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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5-04-17 09:30

한국문인협회 캐나다 밴쿠버 지부 회원작/수필
“어머님은 겨울 내 우리 집에 계시다 이제 날씨가 풀리니까 독정리에 가시겠다고 하네요. 연세에 비해 잔병 없이 건강 하시지만 그래도 연로하신 노인을 혼자 계시게 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데 고집을 피우고 가시겠다고 하시니 이번 주말에 모셔다 드리려고 해요. 형님 내외분 뵌 지가 오래되어 얼마나 변했는지 궁금합니다. 어머님 돌아가시기 전에 식구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무쪼록 두 분 건강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임서방 올림“ 일전에 보내온 매제의 이메일 내용이다.

 


이 땅에서의 삶을 돌아보면 힘들고 어려운 때가 참으로 많았다. 이민 초기에 겪은 문화에서 오는 충격, 언어의 불편, 사업의 어려움, 자녀들의 적응 등등 ... 이것들은 이민자면 누가나 겪는 과정이기도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어머님을 곁에서 돌보지 못 하는 한 집안의 장남으로써의 의무감 때문이었다. 38세의 젊은 나이로 홀로 되어 많은 어려움을 견디시며 힘겹게 우리 3남매를 키워온 어머님을 남동생과 여동생에게 짐이 되게 한지도 나의 이민의 삶의 시작과 더불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떠나올 때 집안 할아버지께서는 “부모를 버리고 고향을 떠나는 것이 군자의 수치(棄父母 離故鄕 君子之羞恥)임을 알고는 있느냐”고 꾸짖으셨다. 나는 부끄럽게도 1987년 고향 땅을 떠나 온지 22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그 땅을 밟아보지 못하였다. 마치 아브라함이 본토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 땅에서 이민의 삶을 어렵게 정착하면서 한 번도 본인이 직접 고향 땅을 가보지 못하고 세류에 휩싸여 나그네로 살아간 것과도 흡사한 나의 삶을 보게 된다.

처음 몇 년은 두고 온 어머님과 형제들이 그리워 견뎌내기가 무척 힘들었다. 삶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참으로 엄청나서 마치 광야에 혼자 버려진 기분이었다. 우리 부부는 이 땅에서 함께 삶의 젖줄을 잡고 가야했기에 오랜 세월을 같이 붙어있으면서 가게를 꾸려가게 되었다. 때문에 친구나 소속 공동체와 더불어 여유를 즐긴다는 것이 마치 먼 이웃의 일들로 자리 매김 되었던 것이다. 처음 몇 년은 빠짐없이 찾았던 동창회에도 얼굴을 감추게 되었고 지부(支部) Chartered member(創立要員) 로 섬겨오던 CBMC(基督實業人協會)도 그만두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 길을 헤쳐 가기 위해 나름대로 방도를 찾아야만 했다. 그 때 나는 인생의 암흑기를 당한 요셉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인생의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사람을 의지하기 때문에 쉽게 좌절과 절망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요셉의 경우는 달랐다. 그는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면서 용케도 사람의 힘으로 그것을 극복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방법으로 삶의 태도를 바꿨던 것이다.

그 때부터 나는 새벽기도를 시작으로 집사람과 같이 주어진 바쁜 삶을 보내야만 했다. 삶이 여유 없는 날들로 이어지고 힘이 들어 때로는 하나님께 푸념부터 털어놓기가 일수였다. 아침 일찍 등교하는 아이들은 늘 나의 기도실에 불이 켜져 있음을 확인하고 있었다. 조용히 기도실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쪽지를 남기고 가는 경우가 있었다. 그 중에는 기말 고사를 두고 힘든 공부를 잘 치르도록 부탁하는 기도 쪽지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때는 목이 아프고 두통이 나며 허리부분의 고통 때문에 참으로 애처로운 얼굴로 찾아와 기도 부탁을 할 때면 나는 아픈 부위에 손을 얹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였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아빠의 기도 때문에 통증 없이 하루를 편하게 보냈다는 말을 들을 때는 하늘을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이제 그들이 우리 곁을 떠나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니 다행한 일이다. 그리고 감사한 것은 우리 부부가 누리는 건강이다. 집사람은 이민 와서 병원엘 가는 일이 거의 없는 편이어서 아직까지 가정의(Family Doctor)를 지정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매년 정기 검사라도 받아보라는 나의 채근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그녀이다. 더욱 감사한 것은 같은 장소에서 같은 가게를 20년이 넘도록 버티어온 사실이다. “우리 나이에 많은 사람들이 건강 때문에 걱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다행히도 우리는 소일을 감당할 수 있는 건강이 있음을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변이다. 행여 연휴가 되어 어디라도 가서 시간을 보내노라면 가게가 궁금해서 안달이다. 그러는 집사람이 너무도 안쓰러워 이제는 나이도 들었으니 그만 가게를 처분 하자고 몇 번이나 권유를 했지만 그 때마다 막무가내였던 그녀가 얼마 전에 드디어 나의 제안을 수용하게 되었다. 참으로 마음 가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은 어머님께 전화로 말씀을 드렸다. “어머님, 임서방의 편지처럼 모두가 함께 모여 자리를 같이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에 가게를 복덕방에 내 놓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여의치 않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꼭 드리고 싶습니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어머님께서 건강하시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부끄러운 변명일지는 모르겠으나 지금까지 아들이라 생각하신 어머님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제 곧 찾아뵙겠습니다. 오늘도 어머님께서 우리가 가장 어려웠을 때 전화로 들려 주셨던 귀한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도서 7: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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