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병원에서 죽기 싫어!

박정은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0-02-03 14:48

박정은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얼마 전 테헤란 공항에서 비행기가 추락해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연휴를 끝내고 학교로 돌아가는 대학생이 다수였다고 하니 아직 너무 이른 죽음이었다. 평소엔 죽음이 그야말로 아주 먼 일처럼 느껴지다가도 이런 뉴스를 접할 때면 불현 듯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선다. 문학에선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을 태어남에, 뉘엿뉘엿 지는 석양을 죽음에 비유하곤 한다. 그래서 가끔 난 내가 지금 어디쯤 떠 있을까를 생각한다. 오십이 넘었으니 분명 중천에 떠 있진 않을 것이다. 대충 80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아마 2시 방향쯤일까?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적어도 지는 석양은 아닐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면 저 젊은 사람들은 비행기에 탈 때 자기들이 금방 질 황혼임을 알았을까? 결코 몰랐을 것이다.

웰빙(well-being) 붐과 함께 요즘은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 웰다잉(well dy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생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누구나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렇다고 죽을 준비를 해두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가는 저런 사고사는 황망하기 그지없는 마무리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사를 한다는 거다. 최소한 죽음을 준비할 시간이 주어진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좋은 죽음’을 준비할 수 있을까?

가깝게 지내는 어르신 부부를 만나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몸이 아파 지팡이를 짚고 나온 어르신께서 부인에게 대뜸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숨이 넘어가도 절대 911에 전화하지 마. 난 병원에서 죽기 싫어.”

난감해하는 사모님을 대신해 내가 끼어들어 물었다. “왜요?”

“병원 가면 찌르고 쑤시고 난리치잖아? 난 기계들 주렁주렁 매달고 죽기 싫어.”

“병원 가도 그런 거 안 하실 수 있어요.”

“그래? 어떻게?” 내가 간호사인 걸 알기에 어르신이 솔깃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그때 말씀드렸던 내용을 여기에도 적어볼까 한다. 당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당신의 생명을 구하거나 연장하기 위해 행해졌으면 하는 사항을 기록해 두는 ‘연명의료의향서(Personal Directive)’라는 게 있다. 여기엔 당신이 의식이 없을 때 대신 결정해줄 대리인을 지정하는 난도 있다. 아무 때라도 변호사에게 가면 작성할 수 있는 문서다. 그리고 건강 상태가 나쁜 사람은 ‘연명의료 계획서(Goals of Care Designation order)’라는 걸 페밀리닥터와 작성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상태가 나빠졌을 때 수혈, 중환자실 치료, CPR 등 각종 공격적인 치료를 할지 말지를 미리 결정해 명시해두는 문서다. 이게 있으면 의료진들은 철저히 당신의 바람을 수용하고, 그에 따를 것이다. 모두가 원하는 고통 없는 편안한 죽음을 병원에서도 얼마든지 맞을 수 있다.

내가 돌보던 환자 중에 80대 할머니가 있었다. 그 할머니는 이런 문서도 대리인도 지정하지 않은 채 치매가 중증으로 진행돼 병원에 입원한 경우였다. 평소엔 아주 순한 분이셨지만, 우리가 의료행위만 하면 아주 사납게 돌변을 했다. 혈압을 잴 때도 그 쪼이는 아픔이 싫다며 팔에 감은 퍼프를 뜯어내느라 우리와 몸싸움을 벌이기 일쑤였다. 그러다 마지막 때가 왔고, 할머니는 의식을 잃고 잠만 잤다. 그때까지도 할머니의 연명의료계획서는 ‘Full Code(모든 치료를 다 하라는 것)’였다. 할머니가 아픔을 싫어하는 걸 잘 알기에 난 가족들을 복도로 불러내 편하게 보내드리자는 제안을 했다. 물론 나를 신뢰하던 보호자들은 내 말에 공감했고, 연명의료계획서를 바꾸고 싶어 했다. 하지만 문제는 멀리 사는 자식들이었다. 평소에 못 하던 자식들이 꼭 막판이 되면 효자가 되는 경향이 있다. 못 다한 효도 때문인지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며 고집을 부렸다. 결국 할머니의 숨이 멈춘 순간, 모든 의료진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우두둑 우두둑 갈비뼈가 으깨지는 소리를 들으며 심장을 누르고, 닥터는 피를 튀기며 목에 기관 삽입을 하고, 간호사는 몇 번을 찔러대며 혈관 주사를 확보해 갔다. 터지고 멍들고 이미 전쟁터가 되어버린 할머니의 몸을 겨우 목숨만 붙여 헬기에 실어 큰 병원으로 보냈다. 살려 보냈다는 보람보다는 ‘지금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미안함과 허탈함에 손끝이 떨려와 다리에 힘이 빠졌다. 그렇게 보내드린 할머니는 다음날 그쪽 중환자실에서 숨을 거뒀다.

이런 다양한 임종들을 지켜보면서 난 하늘에 물든 황혼처럼 고요히 지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변호사를 찾아가 유언장과 연명의료의향서를 이미 작성해 뒀다. 물론 이런 종이 몇 장으로 잘 죽을 준비가 됐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 문서가 내가 마지막을 향해 갈 때, 또 황망한 상황에서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할 남은 가족들의 부담과 혼란을 줄여줄 수는 있을 거라 믿는다. ‘누구나 천국에 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누구도 죽기를 원하진 않는다.’ 어떤 준비를 한다 해도 누구에게나 죽음은 여전히 두려운 일이다. 죽음을 가까이 두면 삶이 더 잘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난 요즘 나 자신을 ‘산비탈에 걸린 석양’이라 생각하며 산다. 생이 얼마 안 남았다고 항상 가정한다. 마치 지금이 내게 허락된 시간의 전부인 양 살려고 한다. 그런 생각으로 내 삶에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쳐내며 살고 있다. 살아가든 죽어가든 그 속에 완전히 잠겨보자! 그렇게 살아야 죽음이 삶을 괴롭히지 못하고, 또 그렇게 죽어야 삶이 죽음을 물고 늘어지지 못할 것 같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