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메추리 알이 안긴 행복

송무석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7-08-25 17:18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수필

좋아하는 음식을 여유 있게 먹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며칠 전 저녁때 아들이 어려서 서울에 살 때 엄마가 가끔 해 주시던 메추리 알 장조림을 맛있게 먹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와 함께 이민 초기에 좋아했던 장어구이도 생각난다는 말을 했다. 밴쿠버는 한국보다 메추리 알 가격이 꽤 비싸고 알이 작아 다루기도 힘든 데다 아이들이 특별히 찾지도 않기에 수년간 아내가 메추리 알 요리를 한 적은 없었다. 다른 식구들이 좋아하지 않는 장어구이도 아들이 오랫동안 해 달라고 하지 않아서 굳이 하지 않았다.

밴쿠버의 여름 날씨치고 요즘은 꽤 덥다. 연일 30도 안팎으로 수은주가 오르니 옆집 사는 데비도 너무 덥다고 한다. 우리 집은 단열이 잘 되는 편이라 겨울에는 난방비가 조금 들고 여름에도 문을 닫아 놓고 있으면 저녁 무렵까지 그런대로 지낼만하다. 선풍기도 좀처럼 켜지 않아도 살만하다. 그런데, 문제는 부엌이다. 부엌이 집 가운데 있어서 요리하면서 나오는 열기가 쉽게 배출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몹시 더운 여름날에는 되도록 간단한 요리만 밖에서 전기 조리기구나 휴대용 가스버너를 써서 한다. 이것이 내가 요리하는 아내에게 특히 여름이면 미안한 이유이다.

어제 아내가 시장을 봐 온다고 나가더니 메추리 알과 홍두깨살, 그리고 장어를 사 왔다. 이 더운 날씨에 창문도 없는 부엌에서 요리하기는 무리인데도 아내는 메추리 알 장조림과 장어구이를 해서 저녁상에 올렸다. 아들은 더운 날씨에 왜 고생하시면서 이런 요리를 하셨느냐고 말하면서도 모처럼 쫄깃한 장조림과 구수한 장어구이라며 신이 나서 저녁을 먹었다.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나는 날은 외식하면 될 것을 아들이 맛있다는 요리를 해 주려고 그 고생을 하다니! 엄마의 사랑은 그런 것이리라, 밴쿠버 날씨가 왜 이리 덥냐고 하면서도 애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 먹이려고 몇 시간씩 기꺼이 고생하는. 아내는 식구들이 먹고 싶다거나 몸에 좋다고 하면 꼭 해서 먹여야 마음이 편해지나 보다.

내가 어려서 서울로 전학 와 지내다가 방학에 시골집에 내려가면 어머니께서는 손수 만두도 빚으시고 칼국수도 해 주셨다. 초등학생이던 내가 만두를 좋아해서 부엌을 들락거리며 장정보다도 더 많이 먹는 것을 아시고 만두를 해 주시는 것이었다. 10여 명의 과수원 일꾼들의 오전 오후 곁두리 두 번까지 포함해 하루 다섯 번 식사를 준비하시면서도 언제 시간을 내셔서 수백 개의 만두를 빚으셨는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울 뿐이다. 물론 나도 국수 기계를 돌려 가면 만두피를 밀고 밥공기로 동그랗게 만두피를 자르며 돕기는 했지만. 더운 여름날 아궁이에 불을 때서 그 많은 만두를 하시려면 얼마나 덥고 힘드셨을까! 그때 나는 그저 맛있다고 배가 아플 정도로 많이 먹으면서 배부른 돼지처럼 행복하기만 했었다. 이제야 그것이 말로는 사랑한다는 표현을 안 하시던 어머니께서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이민 온 이후로는 한국에서처럼 제사를 지내지 않지만, 아내는 여전히 한국의 전통 음식을 먹어야 한다면서 명절이면 녹두 빈대떡을 부친다. 나는 더는 먹지 못하고 아이들이 날로는 잘 안 먹는 김치도 아내는 집에서 깨끗이 담가야 한다면서 여전히 담근다. 아내는 낱개로 사면 비싸다고 배추와 무를 상자로 사서 온종일 김치 재료와 씨름한다. 아이들은 김치찌개나 김치전을 부쳐 주면 아주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때로 아이들이 김치만두를 찾으면 아내는 만두피를 사다 직접 담근 김치로 만두를 해 먹이기도 한다. 그 맛있는 김치만두를 이제는 내가 못 먹기에 나를 위해서는 고기만두를 별도로 해 준다. 이런 만두를 먹고 있으면 어머니께서 어린 내가 실컷 먹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지켜보시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으시던 때가 떠오른다. 또, 장모님은 처가에 들리면 자주 손수 농사지으신 검정콩으로 두부를 해주셨는데.... 아, 그래! 요리는 가족을 사랑하는 주부의 마음이고 정성이야.

