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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푼 기대로 중소조선연구원을 응원하리

최낙경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7-11-09 16:27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 수필

우리나라 항구마다 배를 짓고 수리하는 조선소가 140여 개가 올망졸망 엎드려 있었다. 이들이 WTO 등 급변하는 기술 우위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80년대 말. 한국조선공업협동조합(이후 조선조합이라 한다) 전무이사인 나는 고민을 거듭하다가 ‘중소 조선이 함께 투자하고 함께 기술 개발할 수 있는 연구원 설립’이어야 말로 그 답이라고 확신하기에 이른다.

정부, 학계, 그리고 관련 단체 등에 줄기차게 설립 취지를 설명하고 다녔다. 한참이 지난 어느 날, 관계기관 K 사무관의 “맥주 값 들고 나오라”는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달려간 자리, 예산을 담당하는 H 사무관에게 연구원 설립 당위성을 설명하란다. 진지하게 설명이 끝내자 “얼마냐?”는 물음이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지만 100억 원을 제시하였다. 옆에 앉은 K 사무관은 나보다 더욱 강력하고 진솔한 멘트로 응원을 하니...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바짝 다가서니 장내의 분위기가 점점 화기가 돌았다. 예산이 거의 마무리되어갈 즈음, 조선조합과 조합원의 동의를 얻어내고 이어 조선업체를 대상으로 연구소 출연자금 모으는 투어에 전국을 몇 번이나 돌고, 돌았던가?

IMF의 위기

겨우 97년 초, 나는 중소조선연구원 창립 원장으로 떠밀려 정부예산 40억 원, 업계 출연자금 8억 원을 들고 중(스님)따라 절이라는 부산으로 내려가 중앙동에 조그마한 사무실을 빌렸다. 서너 명의 석 박사급 연구원을 뽑으니 조선소들이 “왜? 사람 빼앗아 가느냐?”고 으름장이니 설립 초기부터 가시밭길이었다.

겨우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시기에, 평생에 차마 들어 보지도 못한 IMF라는 강력한 태풍이 휘몰아치니 온 나라 조선소가 힘없이 쓰러지며 부도가 났다. 우리의 소중한 고객이자 유일한 시장이 삽시간에 무너지니 참으로 황당하고 참담하였다.

퇴근 후 직원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여러분! 여러분들은 여태껏 대학에서 배운 조선 공학을 돈을 받고 기술지원을 하였지만, 이제부터는 조선이 회생될 때까지 우선 지원하고 돈은 나중에 받도록 하자”라는 발상의 전환을 간곡하게 제의하여 간신히 응답을 받았다.

그 후 연구 수입이 점점 줄더니 급기야는 월급을 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또다시 소주파티를 열어 “나를 믿고 기다려 보자”라는, 실로 염치없는 말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본인은 물론, 월급으로 살림을 꾸리는 주부들에게는 도무지 용납이 될 수 없는 참으로 무모한 일이었다. 그런 일들을 스스럼없이 수용하여 연구에 열중한 연구원들의 창업 정신이야말로 오늘날 반듯한 연구기관으로 승화시킨 원동력이 되지 않았던가? 비로소 이 자리를 빌려 머리 숙여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도약한 RIMS

중소조선산업과 연구원의 도약을 위한 새로운 과제의 발굴을 시도하였다. ‘해양레저장비 개발사업’이라는 과제를 들고 해양수도의 입지를 격상시키는 부산시의 공감을 얻고, 국민의 먹거리인 미래 동력산업이라며 중앙정부의 평가를 받는다.

150억 원이라는 당시로는 아주 큰 연구과제인 것이다. 이는 실로 커다란 몸부림이었고 개혁에 버금가는 진화였다. 이에 전 직원들은 이 눈부신 사업에 불철주야, 혼신의 힘을 기울여 번듯한 연구동, 회류 수조동 등의 첨단 시설을 갖추고 명실 공히 세계 해양레저장비 개발사업, 개척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는 준공식 테이프를 끊었다. 그리고 2020년에 세계 해양레저산업 물동량 20%를 달성이라는 비전을 발표하였다. 이때 ‘이것마저 기필코 해 내겠다’며 모든 직원이 불끈 쥔 두 손목에는 굳건한 의지가 하늘을 찌를 듯이 충일하지 않았던가?

영원한 중소조선, 초심은 언제나 가슴에 담고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중소 조선은 국민의 미래를 짊어지고 우리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은 멈출 수 없는 산업 중의 하나이다. 해양레저산업의 국제적인 추세가 인류의 삶의 질 향상에 크게 뜬 눈들로 인하여 어느 산업보다 활발하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넓게 흐르는 세계의 물줄기를 헤아려 그 흐름에 함께 라면, 언제나 기회는 늘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 ‘준비되지 못한 사람은 기회가 온 줄도 모르지만 준비된 사람은 기회의 열차에 올라타게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꿈을 이룩하는 날을 부푼 기대를 걸고 응원하리. 그 속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초심(初心)을 늘 간직하면서... 연구원 설립의 단초가 된 조선조합을 비롯하여 조선학회, 관계 부처 등 늘 관계 속에서 공고히 다져 나갔으면 한다.

인생에서 누구나 도전에 부닥치고, 어려움을 겪을 지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자긍심에서 울어 나온 우리 인간만이 갖는 아름다운 인성(人性)이 아니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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