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순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나 집에 가고 싶다. 애비야!”
텔레비전에서 할머니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어요. 어떤 아저씨가 할머니 손을 거세게
뿌리치고 요양병원을 빠른 걸음으로 나오고 있었어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뒤따라 나왔어요.
“요즈음 요양병원이 고려 시대 고려장 역할을 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저 할머니 어린애 같아요. 불쌍해요. 할머니가 집에 가고 싶다는데 뿌리치고 혼자 가버렸어요. 저
아저씨 나빠요. 훌쩍훌쩍!”
“저런, 하지만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거야.”
“그래두…… 저 할머니가 불쌍해요!”
“에고 우리하나 눈물이 많아 큰일이네.”
“할머니, 고려장이 뭐예요?”
할머니는 고려장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어요.
“그러니까 하나야. 고려장이란 말이다.”
“잠깐만요. 시끄러우니까 텔레비전 끌게요.”
하나가 리모컨 버튼을 누르자 텔레비전 화면이 ‘지지지’ 소리를 내며 강한 광선이 하나를
끌어당겼어요.
“어어어!”
하나는 허름한 초가집 마당에 서 있었어요. 누더기를 걸친 아저씨가 할머니를 지게에 지고
사립문을 나서고 있었어요.
“히히, 신난다. 나를 내버리러 가는 건 아니 제?”
“가만있으란 말요. 떨어진 당게요.”
‘아까 텔레비전에 나온 치매 걸린 할머니잖아! 아저씨도 그 아저씨다. 어? 여기가 어디지? 저
아저씨를 따라 가봐야겠어.’
“히히, 지게에 업히니 참 좋다.‘
할머니는 지게 위에서 히죽히죽 웃으며 좋아했어요. 아저씨는 산속 깊숙이 올라갔어요.
“이건 내 아기 발자국!” 하며 할머니는 뭔가를 땅에 떨어뜨렸어요. 아저씨가 한참을 산을 오르더니
깊은 숲속에 다다라 할머니를 팽개치듯이 내려놓았어요.
‘할머니를 버릴 건가 봐. 할머니를 버리면 안 되는데.’
“내 금세 데리러 올 테니 여기서 며칠만 계시우.”
“아저씨 나빠요! 할머니 두고 가면 안 돼요!”
하나가 아저씨 옷자락을 잡으며 말했지만, 아는 척하지 않았어요.
‘어, 내가 안 보이나?’
“히히! 밥 주고 가라 이놈아! 내가 밥만 축낸다고 버리는 겨?”
“또 밥 타령이요? 밥이 있으면 내 이러지 않소. 나랏법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당게요.”
아저씨는 신경질을 내며 말을 했어요. 날이 어두워져 사방에서는 짐승 울음소리가 들렸어요.
‘아유 무서워.’
할머니도 무서운지 벌벌 떨었어요. 하나는 할머니가 불쌍해 가까이 가서 어깨를 감싸 주었어요.
할머니 얼굴이 금세 편안해졌어요. 하나는 할머니가 안쓰러워 울먹였어요. 아저씨가 소매 끝으로
눈물을 훔치자 할머니가 아저씨 옷자락을 잡으며 중얼거렸어요.
“니가 길을 잃을지 모르니 내가 나뭇가지를 흘려 두었지. 그걸 따라가면 집에 가는데.”
그 말에 아저씨는 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할머니를 와락 품에 안았어요.
“어무이! 지가 잘못 했심더. 어무이를 버리려고 했는데 어무이는 이 불효막심한 놈이 길 잃을까
그랬단 말입니꺼? 엉엉엉!”
아저씨의 울음소리가 산속을 쩌렁쩌렁 울렸어요. 짐승 울음소리가 뚝 그쳤어요. 아저씨는
할머니를 도로 지게에 지고 길을 내려갔어요. 하나는 너무나 기뻐 눈물이 났어요.
‘아저씨, 고맙습니다.’
하나가 아저씨께 꾸벅 절을 했어요. 달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자 할머니가 흘려 둔 나뭇가지가
달빛에 환히 보였어요.
“하하! 어무이가 흘려 둔 나뭇가지가 아니었으면 길을 잃을 뻔했심더.”
