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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키 재기 2016.10.22 (토)
     처음 밴쿠버에서 살다가 앨버타 북쪽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을 때 가장 걱정스러웠던 건 이곳의 추위였습니다. 마른 체형에 항상 손발이 차서 마이너스 40도까지 내려가는 겨울나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아직 10월 중순밖에 안됐는데 오늘도 하늘에선 부지런한 선녀님들이 하얀 눈꽃송이를 펑펑 뿌려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젠 뒷마당에 차곡차곡 쌓이는 눈을 보면서도 여유 있는 미소를 지을 수 있답니다. 내겐 아무리...
박정은
척추 같은 부모 2016.05.21 (토)
무엇을 어떻게 해야 부모 노릇을 잘하는 걸까? 이 질문 앞에선 누구나 하나같이 어렵다는 말부터 꺼낸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하는 일이면서도 가장 힘들어하는 게 바로 이 부모 노릇이 아닌가 싶다. 특히 낯선 문화권에서 아이들을 키워야만 하는 이민자들은 그 어려움이 더 배가 되는 듯하다. 도시도 아닌 이 북쪽 시골까지 와 아이들을 키우며 좌충우돌하는 내게 캐네디언 친구들이 들려줬던 조언들을 여기에 소개해볼까 한다.레슬리란...
박정은
늙지 않는 여자 2015.12.05 (토)
   잠을 자다 딸의 잠꼬대에 눈을 떴다. 너무 더운지 딸은 몸부림을 치더니 할머니 품으로 기어든 후에야 다시 잠이 든다. 난 모로 누워 잠정신에도 딸을 끌어다 토닥이며 자는 엄마와 그 옆에 누운 두 딸들을 바라본다. 딸과 엄마라는 이름으로 순환되는 여자 삼대가 그렇게 누워있는 상황이 새삼 이상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엄마는 새근거리는 딸들에 비해 숨소리마저 탁하다. 가까이 보니 엄마의 얼굴빛은 불그레한 딸들과 비교해 칙칙한 저녁...
박정은
싱글맘이 된 딸 2015.06.12 (금)
미혼모란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된 여성을 말하고, 싱글맘이란 자기가 원해서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여성을 지칭한다고 한다. 한국도 이젠 갈수록 혼자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늘다보니 이런 세분화된 호칭까지 생긴 것 같다. 갑자기 싱글맘 이야기를 꺼낸 건, 고등학생인 딸이 얼마 전에 치렀던 ‘3일 동안 싱글맘 체험하기’, 바로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싶어서다.           딸이...
박정은(Kristine Kim)
크리스마스 선물 2014.12.27 (토)
크리스마스이브, 지금쯤 사람들은 즐겁게 캐럴송을 부르거나 크리스마스 선물에 한껏 마음을 빼앗길 시간이다. 하지만 난 그런 것들을 마음에 담을 여유가 없다. 항상 그렇듯 오늘도 난 내 일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며 출근을 하고 있다. 앨버타 북쪽에 있는 시골 병원에서 간호사를 시작한지가 벌써 몇 년이 되어간다. 한국의 대학병원에서 쌓은 다년간의 경험이 있었기에 처음엔 이런 시골병원 일은 쉬울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박정은
송충이 떼의 습격 2014.08.15 (금)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배운다. 사실 산다는 것 자체가 평생교육원에 등록한 것과 같다. 삶은 여러 방법으로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데, 그 중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게 보이는 것 밑으로 전혀 다른 의미의 진실을 숨기고 있는 경우이다. 때론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는 삶이 지닌 역설을 이해해야만 한다.앨버타 북쪽에 있는 스몰 타운에서 산지가 벌써 12년이 되어간다. 상당히 오랜 시간 한 곳에서 살다 보니 지난여름엔 십여 년...
박정은 (Kristine Kim)
스팅(Sting)이 부르는 '잉글리쉬맨 인 뉴욕(Englishman in New York)'이라는 노래를 듣다보면 후렴구가 귀에 꽂히듯 들어온다. 계속 반복되는 이유도 있겠지만,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가사 때문일 것이다. “나는 외계인, 이 땅에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외계인, 나는 뉴욕에 사는 영국인.”  이렇게 반복되는 후렴구를 듣다 보면, 꼭 내 이야기만 같아 나도 모르게 가사를 '캐나다에 사는 한국인'으로 바꾸어 흥얼거리게...
박정은(Kristine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