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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우한에서 전염병이 돌고 있다는 소식을 처음 접한 게 1월 말이었다. 간호사라는 직업 때문에 난 그 병의 실체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모든 뉴스를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난 패닉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중국에서 솟아오른 검은 먹구름이 온 세상을 까맣게 뒤덮어가는 이미지가 떠올랐고, 그게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급자기 늘어난 환자로 의료붕괴가 일어난 중국은...
박정은
                                                                                           얼마 전 테헤란 공항에서 비행기가 추락해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연휴를 끝내고 학교로 돌아가는 대학생이 다수였다고 하니 아직 너무 이른 죽음이었다. 평소엔 죽음이 그야말로 아주 먼 일처럼...
박정은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2주 남았습니다! 2019.10.28 (월)
얼마 전 지인이 병원일로 물어볼 게 있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간호사로 일을 하다 보니 이런 문의를 자주 받곤 한다. 질문의 요지는 이거였다. “우리 직원 남편이 어제 911 타고 응급실로 실려 갔대. 옆집 사람이 알려줘서 그걸 나중에야 안 거야. 그래서 급히 병원으로 가봤는데 간호사가 환자가 어디 있는지 상태는 어떤지 전혀 알려주질 않더래.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이거 분명 병원에서 의료사고 같은 거 내놓고 뭔가 숨기려고 그러는 거지?”...
박정은
나의 퀘렌시아 2019.07.22 (월)
     요즘은 밤마다 뒷마당 데크 위에 쳐둔 텐트에서 시간을 보낸다. 텐트 안에 있는 살림이라곤 베개, 이불, 그리고 새우깡 한 봉이 전부다. 물론 텐트 안에 가득한 새소리, 바람소리, 꽃향기는 보이지 않는 인테리어다. 거기에 비까지 내리면 빗소리라는 음악이 더해져 텐트 안은 더 아늑해진다. 오늘밤은 비가 온다고 해서 일찌감치 텐트로 나왔다. 한국에 살 때 남편과 난 산을 참 좋아했었다. 우리가 정식으로 했던 첫 데이트가 아마...
박정은
오래전 나는 딸의 친구와 가깝게 지낸 적이 있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노미였다. 밴쿠버에서 처음으로 내 집을 마련해 이삿짐을 막 들여놓고 있는데, 노미가 엄마의 손을 잡고 우리 집에 찾아왔다. 사람 맞을 준비가 안 돼 당황하는 내게 그 모녀는 정원에서 꺽은 꽃 한 다발을 내밀며 간단한 환영인사를 남기고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은 쿠키를 만들어 찾아오고 또 다음날도, 그렇게 매일 우리 집에 출근도장을 찍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노미가 그...
박정은
분홍꽃 2018.05.30 (수)
 알버타 북쪽의 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다. 딱 잘라 일 년의 반이 겨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우리 가족이 이곳으로 이사를 온 건 겨울 중에서도 가장 춥다는 1월이었다. 주위를 사방으로 둘러봐도 보이는 건 하얀 눈뿐이었다. 꽁꽁 언 이 땅에도 과연 봄이 오는 걸까? 그런 불안감이 들 때마다 난 이삿짐을 쌀 때 거듭 확인하며 챙겨 온 분홍꽃 꽃씨를 펴봤다.   우리 가족이 캐나다에 첫발을 내디딘 건 2000년이었다. 땅을 바꾸면...
박정은
배꼽 2018.01.17 (수)
배꼽박정은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한국에서 십여 년을 분만실 간호사로 일했었다. 분만 중에는 많은 응급상황이 발생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위급한 게 탯줄 문제이다. 아기는 엄마 뱃속에서 열 달을 한 몸으로 살지만, 사실 둘은 서로 붙어있는 게 아니라 겨우 가느다란 탯줄 하나로 연결돼 있을 뿐이다. 즉, 아기에겐 이 탯줄이 유일한 생명줄인 셈이다. 그런데 이 탯줄이 꼬이거나 눌려 막히게 되면 몇 분 안에 아기의 심장이 멎는, 그런...
박정은
 두 딸이 대학에 진학해 도시로 가고 나니 방이 두 개가 비었다. 햇볕이 잘 드는 방을 골라 서재를 만들려고 짐을 옮기는데 방 벽에 딸이 붙여 둔 문구가 보였다. ‘Dream, until your dream comes true. (너의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꿈을 꿔라!)’ 딸은 매일 이 문구를 보며 꿈을 꾸었나 보다. 글자가 가려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책장을 배치했다. 딸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엄마인 내게도 꿈이 있으니까.       어른이 되어 슬픈 것 중에 하나는 그...
박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