“히히, 내가 무겁지?”
“무겁긴요. 올라 올 때는 바위처럼 무거웠는데 지금은 마른 가지처럼 가벼운데요.”
그 후 아저씨는 반성하고 할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모셨어요.
천민이 국법을 어기고 고려장 어미를 도로 지고 내려왔다는 소문이 임금님 귀에도 들어갔어요.
국법을 어긴 것은 괘씸하나 제 어미를 차마 버릴 수 없어 도로 모시고 왔다는 것은 가상히 여길
수밖에 없었어요. 임금님은 며칠을 두고 깊이 생각했어요.
“옳지!”
임금님은 무릎을 ‘탁’ 치며 기발한 생각을 해 냈어요. 임금님도 구별 못 할 만큼 똑같은 말 두 필을
보내 시험 해 보기로 했어요. 어느 날 궁에서 사람이 왔어요.
“죄인은 이리 나오느라! 국법을 어긴 죄 벌을 받아 마땅하나 이 문제를 풀면 벌을 면하게 하라는
임금님의 명이시다. 만약 풀지 못하면 곤장을 백대 맞고 옥에 가둘 것이며, 네 어미 또한 고려장에
처할 것이니라.”
“천한 것이 어찌 그 문제를 풀 수 있겠나이까? 그렇지만 어무이만 도로 버리게 하지 않는다면 내
목숨을 내놓고 해보겠습니다요.”
“이 두 마리 말 중 새끼는 어느 말인고? 사흘 말미를 주겠노라.”
‘사람이 늙으면 갔다 버리는 게 고려장이라는 거잖아? 국법은 순 엉터리다. 그나저나 저 아저씨가
문제를 풀 수 있을까?’
하나는 걱정이 되었어요. 도저히 새끼를 가려내지 못할 만큼 두 마리의 말은 똑같았어요. 아저씨가
밤잠을 설치니 할머니가 혼잣말을 했어요.
“그것도 몰라? 내는 아는데. 사흘을 굶기고 여물을 줘봐라. 먼저 먹는 놈이 새끼지.”
하나는 할머니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그것이 모성애라는 걸 나중에서야 깨달았어요.
이번에는 똑같은 두 개의 나무토막 중 어느 쪽이 위쪽인지 맞혀보라고 했어요. 이번에도 할머니는
혼자 허공을 보고 중얼거렸어요.
“그것도 몰라? 내는 아는데.”
“이 무식한 놈이 어찌 알겠소. 못 맞추면 어무이는 다시 고려장을 당하고 지는 죽어요.”
“히히, 나무는 밑에서 물을 빨아 먹으니까 물에 뜨는 쪽이 위쪽이지 바보야.”
이번에도 문제를 맞히자 임금님은 예사 천민이 아니리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좀 더 어려운 문제를
내려 보냈어요.
“재로 새끼를 한 다발 꼬아 놓거라!”
‘어떻게 재로 새끼를 꼬아? 임금님도 너무하셔.”
하나는 임금님이 원망스러웠어요. 그때 할머니가 또 허공을 보고 말했어요.
“내는 알제. 그것도 몰라? 새끼를 한 다발 꼬아 불에 태우면 재로 꼰 새끼가 되는데.”
아저씨는 무릎을 ‘탁’ 치며 새끼를 꼬아 불에 태웠어요. 불에 탄 새끼는 그대로 재 다발이 되었어요.
어머니의 지혜로 세 번씩이나 위기를 모면한 아저씨는 임금님의 부름을 받고 대궐로 입궐하게
되었어요. 하나도 뒤따랐어요. 며칠을 걸어 한양에 도착했어요. 한양의 거리는 구경할 게 많아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저만치 커다란 대궐이 보였어요.
‘와, 임금님이 사는 집이 무지 크다.’
하나는 임금님이 있는 궁은 책에서만 보았어요. 궁궐을 걸어 다니는 아이들은 추석이라 울긋불긋
색동옷을 입고 머리는 길게 땋아 내렸어요. 한참을 구경하다 보니 아저씨가 보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하나는 걱정하지 않았어요. 아저씨는 분명히 임금님을 만나려 궁에 갔을 테니까요. 궁문
앞에 포졸 두 명이 지키고 있었어요.
