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죽음을 바라보며

권은경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0-06-08 10:37

권은경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건강하고 평안한 날에는 삶과 죽음에 대해 무감각했다. 죽음이란 나와 무관한 먼 이웃의
이야기일 뿐 언젠가 나 자신과 내 가족에게 닥칠 일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느닷없이
찾아와 사랑하는 이와의 영원한 작별을 통보하는 죽음 앞에서 인생의 허무를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겨울 한평생 순실한 농부로 땅을 일구며 사신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의
생전 마지막 모습을 영상으로 보았다. 앙상하게 야윈 얼굴로 눈을 감고 있는 시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순간, 죽음과 이별이 가까이 왔음을 알았고 나는 서럽게 통곡했다. 제집으로 돌아가는
자식들을 보기 위해 힘없는 몸을 지팡이에 의지한 채 손을 흔들던 그의 모습이 아련해서 아직도
가슴이 미어진다. 쌀 한 가마를 거뜬히 들어 올려 실어 주시던 건장하고 인정 많던 시아버지의
모습만 기억하고 싶은데 캐나다에 이민 간다는 아들의 손을 놓지 못하고 흐느껴 울던 늙고 병든
그가 자꾸 눈앞에 아른거린다. 때때로 불행과 죽음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와 우리로 삶의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게 한다. 시아버지를 떠나 보내며 삶과 죽음이 연결되어 있고 내게도
죽음의 시간이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리고 근래 신문과 뉴스를 통해
무수한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참혹한 모습을 숨죽여 바라보고 있다.
 
여느 때와 같이 오월의 풍경은 싱그럽다. 초록빛 생기가 부드럽게 대지를 덮고 형형색색의
꽃들을 깨운다. 그러나 인류는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역사상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커다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중국에서 시작되었던 바이러스는 불과 몇 달 사이에 세계 전
지역으로 번져 나갔고 마침내 코로나19에 대해 세계적 대유행, 즉 팬데믹이 선언되며 우리 삶의
전 영역을 뒤흔들고 있다. 경제도 교통도 사람들의 평범했던 일상도 모두 멈추어 버렸다.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라는 정부 방침에 따라 집 안에 머문 지도
벌써 두 달이 넘었다. 인류가 이룩한 문명은 현대인에게 편리한 생활을 제공해주었지만 이에
따른 세계화와 도시화는 바이러스의 확산을 부채질하며 물질적 손실 뿐 아니라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낳고 있다. 미국에서만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 수가 곧 10만 명을 돌파한다고
하니 뜻하지 않은 죽음을 목격하며 참담하고 두려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연일 폭증하는
코로나바이러스 사망자들은 사랑하는 이들 로부터 격리되어 마지막 작별 인사도 제대로 못 한
채 홀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가족들은 죽음의 존엄성마저 누리지 못하고 떠나는 망자의 슬픈
현실 앞에 좌절한다. 재난 영화 속에서 가상적으로 구현되었던 일들이 현실이 되었다. 죽음은
먼 훗날 누군가에게 닥칠 막연한 사건이 아니다. 우리는 매일 죽음과 마주하며 오늘로써 삶을
마감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다. 어쩜 죽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이에 와 있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앞으로 우리의 가치관과 생활을
바꾸어 놓을 거라고 한다. 삶의 새로운 표준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것은 4차 산업혁명을
앞당기며 세계의 산업과 경제구조, 방역과 교육 방법 등을 바꾸는 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과도한 불안과 사회적 위기감에 휩싸여 정신적 혼란을 겪고 있다.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죽음이 주는 삶의 의미를 반추해 보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대면하게 될 죽음 앞에서
현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것이다. 갑작스럽게 생의 마지막 순간이 온 것을 알았을 때,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았을 때, 자신이 꿈꾸던 삶과 완전히 다르게 살아온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 별로 중요하지 않던 현실의 문제에만 급급해서 주어진 날들을 진실하고 행복하게 살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된다면 어떨까? 유한한 시간 속에서 언제 죽음을 맞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오만하고 태만하게 살아온 지난날이 보인다. 죽음을 통해 바라보는 삶은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의 의미와 가치를 확실하게 일깨워준다. 살아서 맞이하는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서

