일 ‘마지막 수업’을 하기로 결심을 한다.

  ‘매일 밤 나는 죽음과 팔씨름을 한다네. 어둠의 손목을 쥐고서 말이야’ (p.25)

‘ 나는 육체와 마음과 영혼, 삼원론으로 삶과 죽음을 설명할 참이야.’ (p.28)

 그가 비어있는 유리컵을 사람의 몸이라 가정하여 제자 앞에 내밀며, 컵의 바깥 면에 닿아있는 끝도 없는 우주, 그것을 영혼에, 그 컵에 액체가 들어가 비운 곳을 채운 것을 마인드라 설명하는 부분에서 컵 하나로 바디와 마인드와 스피릿, 현존과 영원을 설명하는 노교수의 아포리즘에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암의 확산으로 더 이상은 글을 쓸 수 없게 된 시한부 인생 이어령은, 육필로 세 줄로 된 글, 3행시를 쓰며 고통의 밤을 보내곤 하였다.

 ‘발톱 깎다가 /눈물 한 방울/너 거기 있었구나, 멍든 새끼 발가락’ (p.82)

 

 세상 사람들은 그에게 ‘진리’와 ‘정수(精髓)’를 원하지만. 하이데거가 일상적 존재는 묻혀있는 거라 얘기한 것처럼 그는 덮어놓고 살지 말기를, 덮어 놓은 것을 들추는 것이 철학이고 진리이고 예술이라 역설한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감쪽같이 덮어놓은 것이 바로 죽음이며 그는 오히려 생의 절정이 죽음이라는 것을 대면하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분수가 하늘로 치솟아 정상의 꼭지점에서 꿈틀거리다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죽음은 삶의 절정, 삶의 대낮인 정오인 것이라고…

 

 또한 보통사람들은 비참한 자기 얼굴을 안 보려고 한다. 본질을 직면 할 용기가 없기때문이다. 하지만 자기 삶이 사소하면 사소한 대로, 비루하면 비루한 대로 정직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가르친다. 무엇보다 자신이 그 누구와 비슷한 사람이 아닌, 세상에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끝으로 시대의 지성이 마지막 강의중에 남긴 많은 어록 중에 가장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는 구절을 소개한다.

‘모든 게 선물이었다는 거죠. 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어요.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고.’  (p.375)

 

챗 GPT가 허락한 16년 세월을 나는 어떤 이와 어떤 팔씨름을 하며 생의 절정을 준비하여야하나 고민에 잠겨본다.

삼가 이어령 선생의 명복과 천국에서 따님과의 안식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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