“저는 임금님을 만나야 해요. 들여보내 주세요.”
그러나 포졸들은 하나 말을 알아듣지 못했어요.
“어, 내 말을 못 알아들었나?”
하나는 더 큰 소리로 말했어요. 그래도 포졸들은 대답하지 않았어요.
“훌쩍훌쩍! 제발 들여보내주세요.”
하나는 가짜로 울면서 사정을 했어요.
‘아 참, 내가 보이지 않지. 히히, 이것 참 재미있는데. 내가 도깨빈가?’
하나는 살금살금 궁궐로 들어갔어요. 아저씨는 임금님 궁에서 맛난 음식을 대접받고 있었어요.
하나도 군침이 돌아 옆에 가서 송편을 먹었어요. 너무나 맛있었어요. 아저씨는 허겁지겁 음식을
먹었어요. 배를 채운 아저씨는 포졸을 따라 임금님 앞으로 갔어요.
“그대가 그 어려운 문제를 다 풀었단 말인가?”
“그 문제는 제가 푼 것이 아니라 제 어무이가 풀었습니다요.”
“그대 어미는 고려장을 해야 함에도 국법을 어겼단 말이냐?”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요. 하지만 이놈의 사정을 들어보시면 전하께서도 아실 겁니다요.”
“그렇다면 그 사정을 한 번 들어보기나 하자.”
아저씨는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소상히 임금님께 아뢰었어요. 아저씨는 나뭇가지 이야기를
하면서는 눈물을 훔쳐냈어요.
“천한 이놈의 어미가 자신을 버리려는 이 불효막심한 놈을 위해 그렇게 했다는 것을 알고 지가
깨달았습니다요. 인간의 탈을 쓰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엽지요. 지는 천한 놈이라 국법 같은 것은
모른답니다요. 먹을 게 없어 입하나 들자고 어미를 버리려고 했던 겁니다요.”
임금님은 아저씨 말을 다 듣고 나더니 이렇게 말했어요.
“허허, 천민인 그대가 과인보다 더 훌륭하구나. 그대가 나를 깨닫게 했으니 큰 상을 내리겠노라.
소원을 말하거라.”
“황공하옵니다요. 전하. 그렇다면 딱 한 가지 소원이 있긴 합니다만…….”
“그것이 무엇인고? 어서 아뢰거라.”
“고려장 국법을 없애주옵소서!”
“허허! 내 당장 고려장을 없애겠노라.”
임금님은 기뻐하며 아저씨에게 더 큰 상으로 땅을 주었어요.
“임금님 최고예요.”
하나가 자신도 모르게 기뻐 폴짝폴짝 뛰었어요.
“네 이 녀석!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수선이냐?”
포졸이 하나 머리에 꿀밤을 콩! 주며 야단쳤어요.
‘아, 아파! 어, 내가 보이나? 보이지 않을 텐데.’
포졸이 오랏줄로 하나를 꽁꽁 묶으려 했어요.
“저 아저씨는 텔레비전에 나온 사람이란 말이에요.”
“엉? 텔레비전이 무어냐?”
포졸들은 이상한 말에 눈이 동그래졌어요.
“풀어 주어라. 재미있는 아이로구나.”
“임금님, 고려장을 없애 주세요. 미래에는 나이 많은 부모님을 요양병원에다 버린대요. 그게 바로
21세기 고려장이래요. 부모님을 버리는 자식을 벌주세요. 엉엉!”
하나는 임금님께 나쁜 사람을 벌주라며 울면서 말했어요.
그때 할머니가 텔레비전을 켰어요. 하나가 눈물을 훔치며 텔레비전 밖으로 쑥! 나왔어요.
“에고, 울 하나 또 우는구나?”
“할머니, 이야기 넘 슬퍼요. 나이 많은 사람을 버리는 게 고려장이었군요. 할머니는 걱정 마세요.
하나가 절대 요양원에 안 보낼 거예요.”
“호호, 우리 하나만 믿어야겠네.”
“어머니, 뭐가 그리 재미있어요?”
엄마가 추석 송편을 들고 나오며 말했어요.
“쉿! 비밀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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