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작년 9월에 주문했던 차가 일주일 내로 나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팬데믹으로 반도체 공급 난이 심해지면서, 신차 출고가 일 년씩 미뤄진 상태였는데 생각보다 빨리 새 차를 받게 되었다. 자동차 딜러는 운이 좋아 주문한 차가 빨리 나왔다며 좋아했지만,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십 년을 함께한 노후한 차와 이별해야 하는 순간이 왔기 때문이다. 살아있지 않은 대상에게서 생명체에서만 기대할 수 있는 어떤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15살이 된 낡은 차는 나의 십 년 이민 역사의 발자취이기도 하다. 2012년 7월에 캐나다로 오면서 2008년 식 중고차를 샀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 서 있던 회색 세단은 은빛으로 반짝였다. 아이들을 위해 카 시트 두 개를 장착하고, 낯선 땅을 달리며 사람 사는 거 어디나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이식이 잘 된 나무처럼 뿌리만 깊이 내리면 언젠가는 나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뚜벅 뚜벅 걸어 다닐 때는 멀고, 스산하기만 했던 길이 차를 타고 달리니 그럴듯한 외국 풍경처럼 느껴졌다. 이민자로서의 삶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최고의 전투력을 발휘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해야 할 임무를 띤 군인과도 같았다. 그러나 익숙지 않은 투박하고 무거운 군복 때문인지 기동력을 발휘하기가 어려웠다. 그럴 때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다는 캐나다의 이곳저곳을 운전하고 다니며 호흡을 가다듬고, 생존의 의지를 불태우느라 좁아졌던 생각의 시야를 넓히려 했다.
십 년이란 시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고, 그 사이 기저귀를 차고 있던 아이들이 숙녀로 자랐다. 가까운 길을 두고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돌고 돌아오느라 울기도 많이 울고, 불안에 떨던 날도 많았다. 나를 지켜 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던 모든 것은 허상이었고, 나는 가장 작고 낮은 자리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 짓고는 했다. 위태롭게 서 있던 나는 세지 않은 바람에도 쉽게 넘어질 것만 같았는데 어찌어찌 여기까지 왔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전에 아련하게 꿈꾸던 그 자리 비슷한 곳에 나는 서 있다. 사는 게 바쁘고 치열했기에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다. 잊고 있던 시간의 흐름과 냉혹하고 맹렬했던 삶의 흔적들이 십 년을 함께한 차의 곳곳에 짙게 배어 있음을 보았다. 흐릿하게 색이 바랬고, 벽에 부딪혀 찍히고 긁힌 자리에는 붉은 녹이 슬어 있다. 자동으로 내려가고 올라가야 하는 창문도 어느 날부터 운동력을 잃었고, 핸드폰에 연결해 듣던 음악도 제 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 차는 계속해서 이상 신호를 보내왔다. 생명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차는 아파서 비명을 질렀지만, 한 번도 멈춰 선 적은 없다. 그런 차를 볼 때마다 안쓰러웠다. 닦고 닦아도 뿌옇기만 한 흐려진 헤드라이트를 수건으로 문지르며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말했다. 노후한 차는 빛을 잃어갔지만, 나는 그 안에 있을 때 가장 편안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찬란한 계절을 맞이하고 보낼 때면 살아있고,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삶을 긍정할 힘이 생겼다.
벚꽃이 질 무렵, 봄 날의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출근해서, 머리 위로 조금씩 조금씩 기우는 해를 보며 퇴근하는 길, 나는 십 년 지기 친구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비바람을 막아내고, 추위를 견디며 달려준 네가 있어서 경직되어 굳어 있던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이곳에 이를 수 있었다고…. 갈 길을 잃고 멈춰 서야만 했던 삶의 아픈 순간에도 운행을 멈추지 않았던 그의 우직하고 성실함에 감사했다. 삶이 지속되는 한 나 또한 누군가의 무거운 짐을 나눠 질 수 있기를, 그가 절망의 끝에서 평안에 이를 때까지 쉬지 않고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될 수 있기를 온기를 머금고 있는 차 위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결코 멈춰 서는 법이 없는 시간은 흘러가고,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눈으로 볼 수도 잡을 수도 없는 시간의 흐름을 낡고 빛바랜 차에서 찾는다. 시간이 고통의 긴 터널을 빨리 지나게 해 주기 만을 바랐는데 그 시간이 빚어낸 많은 날이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들어 주었다. 어려운 고비마다 나를 지탱하게 해 주고, 등 뒤에서 소리 없이 밀어주던 바람과 같이 고마운 존재들이 있었다. 삶을 관조하고, 웃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신이 만들어 낸 우주의 질서와 법칙 속에서 세상 모든 것은 죽는 날까지 변화를 거듭한다. 어릴 때는 신비롭고 기대로 가득했던 변화들이 지금에 와서 보니 이별일 수 있고, 죽음일 수도 있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시시 때때로 밀려오는 고난의 파도와 고독의 바람에도 서핑을 즐기며 삶을 향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운행을 중단한 낡은 차 옆에 나는 찰나의 순간을 영원으로 기억하기 위해 멈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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