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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맘이 된 딸

박정은(Kristine Kim)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06-12 11:56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미혼모란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된 여성을 말하고, 싱글맘이란 자기가 원해서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여성을 지칭한다고 한다. 한국도 이젠 갈수록 혼자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늘다보니 이런 세분화된 호칭까지 생긴 것 같다. 갑자기 싱글맘 이야기를 꺼낸 건, 고등학생인 딸이 얼마 전에 치렀던 ‘3일 동안 싱글맘 체험하기’, 바로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싶어서다.

           딸이 다니는 고등학교에선 남학생, 여학생 가릴 것 없이 모두 ‘72시간 아기 돌보기’라는 과제를 치러야만 한다. 아기를 데려오기 전에 걱정이 늘어졌던 딸은 나에게 3일 동안 할머니가 될 것이니 양육을 같이 도와줘야 한다는 협박에 가까운 부탁을 거듭했다. 아기를 데려와도 분명 딸이 돌보진 못할 거고, 이 과제가 은근슬쩍 내게 넘어오는 것은 아닐지 지레 걱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딸이 바구니에 눕힌 아기인형을 안고 온 날, 난 그만 폭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대충 어느 구석에 박아뒀다 먼지만 털어 3일만 들고 왔다 갔다 하면 되는 그런 인형쯤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녀석이 겉만 인형이지 하는 짓은 진짜 아기와 똑 같은 로봇이었다. 귀를 기울여보니 가슴 속에 심장이 뛰고 있었고, 그 심장이 같이 딸려 온 우유병과 기저귀에 붙은 센서를 감지하도록 되어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면서 우유를 달라하고, 우유도 진짜 20분씩 쪽쪽 소리를 내며 숨까지 가쁘게 몰아쉬며 먹었다. 그러다 갑자기 울면 기저귀 갈아 달라는 거고. 갈아주고 다시 먹이기 시작하면 배가 불러야만 헤엥~ 소리를 내며 물러났다. 그래서 눕히면 바로 다시 울기 시작했다. 트림시키라고. 가끔은 뭘 해줘도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럴 땐 아기 바구니 흔들며 같이 놀아달라는 거였다. 여하튼 이런 요구사항 중 하나라도 빠뜨리면 바로 감점이 되는데, 아기 심장이 그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다 아기를 떨어뜨리면 심장이 멈춰버린다. 즉, 아기가 죽은 것이니 딸은 빵점을 맞게 된다. 아기 목을 잘 못 받쳐 꺾여도 아기가 죽게 되어 있었다. 딸은 밥을 먹다가, 공부를 하다가, 심지어는 목욕을 하다가도 뛰어 나와 이 아기를 돌봐야만 했다. 그럼 난 뭘 하느라 도와주지 않았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바로 이 부분이 내가 학교를 향해 엄지를 치켜드는 부분이다. 딸 오른팔에 절대 뺄 수 없는 센서가 붙어있었다. 아기 심장은 그 센서를 가진 사람이 돌봐야만 반응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기가 온 날부터 아기 울음소리에, 또 초긴장한 딸의 비명 소리까지 더해져 우리 집은 점점 아수라장이 되어갔다. 새벽 2시, 4시 밤새 몇 번이나 울며 보채는 아기를 안고 딸은 꾸벅꾸벅 졸면서 우유를 먹이기 시작했다. 그러니 젖병 꼭지가 입에 곱게 물려있겠는가? 자꾸 빠지는 우유 꼭지에 화가 난 아기는 불량엄마를 향해 거듭되는 울음으로 항의를 하고 있었다. 그 울음소리에 잠을 설치며 남편과 난 비몽사몽간에 중얼거렸다. “악몽이 따로 없어. 이거 진짜면...너무 끔찍해. 끔찍해!” 과제가 진행되는 72시간은 어디를 가든 아기를 달고 다녀야만 했다. 아침마다 잠까지 설쳐 하얘진 얼굴로 책가방, 아기바구니, 기저귀 가방까지 모두 들춰 메고 힘겹게 스쿨버스를 타는 딸을 보면서도 미혼모될 생각은 절대 안하겠다 싶어 웃음이 절로 났다.
 
       3일의 과제를 마친 날, 아기 심장을 분석해 보니 감점 사항이 없어 100점을 맞았다고 딸이 신이 나서 돌아왔다. 점수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난 이 과제를 통해 딸이 뭘 배웠는지가 더 궁금했다. 딸은 내가 예상했던 답을 하나씩 늘어놓기 시작했다. 첫째, 난 절대 미혼모가 되지 않겠다. 둘째, 나를 키워준 엄마가 너무 고맙다. 아기를 돌보다 보니 어깨가 빠질 듯이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엄마도 날 키우면서 이렇게 아팠을 거란 생각에 눈물이 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뭐가 더 남았다는 거지? 예상했던 답이 다 나왔다고 생각한 난 의아한 눈으로 딸을 쳐다봤다. “앞으로 살면서 싱글맘을 만나면 나도 그들을 도울래요. 혼자 아기를 키우려면 얼마나 많은 도움이 필요한지를 알았어요. 사실 학교에서 친구들이 각 수업마다 내 책과 기저귀 가방 등을 들어주지 않았다면 나도 아기를 잘 돌볼 수 없었을 거예요.”

      똑 같은 것을 보고도 왜 딸은 배웠는데, 난 배우지 못했을까? 미혼모를 비판의 대상으로만 보는, 그런 사회에서 자란 난 이미 편견이란 색안경을 끼고 있었던 것이다. 캐나다에서 개인사업을 하다 보니 많은 이력서를 받게 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이들은 이력서에 꼭 싱글맘을 기재하는 경향이 있었다. 숨겨도 모자랄 판에 무슨 자랑이라고 기재를 하나 황당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한번은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싱글맘은 혼자서 아기를 키우니 다른 사람보다 더 도움이 필요하고, 그러니 같은 조건이면 싱글맘에게 직업을 줄 거라는 생각에 기재한다는 거였다. 난 딸을 통해 그제야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미혼모나 싱글맘이 된 사람들에게 꼭 입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기 보다는 양육이라는 또 다른 선택지를 제공하는 포용적인 사회를, 이들은 바로 이런 교육을 통해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 과제는 내 예상처럼 꼭 10대 미혼모를 방지하자는 데에만 교육의 목적이 있는 게 아니었다. 거기엔 미혼모 예방, 그리고  동시에 싱글맘이 된 사람들이 친자녀와 결별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배려하는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도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예방와 포용을 함께 담은 교육,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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