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고수 예찬

정숙인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9-07-22 08:40

정숙인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요즘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이든 편리하게 단시간내에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못한 것들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삶 속에 아직도 많이 존재한다. 특히 먹거리의
경우 그 나라 특유의 농산물은 교포들이 밀집한 도시가 아닌 이상 무척이나 구하기가
어렵다. 정 필요하면 제일 가까운 도시로 나가 원하는 것을 구할 수는 있지만 필요할 때마다
바쁜 일상을 제쳐 두고 매번 사올 수는 없을 뿐더러 더구나 싱싱해야 하는 야채는 가히
어렵기 짝이 없다. 가공식품이라면 몰라도 야채는 도무지 어쩔 도리없이 눈 딱 감고
포기하는 수밖에 없지 싶다. 밴쿠버에서 켈로나로 이사를 오며 한국 식품점이 있을까 검색해
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당연히 없었다. 파, 콩나물, 배추나 무같은 것들은 일반 마켓에서도
구할 수 있었지만 깻잎은 오리엔탈 마켓에 가도 그 모습조차 구경할 수가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십오년전이라 오리엔탈 마켓은 달랑 켈로나에 그나마 하나뿐이었다. 혹시
밴쿠버에서 공수해 올 수 없냐고 물으니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고
중국인 아저씨는 부리부리하게 눈을 뜨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고보니 가공식품들과 대충
몇 가지의 야채를 빼고 웬만한 식품들은 모두 냉동실에 들어가 꽁꽁 얼려져
있었다. 밴쿠버에서 물건을 공수해오기가 힘들기는 힘든가 보았다. 캐나다에서 깻잎은 주로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야채인지라 당연히 없을 법도 했다. 사실 필자는 채식주의자이다. 먹는
것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입에 맞는 재료가 없으면 식욕은 뿔난 망아지처럼 그것을 찾아
더욱 갈구하게 된다. 일종의 보상 심리였다. 평소에 버섯을 고기대신 상추와 깻잎에 올리고
파무침과 생마늘, 고추를 얹어 싸 먹는데 깻잎이 빠지니 영 맛이 나지 않았다. 향이 강한
깻잎이 빠지니 무심하기 그지없었다. 깻잎대신 무엇을 싸서 먹을까 야채 진열대를

