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소 / 캐나다 한국문협자문위원
능소화 핀 담벼락을 만난다
주홍빛 화염을 마구 뿜어내는
거칠고 억센 꽃의 풀무질
그 뜨거운 바람은 사정없이
한쪽으로만 달려간다
시시각각 불길은 활활거리고
세상이 와르르 허물어지고
익숙한 풍경과 오래된 이야기
모두 놓쳐버린 나는 나에게서
저만치 나를 놓아버린다
둥둥 떠도는 발걸음 멈추고
능소화 바스러진 절벽 아래
나를 잡으려 안간힘 다해 보지만
가슴 골 땀방울처럼 미끄러지며
잡히지 않는 나는 또 멀어진다
막다른 골목 끝에 서서
한밤 꿈속처럼 아득한 길을
되돌아오는 나를 기다리는 동안
덩굴로 달라붙는 꽃 향기 지우며
가벼워진 나를 꿈꾸는 동안
잠자리 한 마리 낮게 날고 있다
꽃 다 지고 휑한 언덕에
잠자리 한 마리 맴을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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