조금 더 선하고 진실할 수 있기를…… 죽음의 날이 방황과 고통의 삶에서 벗어나 구원받은
축제의 날이 되기를 마음 깊이 소망해 본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창 밖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반갑다. 해가 길어지고, 따뜻한 봄 기운이 느껴지는 요즘, 서서히 생활에 작은 변화들이 생기고 있다. 낯선 새소리에 창문을 열고 그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목을 길게 빼본다. 머리 위에 뾰족한 부채를 단 레드 카디널인지, 푸른 깃털이 매력적인 블루 제이인지, 귀여움을 뽐내는 워블러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다가올 계절을 품고 자연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존재가 가까이 와 있다는 것만이 분명하다....
권은경
삶을 위한 사유 2024.02.26 (월)
 시간이 흐를수록 삶이란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는 과정이며 인간은 그 속에서 쉽게 넘어지고, 상처 받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누구나 늙고, 병들며 결국 죽음에 직면한다. 종종 불안과 절망으로 가득한 실존 적 두려움을 피해보려 하지만, 매스컴을 통해 매일 아침 인류의 고통을 새롭게 마주할 뿐이다. 언제 덮칠지 모르는 고통과 재난을 등지고 서서 어떻게 하면 이 존재의 한계와 가혹한 현실 속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권은경
엄마의 힘 2023.11.27 (월)
   하루에도 몇 번을 오가는 거리가 처음 보는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스쳐 지나가는 낯선 이의 모습 속에서, 외국어로 채워진 상가 외벽의 간판을 보며 나는 누구이고, 내가 있는 곳은 어디 인지를 곱씹어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자메뷰(Jamais Vu), 즉 미시감(未視感) 현상을 말하는 걸까? 익숙한 장소가 낯설게 느껴지면 재빨리 눈을 감거나 하늘을 올려다본다.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이국의 정취에 스며들지 못하는 나는 공기 중에...
권은경
 작년 9월에 주문했던 차가 일주일 내로 나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팬데믹으로 반도체 공급 난이 심해지면서, 신차 출고가 일 년씩 미뤄진 상태였는데 생각보다 빨리 새 차를 받게 되었다. 자동차 딜러는 운이 좋아 주문한 차가 빨리 나왔다며 좋아했지만,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십 년을 함께한 노후한 차와 이별해야 하는 순간이 왔기 때문이다. 살아있지 않은 대상에게서 생명체에서만 기대할 수 있는 어떤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
권은경
   거대한 돈의 위력을 등에 업고 세상의 부조리는 날로 커지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우리 삶의 고유한 영역까지 파고들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기나 한 건지 의문을 품게 한다. 그런데도 마이클 샌델 교수는 그의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서 여전히 우리의 삶과 사회 속에는 돈으로 가치를 측정하고 거래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하며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옳은 말이지만 사랑도 우정도 돈이 있어야 표현할 수...
권은경
꿈꾸는 집 2022.11.21 (월)
 초등학교 시절 나는 학교가 끝나면 종종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으러 가곤 했다. 시장 어귀에 자리 잡은 떡볶이집은 허름한 건물 일 층에 있었다. 주문한 떡볶이가 나오기를 기다릴 때 페인트칠조차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누추한 벽에 삐딱하게 걸린 액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가게 사장님이 직접 쓰신 산문시였다. 고생 끝에 작은 집을 마련하고, 곤히 잠든 식구들을 내려다보며 상념에 잠겨 쓴 가슴 뭉클한 이야기였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인간의...
권은경
초여름의 어느 날 2022.07.11 (월)
 뜻하지 않은 폭풍을 만나 사정 없이 흔들렸고, 그 중심권에서 겨우 벗어나 한숨을 돌리나 싶은데 일상이 무겁고, 권태롭다. 힘을 주고, 눈을 크게 떠봐도 때로 눈꺼풀은 천근 만근 무겁고, 시야는 흐려진다. 어떤 일에 깊이 몰두하다 보면 기력이 소진되어 무기력증에 빠지기도 한다더니 지금이 그때인 것만 같다. 살면서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간절했던 순간들…. 하루도 허투루 살면 안 된다는 강박에 빠져 나를 몰아세웠지만, 뜻대로 흘러가지...
권은경
새로운 길 2022.02.14 (월)
언제부터인가 지나갈 거라고 믿으며 견뎌온 코로나 사태가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처럼 느껴졌다. 감당해야 할 고통과 책임은 커져만 가는데 어찌할 도리가 없는 사람들은 보랏빛 희망과 검붉은 절망 사이에서 힘겨운 줄다리기를 하는 듯 보였다.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분투하는 사람들의 모습 또한 처절하고 눈물겨웠다. 전염병의 창궐이 가져온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우리는 지독한 고립과 무력감에 빠진 건 아닐까? 해가 바뀌면 좀...
권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