서성거렸다. 그 당시 나에게는 깻잎을 대신할 야채를 발굴하는 것이 인생 최대의 과제였다.
첫번째로 케일을 실험해 보았다. 그 다음은 양파를 종류대로 얹어보았다. 달다는 흰 양파,
샐러드에 적합한 보라 양파, 크기가 아주 작은 쉘럿이라 불리는 양파 등 맛이 제각각 달랐다.
그러다 이탈리안 파슬리를 보았고 그 옆에 놓인 연하고 부드러운 고수를 발견하였다. 고수는
실란트로라고 불리운다. 처음 그 냄새를 맡았을 때는 하도 향이 강렬해서 이걸 과연 먹을 수
있을까 싶었다. 지방을 함유하고 있는지 미끌거리기까지 한 것이 세상 처음 보는 신기한
야채였다. 향이 너무 특이해서 처음에는 아주 조금만 먹었다. 머릿속으로 나는 지금 깻잎을
먹고 있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이것은 캐나다에서 버터를 먹고 자란 깻잎이다. 그래서
아주 조금 맛이 다를 뿐이야’ 라고 생각하며 먹었다. 그것을 서너 번에 걸쳐 먹으니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상추에만 싸서 먹을 때보다 맛이 훨씬 좋았다. 점차 고수의 양을 조금씩
늘렸다. 처음에는 이파리 한 개 정도 올려 먹던 것을 십오 년이 지난 지금은 두 세 가닥을
줄기째 통으로 올려 한번에 먹어 치우고 있다. 사람은 적응에 강한 동물이라더니 입맛
까다로운 나와 고수와의 친화력이 새삼 놀라웠다. 보통 고수는 향이 각별하여 비누 맛이
나거나 또는 구토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일부 다른 이들에게는 식욕을 돋구는 호불호가 강한
식품이라 한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대신한다던가. 고수는 깻잎보다도 더 좋은 역할을
내게 충분히 베풀고 있었다. 입맛이 없을 때 고수를 먹으면 나는 오히려 식욕이 돌아오고
좋았다. 비빔밥에 넣고 비벼먹거나 고수만 가지고 새콤하게 초무침을 해먹기도 하고
스무디에 넣고 갈아 먹기도 하였다. 심지어는 전이나 부침개 반죽에도 빠트리지 않았다.
고수의 효능을 보면 참으로 대단하다. 고수는 씹어 먹거나 차에 넣어 마시면 소화를
촉진시키고 위장 및 복부의 가스와 위통을 감소시키는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맵고 짠 음식을 먹을 때 고수와 함께 먹으면 고수에 함유된 칼륨 성분이 나트륨을 몸
밖으로 배출시켜주어 각종 혈관 질환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
동물실험에서도 쥐에게 고수를 주기적으로 투여한 결과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지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이렇듯 내게 맞는 좋은 효능을 가진 야채를 발견할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예로부터 좋은 것은 이웃과 나누어 먹어야 그 효험이 오래간다고
했다. 드넓은 캐나다 타국에서 깻잎을 찾기가 굳이 어렵다면 고수로 대체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영양사로서 맵고 짠 음식을 자주 먹어 위장병이 많은 우리 한국인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픈 역사상 가장 잘 알려진 오래된 허브 중의 하나인 고수를 말이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아빠하고 나하고 2021.06.14 (월)
정숙인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가는 세월이 참으로 빠르다. 지천으로 피어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민들레들이 모두 져 버리고 없다. 그들의 텅 빈 자리가 못내 헛헛하다. 보이지 않고 소리 없이 흐르는 시간은 누구한테나 공평하게 열려 있다. 내 시간의 그림자는 어떠한 무게를 지니고 있을까. 지나는 시간에 소리가 있고 보이는 존재였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바람이 불 때마다 춤추던 연분홍 꽃잎들이 모두...
정숙인
그 기억속의 자유 2020.11.02 (월)
그 기억속의 자유                                                    정숙인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아침에 일어나니 창문에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고양이 네로는 이슬때문에 밖이 잘 보이지 않자 솜방망이 발로 열심히 창문을 문질렀다....
정숙인
일을 나가지 않고 쉬는 날에 오히려 일찍 눈이 떠질 때가 있다. 창문에 어슴푸레 푸른 여명이 비치고 그것을 한 번 본 뒤로는 벌떡 일어나고 만다. 커튼을 제치고 산 밑의 마을을 잠시 내려다본다.   썰물같은 푸른 어둠에 잠겨 있다. 간밤에 내린 눈때문에 세상이 새삼 청순해 보인다. 천지가 창조되던 때처럼 하늘도 땅도 구분이 없다. 멀리 도로에는 달리는 차도 눈에 띄지 않고 과묵하기 그지없다. 백 년된 소나무에 사는 다람쥐들도 간밤에...
정숙인
고수 예찬 2019.07.22 (월)
요즘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이든 편리하게 단시간내에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그렇지못한 것들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삶 속에 아직도 많이 존재한다. 특히 먹거리의경우 그 나라 특유의 농산물은 교포들이 밀집한 도시가 아닌 이상 무척이나 구하기가어렵다. 정 필요하면 제일 가까운 도시로 나가 원하는 것을 구할 수는 있지만 필요할 때마다바쁜 일상을 제쳐 두고 매번 사올 수는 없을 뿐더러 더구나 싱싱해야 하는 야채는 가히어렵기 짝이...
정숙인
은인을 만난 날 2019.02.06 (수)
불교에서는 우리가 속한 이 세상에서의 삶을 아주 잠깐 머물다 가는 것이라고 했다.영겁의 시간을 기다려 찰나를 살아야 하는 아이러니한 삶의 질곡에서 우리는 울며 웃는인생을 만들어가고 있다. 오늘따라 무척이나 하루가 길고 고단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인생이 오늘 같기만 하다면 충분한 가치가 있는 거라며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돌아가는 이들이 있다. 바닷가의 모래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되는행복과...
정숙인
어른이 된다는 것 2018.07.16 (월)
이미 중년의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목마른 외로움이 불쑥 마음 한 귀퉁이에 들어선다. 창 밖은 초록이 무성한 여름이건만 마음은 홀로 쓸쓸한 잿빛 가을을 맞이한 듯 처량하기 짝이 없다. 세 살 무렵에 연년생인 오빠들을 따라 인근 초등학교로 놀러 갔을 때 그만 길을 잃어 버렸다. 너무나 오줌이 마려웠던 나는 놀이에 정신이 팔려있는 오빠들을 등지고 혼자 집을 찾아 갔다. 걸어도 걸어도 인가는 나타나지 않았고 짧은 걸음으로 이리저리 들녘을...
정숙인
너무 오랜만이라 짧고 어색한 통화를 끝내며 아버지의 목소리가 많이 쇠잔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과 달리 아버지의 날이 따로 있어 온전히 하루라도 아버지를 생각하며 국제통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바쁘기 그지없는 이민자의 삶 중에서 다행이라면 참으로 다행이었다. 마음 같아선 찾아 뵙고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대접하련만 그리 할 수 없는 현실의 장벽에 가슴 한 켠으로 한숨만 새어 나왔다. 아버지와의 통화 끝에 옛날 생각에 멍해 있는데...
정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