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언제부터인가 지나갈 거라고 믿으며 견뎌온 코로나 사태가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처럼 느껴졌다. 감당해야 할 고통과 책임은 커져만 가는데 어찌할 도리가 없는 사람들은 보랏빛 희망과 검붉은 절망 사이에서 힘겨운 줄다리기를 하는 듯 보였다.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분투하는 사람들의 모습 또한 처절하고 눈물겨웠다. 전염병의 창궐이 가져온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우리는 지독한 고립과 무력감에 빠진 건 아닐까? 해가 바뀌면 좀 나아지려나 하는 막연한 기대로 나는 일찍부터 2022년을 위한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새해가 되었다. 코로나 확진자는 연일 급증했고, 아이들의 개학 날짜도 미루어졌다. 그리고 눈이 내렸다. 순식간에 온 세상이 새하얗게 변해가는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가볍게 끝났다면 눈 내리는 겨울밤이 아름답게 기억되었겠지만, 흩날리던 눈발은 유례없는 폭설로 바뀌었다.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에 강한 바람까지 더해져 여기저기에서 피해가 속출했다. 집, 차, 도로며 사람들까지 감당할 수 없는 눈 속에 파묻혀 옴짝달싹 못 하는 신세가 되었다. 새해가 된다고 달라진 것은 없었다. 잡생각이 꼬리를 물어 잠들기 어려운 밤이 이어졌다. 나의 고민을 잊기 위해 전파를 타고 전해지는 다른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엿보기도 했다. 남의 불행을 보며 나를 위안했고, 타인의 행복한 모습 속에서 대리만족을 느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 블루를 넘어 절망과 분노로 가득한 코로나 레드 시대를 살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제아무리 원한다고 해도 세상일이 늘 정의롭고 공정하게 흘러가지는 않는 것처럼 지금의 상황 또한 우리가 바라던 바는 아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실의에 빠져 시대를 탓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혼돈의 시대를 살며 나는 나의 작음과 연약함을 그 어느 때보다 절감한다.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있는 자리에서 성실하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외에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주어진 시간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름 없는 사람들을 통해 역사는 늘 새로 쓰였고, 세상은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해왔다. 그리고 실제로 예측 불가능한 사태에 적응하며 열심히 일하는 보통의 사람들이 빛이 되어 세상을 밝히고 있는 것을 본다.
밤사이 내린 눈 속에 갇힌 세상은 고요했다. 길도 구분하기 어려웠고 지나가는 사람, 자동차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어김없이 새해가 밝았지만 나는 외부 세계와 더 철저히 단절되어 시베리아 벌판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 불리한 조건과 상황을 뚫고 나가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을 수 있다면…. 비디오 게임을 하는 아이들을 구슬려 밖으로 나갔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며 걸으니 새로운 길이 생겼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웠지만 우리는 곳 눈을 느끼고 즐기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있었다. 걷다가 힘들면 눈 위에 몸을 누이고 회색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짧은 거리의 길을 돌아오는 데도 생각했던 것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아이들의 복숭앗빛 얼굴에 생기가 감돌았다. 올해는 이렇게 느린 걸음으로라도 터널 밖 세상에 조금 더 가까이 닿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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