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주 민완기 /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이민을 오던 해부터 스물 두 해 째 출석하고 있는 교회의 부엌으로부터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제일 처음, 교회 주보를 통해 앞으로 주방에 여자 성도 분들의 출입을 사절한다는 안내가 나갔을 때에만 해도 사실 이렇게 대대적인 변화와 큰 파급효과를 가져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작년말 새롭게 피택을 받은 장로 6명과, 기존 시무를 맡아오던 두 분의 장로까지 도합 여덟 분의 사나이가 의기투합하여, 그 중에 한 분이 친교부장을 맡아 코로나로 일시 중단되었던 친교시간을 재정비하여 점심식사를 손수 이분들 여덟 사람이 준비해서, 주일 예배를 통해 영의 양식을 먹은 교인들에게 육의 양식을 만들어 섬기기로 다짐을 한 것이다. 물론 교인들이 각자의 생일이나 기념일들을 위해 연초에 저마다 친교 헌금을 작정하기에 식재료비는 그렇다쳐도, 수백명의 한끼 식사를 온전히 남정네 손에 의해서 매주 제공받게 된다는 사실이 잘 믿겨지지도 않았고, 또 맛은 과연 어떨지 그리고 얼마나 그 마음이 오래갈지도 다들 말은 안해도 속으로 궁금해하는 표정들이었다.
교회의 주방이라는 곳은 어떠한 곳이던가? 물론 여성 고유의 섬세하고도 디테일한 업무능력과 뛰어난 out put을 만들어내는 놀라운 장금이분들의 솜씨와 그 독자적 영역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조금도 없지만, 때로 ‘곳간 열쇠’를 둘러싼 치열한 헤게모니(?)의 쟁탈전이 벌어지기도하여 많은 순간 찌그락 째그락 소리가 나기도하고, 상처로 눈물 흘리고, 자신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 담임목사를 끝내 원망하면서 교회를 떠나기까지 하게 하는 아슬아슬한 곳은 아니었던가…
또한 ‘곳간 열쇠’란 어떤 것이던가? 불씨와 장롱과 곳간 열쇠를 인수인계 받음으로써 시어머니에게서 며느리에게로 한 집안의 일체의 권리와 권한이 이양되는 부와 위세의 상징물로서의 ‘곳간 열쇠’. 예로부터 서방은 뺏겨도 이것만큼은 뺏길 수 없는 아녀자의 자존심이자 정체성 그 자체가 아니던가…
그런데 용감무쌍한 남자 여덟 명이 셰프 복장을 차려 입고는 행주치마와 조리용 모자, 때로 주방용 장화까지 신은 채 등장하여 마치 서부의 사나이 장고처럼 주방을 평정(?)해버린 것이었다. 토요일부터 교회에 나와 뼈를 푹푹 고아서 국물을 내어, 작년 11월초부터 지금까지 5개월여를 한주도 거르지않고 메뉴도 매주 바꾸어가면서 맛깔 난 국밥을 만들어 대령하는 것이다. 육개장. 사골곰탕, 닭개장, 굴 국, 설렁탕과 황태국밥 등등 그야말로 조선 팔도의 온갖 맛집에서나 먹어 봄직한 국밥이 이 분들이 직접 담근 김치와 깍두기와 함께 제공되니, 그것도 학생들을 위한 순한 맛과, 장년층을 위해 청양고추를 가미한 칼칼한 두가지 맛으로 국밥을 내오니 예배를 마치고 친교실에 들어오는 교인들의 얼굴은 온통 웃음꽃이 활짝 피어오른다.
물론 서부의 장고들이 믿는 구석은 있었으니, 이 분 중에 한 분이 한국에서 호텔조리학과 관광경영학끼지 공부를 하고 4개의 조리 자격증을 갖고 계신 분이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한국에서 부모님이 하시는 식당 사업을 여러 형제 중 유일하게 틈틈이 도우면서 실제로 맛을 내는 노하우를 갖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다. 그러나 여덟 사람의 성씨가 모두 다르고 개성 또한 다 다를 터인데, 5개월여를 묵묵히 기쁨으로 그 자리를 섬긴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고 고마울 따름이다. 처음에 이 봉사를 시작하면서 다짐한 마음이, 우리 여덟 사람 중에 다툼이나 허영이있으면 하지 말자고, 봉사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감사로 섬기자고 힘들 때마다 서로를 격려했다는 말을 전해 들을 때는 참 가슴이 뻐근하고 울림이 전해졌다.
늘 앉아서 받아먹기만 하는 것이 못내 송구한 젊은 집사님들이 설거지만이라도 돕겠다고 조를 짜서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고, 교회에서도 4주를 온전히 여덟 장로들이 감당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여 마지막 주는 샌드위치 데이로 지정, 목장(쎌)별로 각자 준비한 샌드위치를 도란도란 나누어 먹으며 교제를 하는 등의 시스템의 변화도 생겨났다. 여덟 장로들도 A, B 조를 편성하여 지금은 격주로 수고를 하지만, 그 와중에 교육부서 펀드레이징 행사가 있을 때면 또 어느 틈에 모여 김치를 담가 팔거나, 특제 함경도식 아바이 순대를 만들어서 판매를 하니, 전에 줄곧 크리스피 도넛을 사다가 재판매하는 형식의 식상한 행사에서 벗어나, 맛있는 음식을 살 수 있어서 기쁘고, 교회 부서에도 도움이 되어 좋으니 모든 교인들이 너도나도 동참하여 시작 한 시간만에 완판되고 예약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을 정도가 되었으니 이야말로 일석이조요 금상첨화가 아닌가…
글을 마치며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낮은 마음을 묵상해본다. 만찬 후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겨 주시던 종의 모습과, 교회의 본질이 밥상공동체일진데 곳간 열쇠는 교회 성도들에게 돌려주고, 밥을 직접 지어 먹이는 어미와 아비의 심정이 결국 같은 마음이 아닌가를 생각해본다.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는 구절이 살아서 움직이며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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