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의정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얼마 전 눈이 연이어 많이 온 날이었다. 유독 몸이 좋지 않아 피곤한 아침이었던 터라 게으름을 부리고 있던 터였다. 눈이 워낙 많이 왔고, 기록적인 영하의 날씨가 예상되었기 때문에 반드시 눈을 치워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누워있는 내내 처리하지 않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내내 불편했고 왠지 일종의 할 일을 미루는 중이라는 죄책감도 있었다. 하지만 쉬이 몸이 일어나지지 않더라. 그렇게 마음은 편치 않게 한 시간 정도를 빈둥대며 침대에서 보내다 어슬렁 밖으로 나와본 나는 놀라운 광경을 접했다.
우리 집 앞 보도가 이미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아이들이 치웠나 싶어 아이들 방을 돌아보니, 아직 잠에서 깨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우리 집 보도와 연결된 옆집 보도를 살펴보니, 거기 또한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아마 옆집에서 치워주었나 보다. 너무 고맙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한 마음이 일었다. 다음에 만나면 꼭 감사 인사를 하리라 그런 마음으로 편히 집에 들어와 차를 마시며 안락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후로도 눈은 몇차례 강타를 했는데, 올때마다 무척 많은 양이 내려서 치워도 치워도 나와 아이들로는 감당이 쉽지 않았다. 처음엔 의욕적으로 치우기 시작하다가도 점점 게을러지고 대충하게 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간 이렇게 많은 눈이 연이어 온 날씨를 경험해본 적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유독 많이 힘들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눈을 치우는 경험을 가진 편이 아니기도 했고, 이래저래 좀 낯설기도 하고 버거운 상황이었다.
그러다 또 하루 우리가 게을러진 틈을 타, 옆 집 부부가 또 보도를 치워놔주셨다. 이번엔 아이들이 먼저 알아보고 나에게 알렸다. 옆 집에서 우리 보도의 눈을 치워놨다고 신나라 와서 조잘댔다. 너무 고맙기도 하고, 언제 저 집을 들러 인사를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앞뒤 옆집과 교류가 많이 줄기도 했고, 특히 그 옆집은 평상시에 가장 교류가 적었던 곳이라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다음날, 눈썰매를 타러 가야 해서 일찍 나온 우리는 또 산처럼 쌓인 눈을 접했다. 예약 시간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대충 차와 그 주변만 치우고 다녀와서 치우리라는 마음으로 눈썰매를 다녀왔는데, 오는 길에 옆집 부부가 또 눈을 치우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차를 급하게 세우고 아이들과 삽을 가지고 나와 함께 치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간 너무 고마웠는데 인사를 드리지 못했다고 최대한 마음을 담아 감사를 전하려 했다. 그러자 부부가 괜찮다며, 운동 삼아 하는 일이라고 웃으며 답하시더라. 그리고 도리어 나에게 아이들 돌보는 것도 힘들지 않냐며 괜찮다고 따뜻한 말을 전하셨다.
순간 가슴 속에 울컥한 감정이 일었다. 어차피 가정 일, 육아, 이런 일들은 눈에 잘 보이지도 얼마나 힘든 지도 쉽게 판별되지 않는 일들이기에 가끔은 좀 속상하고 외롭고 힘들긴 했는데, 잘 교류조차 하지 않던 이웃이 나를 알아주고 나의 노력을 알아준다는 것이 고맙고 따뜻하더라. 별거 아닌 말 한 마디가 그렇게 가슴에 와 푹 꽂히더라. 아이들과 나는 온 힘을 다해 옆집과 우리집 보도의 눈을 치우려 했다. 그리고 땀을 훔치며 옆집과 환히 인사를 나누고 개운한 마음으로 들어왔다. 앞으로 눈이 오면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우리집, 옆집을 우리도 모두 치우리라. 아이들과 다음에 꼭 우리가 먼저 일어나자고 약속했다. 이웃이 있다는 것에, 그것도 따뜻한 이웃이 있다는 것에 큰 안도와 편안함을 느꼈다. 그래, 어쨌든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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