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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석 앞에서...

민완기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11-13 17:15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한동안 쉬다가 새롭게 시작한 사업체에 출근하기 위해서는 랭리 브룩스우드 공원묘지를 지나치게 된다. 인근에 레크레이션센타와 주택가 한복판에 그야말로 정원과도 같이 조성된 묘지 앞을 지나치노라면 그야말로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평소엔 그렇게도 갖추기 어려운 겸손이 저절로 생겨난다. 13,4년여쯤 전, 아직 혈기가 왕성하고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삶보다는 이민을 선택한 개척자로서 가슴속에 야망이 불타오르던 시절, 이 세상에 이름을 남긴 선인들의 묘비명을 일람해보며 썼던 졸고(拙稿)가 떠오른다. 

만약 나의 온 생애를 한 줄의 문장과 바꾼다면, 그리하여 오늘 나의 비석에  ‘묘비명’ 을 새겨야 한다면 과연 어떤 문장을 준비해두어야 할까? 이렇게 쉽지 않은 문제에 봉착했을 때에는 먼저 걸어갔던 선현들의 묘비명을 일람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퇴계 이황은 숨지기 나흘 전 조카를 불러 자신의 묘비에 새겨질 묘비명을 이렇게 당부하였다. “나면서부터 크게 어리석었고/ 자라면서 병이 많았네/ 즐거움 속에 근심도 많았구나/저 세상으로 떠나며 생을 마감하는데/다시 무엇을 구할 것인가” 당대 대유학자의 스스로 지은 묘비명이라 하기엔 너무도 소박하다. 안분지족하고, 삶에 감사하며 떠나는 마음가짐이 표연하다.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의 묘비명은 이러하다. “자신보다 현명한 사람들을 주위에 모으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 여기에 잠들다.”  최고 경영자라는 사람이 어떤 자질을 가져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명구다. 

  <여우와 황새> , <황금 알을 낳는 암탉>의 작가 라 퐁텐느의 묘비명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있다. “나는 내가 왔던 것처럼 간다/모든 재산을 탕진하고/많은 재물을 하찮게 여겼다/시간으로 말하자면, 그것만큼은 잘 쓸 줄 알았다/시간을 절반으로 나누어서/반은 실컷 잠자는 데/나머지 절반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데 썼으므로...”  그의 우화 속에 담긴 부르주아지의 교양과 섬세함, 예술가로서의 비판의식과 풍자정신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듯하다. 

   미국의 20대 대통령 가필드는 재임 중 저격을 받고 두 달 후 사망했는데 죽기 전 의식이 돌아오자 측근에게 "내 이름이 인류 역사에 남을 것 같으냐"고 묻고,  “공화국을 위해 고뇌하다” 라는 문장을 적어주었다. 그러나 세계를 제패한 알렉산더 대왕은 유언을 묻는 측근에게 매장 때 손을 관 밖으로 내놓고 묻으라는 말만 남겼다. 천하를 손에 쥐었던 그였지만 그도 떠날 때에는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뭐니뭐니해도 묘비명의 진수는 극작가 버나드 쇼가 남긴 촌철살인의 한마디가 아닐까 싶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그 시절, 결구에 썼던 내 묘비명은 상당히 당당해 보인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고, 캐나다 밴쿠버로 삶의 뿌리를 옮긴 후에는 2세들의 한국어수업을 위해 애쓰다가, 지금은 구름을 페어웨이로 하나님과 라운딩 중”이라고 호기롭게 썼던 것을 보면...   
  
  지천명을 넘어 만 55세 시니어 대열에 합류하고 보니, 이젠 이름을 남긴 자나 영웅들보다는 주위의 갑남을녀(甲男乙女)들의 묘비명이 더 궁금해져온다. 11월 우기의 날씨 속에 모처럼 햇빛이 좋았던 오늘, 공원묘지를 거닐며 찬찬히 묘지석들을 읽어보았다. 

 “Make a melody unto the Lord"
 “Life’ s work well done"
 "For me to live is Christ. And to die is gain."
 "There are no partings in Heaven"
 "Asleep until Jesus comes"
 "Døde I troen pa sin frelser"

 이제 남은 것은 나의 몫이다. 과연 오늘, 이 세상에서의 ‘즐거운 소풍’을 다 마치고 내가 왔던 곳으로 훌훌 떠나야 한다면 어떤 인사의 말씀을 남겨두어야 할까?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고 또는 조용히 이 세상에서 드리는 마지막 기도를 남기는 것도 좋으리라. 그러나 내 아들이, 또 그 아들의 아들이, 먼 훗날 혹여 나의 무덤가를 찾아와 웃자란 잡초를 뽑으며 나의 묘지석을 쓰다듬어 본다면, 나는 그 때 그 아이들에게 이렇게 인사하리라. 

 “ 이름 없는 풀꽃처럼 와서, 비와 바람과 햇빛을 즐기다가 돌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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