오늘 누나가 부모님께서 사시는 시니어 홈에 조카딸을 데리고 가서 카톡으로 페이스톡을 했다. 덕분에 한국에 가서 뵌 지 4년이 넘어 처음으로 화상으로라도 어머님을 뵈었다. 그간 어머님께서는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시게 노쇠하셨다. 나도 어머님이 너무 변하셔서 '아, 어쩜 저렇게 여위셨나!' 하고 속으로 놀랄 정도였다. 어머님은 나를 위해 그 덥고 추운 날을 가리지 않으시고 맛있는 음식을 해 주셨는데 나는 그런 어머니께 아무 도움도 못 드리고 타국에 살고 있으니 마음이 영 편치 않다. 그래도 “사랑은 내리사랑”이란 말을 떠올리며 어머님도 우리 아이들의 행복을 기뻐하시리란 생각에 죄송스런 마음을 조금 누그러뜨린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하루를 다독인다 2024.02.12 (월)
하늘에 먹구름 한 점이 맘에 짙게 내린 어스름 같아바람이여 가져가라 했는데바람이 더디 온다고 구름은들먹들먹 울고 있다홀로 쏟는 속 울음이그리 쉬이 강이 되어 흐를 수 없어언젠가 올 바람을 기다리며두 손 모아 축축한 무릎그렁그렁 눈물로 씻는다마음에 창 하나 그려하늘가에 열어 놓고알몸으로 굴러야 했던 하루를바람결 이랑이랑 애절히 묻고가슴 비벼 문지르며썩어라, 아픔도 잘 썩으면꽃으로 피어나리버거웠던 하루를 다독인다
한부연
시인의 뜨락 2024.02.12 (월)
허퉁할 때 들여다보는 비밀의 뜨락이 있다몸집 가녀린 진달래가 머리숱 돋은 반송을 두르고실팍한 일본단풍 뒤 키만 껑충한 설악산 단풍나무 새강아지풀 같은 입술 내민 양버들까지다들 고꾸라질 듯 앞으로 몸을 내밀고 있다볕이 그리운 게다서녘볕이나마 온몸에 받고 싶은 게다고곡 방문길 노시인의 속주머니에 묻어와노수필가의 정성으로 틔운 고향 진달래병든 소설가의 퇴원길에 안겨온 희미한 분홍색 튤립제각기 다른 품, 다른 발길에...
김해영
전나무와 향나무 2024.02.12 (월)
   나무를 잘랐다. 앞마당에서 전나무와 함께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었던 향나무였다. 이사 왔을 때만 해도 둘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해가 지나 서로의 몸체가 불어나면서 향나무 가지가 전나무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향나무와 맞닿은 전나무 부분은 푸른색을 잃으며 죽어가고 있었다. 향나무를 진즉 다듬어 주어 서로의 간격을 마련해 주어야 했다. 나무에 대해 잘 몰랐던 무지함과 게으름의 결과였다....
민정희
광교산 계곡에서 출발해 소리 없이 흘러온 물이 수문 앞에 다다라 소용돌이쳤다. 태양이 서포루(화성 서측 성벽 위 2층 누각) 너머로 뚝 떨어지는 순간, 사나운 포성을 질렀다. 기울어지지 않고 평평하던 물이 일곱 홍예(화성의 북쪽 수문)를 지나 수직 낙하하며 갑자기 격정의 폭포수로 변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실개천보다 크고 일반 하천보다 작은 공간에 소망을 추구하는 사람, 우연의 재회를 꿈꾸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꿈들이 모여 방주의 천정...
박병호
   어린 시절 나는 눈을 참 좋아했다. 눈이 오는 날이면 동생과 뛰쳐나가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코끝과 손끝이 발개져서 집에 들어오면 갑작스레 따뜻해진 공기에 손발이 가려워 피가 맺힐 때까지 긁어 대곤 했다. 그래도 동네 친구들과 함께 눈을 굴려 가며 누가 더 큰 눈사람을 만들지를 겨루는 시간은 더없이 즐겁기만 했던 기억이다.  그 시절 눈이 오면 부모님이 “눈이 오네. 길 얼지...
윤의정
그림자 3 2024.02.05 (월)
한여름 고산의빙하를 감상하고내려오다 길을 잃었다초저녁부터브랜디와 와인을 걸친 산의 양 어깨는더욱 무거워 보였다어둠 속에서 혼자 싸우다 먹칠하다무사히 내려왔다​라면 끓여 허기 채우고산짐승 공포와 습기를 머금었던이슬 친 옷가지며 어두웠던 마음조차따사로운 모닥불에 털어 말렸다빠닥빠닥 말리고 훌훌 날려버렸다진한 커피 한 잔 마시고 선애써 잠을 청했다산 그림자 서늘하다 못해오싹한 밤이었다​날카롭게 흘기던외 눈 달빛...
하태린
봄이 오는 밤 2024.01.29 (월)
조용한 호흡이크게 느껴지는안식의 긴장이무의식의 시간을날 선 칼같이 새롭게 한다대지의 핏줄은이미 봄을 바로 집터 밑까지밀어 오고밤은 내일 터질 성벽을벼르듯 턱 밑까지숨이 차다가느다란 비가적막의 커튼을 드리우고어둠의 너머에새봄의 생기가아가의 숨골 위에새록 인다긴 여정 끝지난 모든 과실은겨울 추위와 얼은 땅거죽아래에서 모두 해체되어 다시준비되었다땅 밑의 수로는물길을 뚫어바로 봄의 축제를 대비했다모든 생명은 이제이해...
김석봉
밴쿠버에서 남들은 거의 다 가보았다는 멕시코 캔쿤 여행은 갑작스럽게 결정이 났다. 막내 딸과 아내 세 식구가 비행기를 탄 것은 작년 12월 11일이었다. 근래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향할 때는 에어 캐나다 직원 가족으로 자리가 있어야 탈 수 있기 때문에 빈자리가 있으려나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할인 가격으로 사기는 했지만 어쨌든 공짜는 아니다. 공짜가 아니면 당당해진다. 비행기는 이륙 후 기수를 남쪽으로 돌려 콜로라도...
한힘 심현섭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