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은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그 소식 들었어?”
“무슨?”
“H가 폐암 말기래. 지금 옆 병동에 입원했는데, 보고 오는 길이야.”
“무슨 말이야? 2주 전까지도 우리랑 같이 일했는데.”
병원에 출근해 막 일을 시작하려던 난 동료가 전하는 말에 얼떨떨한 얼굴로 되물었다. H는 폴란드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30대에 이민 온 사람으로, 12년을 나와 함께 일한 동료였다. 내가 일하는 병동에서 healthcare aide로 일하다 65세에 퇴직했었는데, 퇴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다시 일터로 나왔다. 왜 나왔냐고 물었더니, 모기지도 내야하고, 관절통으로 매일 먹어야 하는 진통제도 보험이 되질 않으니, 연금으론 부족해 돈을 더 벌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다시 나온 H는 6년을 더 우리와 함께 일했다. 그런데 코비드 백신 맞기를 거부해 지난달부터 시행한 병원 정책에 따라 강제로 일을 못 하게 되었다. 그렇게 일을 그만둔 지 딱 2주가 지난 이 시점에, 그녀가 이번엔 환자가 되어 병원에 다시 들어온 거였다. 백신만 맞았어도 여전히 같이 일하고 있을 사람인데, 난 도저히 그녀의 상황이 믿기질 않았다.
“그렇게 말짱했던 사람이 갑자기..치료는 할 수 있대?”
“아니. 대장암이 뱃속으로 다 퍼져서 폐암 4기까지 온 거래. 닥터 말로는 한 달밖에 안 남았대.”
말문이 막혀 바라보는 내게 동료는 가보라는 말과 함께 H의 병실 번호를 알려주고 멀어져갔다.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지만 겨우 끝내고, 휴식 시간이 되기가 무섭게 난 H의 병실로 달려갔다. 병실로 들어서던 난 너무도 변해버린 H의 모습에 한발 한발 다가서면서부터 속에서 눈물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을 간호사로 일하며 많은 죽음을 봐왔지만.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게 죽음이었다.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 못 해 난 그저 그녀의 손을 붙들고 한참을 꺽꺽거렸다. 아무 말도 못 한 채 눈물만 흘리는 내게 그녀가 울먹이며 말했다.
“젊었을 때 이민 와 지금까지 난 열심히 일한 것밖에 없는데,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겨? 나한테 왜 이런 일이 벌어지냐고? Why me? Why me?”
이민 1세대인 그녀의 삶이 너무도 공감이 갔고, 안타까움에 난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병실을 나와서도 “Why me?”라고 울부짖던 그녀의 절규가 귓가에서 가시질 않았다. 힘들게 벌어 사 먹은 진통제의 약발로 인해 온몸으로 암이 다 퍼져나가는 줄도 모르고, 죽음이 코앞에 닥칠 때까지 일을 했던가 보다 싶었다. 그녀가 갚아야 했던 모기지(mortgage). mort(죽음)와 gage(서약)의 합성어인 ‘죽음과의 서약’이란 의미의 어원처럼, 그녀는 평생 모기지를 갚다가 죽음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닥터의 말대로 딱 한 달 만에 H는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우리의 곁을 떠났다. 그녀가 떠난 후 인생의 덧없음에 동료들은 하나같이 “난 저렇게 살기 싫어.”라는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말 뿐, 하루도 지나지 않아 우리는 예전과 같은 속도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비탄에 빠진 바이든 대통령에게 그의 아버지가 건네줬다는 두 컷의 만화가 있다. 배를 타고 항해하던 사람이 폭풍우를 만나 죽을 위기에 처하자, 하늘을 향해 "Why me?"라며 울부짖는다. 그러자 하늘에서 그에 대한 응답이 들려온다. “Why not?”이라고. 내가 꼭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게 불행이란 말이었다. H의 이야기가 내 인생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구나! 언젠가 “Why me?”라고 울부짖지 않으려면, 나도 이제 삶의 속도를 줄여야 할 텐데...
최근 들어 생긴 버릇 중의 하나가 유튜브에 올라오는 한국 시골집 동영상을 보는 것이다. 집을 향해 좁은 시골길을 따라가다 보면 내 마음은 금세 차분해진다. 갓길에 난 풀들과 풀벌레 소리, 동영상인데도 거기서 풍겨오는 냄새까지 코끝으로 전해오는 듯하다. 흙벽으로 칠해진 시골집에 도착해 삐걱거리는 정지 바라지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마솥과 아궁이가 보이고, 그 옆에 쌓인 땔감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넉넉해진다. 마당 가에 있는 우물물이 귀하게 느껴지고, 텃밭에 있는 채소와 지천으로 깔린 나물만 캐 먹어도 충분하겠다 싶어지면서 마음이 그렇게 편안해질 수가 없다. 저기서 살면 아주 행복하겠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새 동영상이 끝이 난다. 그리고 눈을 들어, 난 우리 집을 둘러본다. 저 허름한 시골집에선 느껴지던 평온함과 행복이, 왜 그보다 훨씬 좋은 이 집에선 안 느껴지는 걸까? 그건 아마도 고향을 떠나온 사람의 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실 모든 이민자는 자발적인 실향민이다. 익숙한 내 땅을 떠나 낯선 나라로 와 힘겹게 일궈낸 게, 지금의 집인 것이다. 열심히 일해 얻어낸 거라, 열심히 사는 걸 멈추면 그게 언제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모든 실향민의 가슴엔 자리하는 듯하다. 배가 부를수록 허기는 더 깊어지는 이민자의 삶. 그래서 이민 1세대는 죽어라고 일하는 삶을 멈추질 못하는 것 같다. ‘신이 이제 나를 자유롭게 했다.’라고 쓰여진 H의 장례식 카드를 보며, 앞으로 캐나다에서의 남은 삶은 내 속에 들어앉은 불안과의 싸움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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