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최종수정 : 2014-11-28 11:36

한국문인협회 캐나다 밴쿠버 지부 회원작/수필
지난 주 금요일 오후, 아보츠포드 소재 한글학교 수업을 위해 No.1 하이웨이를 달리고 있는데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그만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윈도우 와이퍼의 작동속도를 최대로 하고도 차량의 속도와 빗줄기의 속도가 합쳐져 시야를 확보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조심조심 EXIT 73을 지나 고갯길을 막 내려갈 쯤,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면서 구름사이 사이 햇살이 비추며, 건너편 눈 덮인 산자락 위로 무지개가 찬연히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무지개 폭의 세 배쯤 떨어져 또 하나의 무지개가 함께 한'쌍 무지개'가... 그 모습이 너무도 신비롭고, 그 색채가 얼마나 황홀한지 입을 도저히 다물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학급문고에 비치된 “쌍 무지개 뜨는 언덕”을 읽으며 눈물 흘리던 기억이 새로웠다. 그리고 한글학교 아이들과 애써가며 만든 '색동저고리' 문집이 떠올랐다.
 
  “ 옛날 옛날 형제끼리 우애가 깊고 화목한 가족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집에 막내 동생이 태어났습니다. 첫 돌이 되어 어머니는 막내에게 새 옷을 짓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무슨 색이 좋은지 결정할 수가 없었지요.

첫째는 노란색이 좋다고 하고, 둘째는 파란색, 셋째는 빨간색, 넷째는 초록이 좋다고 했지요. 서로들 자기가 고른 색깔이 제일 예쁘다고 소리를 높였답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막내아우에게 자기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빛깔의 옷을 입히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어머니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자식들 중 누구하나도 마음 상하는 것은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생각에 지친 어머니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어요. 그런데 꿈속에서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떴어요. 그 무지개가 갑자기 가운데가 좌악 찢어지더니 그 양끝이 마치 옷감을 찢어 놓은 것처럼 펄럭이는 거예요. 그리고 어머니는 잠이 깼습니다.

일어나서 어머니는 막내의 옷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 저고리는 첫째가 좋아하는 노란색부터, 파란색, 빨간색, 초록색 그리고 보라와 주황색도 있었답니다. 어머니께서는 알록 달록 어여쁜 색동저고리를 만든 것 이지요.”
 
  한 달음에 아이들에게 달려가 오늘 본 무지개의 고운 빛깔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우리는'빨주노초파남보'라는 예쁜 말이 있기에 무지개의 일곱 색깔을 다 볼 수 있지만, 아프리카 어느 부족은, 무지개의 색깔을 나타내는 단어가 세 개뿐이고,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의 눈에 무지개는 그저 세 가지 색상으로만 비쳐진다는 것도 얘기해 주었다.
 
  교과서를 펴고'말의 빛'이라는 시를 함께 공부하였다. 모두 다 큰 목소리로 시를 따라 읽었다. 아름다운 우리말의 고운 빛이 우리를 환하게 비추어 주고 있었다. 늦도록 교실 위로는 무지개가 환하게 떠 있는 느낌이었다.
             
 
  쓰면 쓸수록 정드는/ 오래 된 말
 
  닦을수록 빛을 내는/ 고운 우리말
 
 
  “사랑합니다” 라는 말은
 
   억지로 부리지 않아도/ 하늘에 절로 피는 노을 빛
 
   나를 내어 주려고/ 내가 타오르는 빛
 
 
  “고맙습니다” 라는 말은
 
   언제나 부담 없는/  푸른 소나무 빛
 
   나를 키우려고 / 내가 싱그러워지는 빛
 
 
   “용서하세요” 라는 말은
 
    부끄러워 스러지는/ 겸허한 반딧불 빛
 
    나를 비우려고 /내가 작아지는 빛
 
 
부기- 밴쿠버 하늘에 우리말의 고운 빛을 달고자 애쓰시고 헌신하시는 모든 한국어학교의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지난 11월 초 주말 어느 날, 밴쿠버한국어학교 주관 교사연수회 자리에 초대하여주시고 거기서 정성으로 준비한 학습지도안을 약간은 떨리는 음성으로 발표하시던 선생님들의 그 진정어린 모습은 지금도 제 가슴속에 잘 간직되어 있습니다.  일선 교사로서 수업현장에 있을 때 썼던 글을 그 감동을 잊지 않고자 다시 떠올려봅니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꼬박 만 2년여를 팬데믹의 우울한 잿빛 그림자 속에서 지내온 셈이다. 다시 새로운 한 해를 맞아 6호선 3번 열차에 떠밀려 탑승을 하게 되면서, 문득 쳐다본 달력 위 ‘2022’라는 굵은 숫자는 진정 어린 시절의 공상과학 소설과 ‘새소년’ 잡지의 미래특집난에서나 만나던 숫자로 다가온다. 중년의 입문 단계에 서서, 특히나 아직도 오미크론과 델타 그리고 부스터 샷 등등 기이한 공상과학 만화의 용어들이 난무하는 이 수상한 시절에 나의 버킷...
민완기
귀가 순해진다는 육학년, 이순(耳順)반열에 등극하면서 늘 비슷한 일상 가운데 삶의 활력소가되는 것은 토요일 새벽, 교회 젊은 집사님들과의 운동시간이다. 해가 긴 여름철에는 어김없이 5시기상을 하지만, 요즘 같은 우기철에는 6시쯤 일어나 행여 마나님 깰세라 조용히 차려 입고,간단히 요기를 하고는 트래블 머그잔에 커피를 내린다. 간식을 나누어 먹는 기쁨이 큰지라 오늘일용할 주전부리를 챙기는것도 빠뜨리지 않게 된다.아침 안개가 자욱한...
민완기
Restart Plan 2021.07.12 (월)
민완기 / (사)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팬데믹의 긴 터널을 지나오면서, 기해년 생으로 올해 한국 나이로 예순 셋이 되는 세월을 살고 있음에도 태어나 처음 겪는 일들이 이어지고 있음은 마냥 슬퍼해야 될 일인지, 감사해야 할 일인지 한번 자문해보게 된다. 지난 주일 아침 2차 백신 접종을 마치고 귀가한 몸으로 만 이틀간을 체감온도 48도의 불볕 더위와 싸우며, 영혼까지 탈탈 털려버리는 일이 생겼다. 도대체 선풍기도 쓸 일이 별로...
민완기
서대문구 영천동 2021.04.12 (월)
민완기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지명은 때로 단순한 이름이 아니다. 그 이름을 들을 때 마다, 가슴 한 켠이 울컥하고 형언 못 할 그리움과 상념에 빠져들게 되는 마력이 있다. 태어나 열두 살이 될 때까지 내가 자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영천동’…  독립문을 대로 중앙에 두고 좌로는 영천동과 현저동, 우로는 사직동과 행촌동이 자리한 곳에서 태어나 내 몸 안에 뼈가 자라고, 살이 붙고, 머리가 큰 곳의 이름이다...
민완기
닮고 싶은 사람 2021.01.04 (월)
민완기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회원 살면서 누군가를 닮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어려운 순간에 봉착하거나, 삶의 난관을 뚫고 나가야하는 순간이 찾아올 때면 ‘나도 그 이와 같았으면…’ 하는 생각을 갖게 되곤 하였다.  아주 어려서는 아버지를 닮고 싶었다. 걸을 때면 안간힘을 써서 달려도 따라잡을 수 없었던 아버지의 빠른 걸음, 그리고 퇴근 때면 아버지 양복에서 나는 병원 알코올 냄새도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에...
민완기
큰 아이가 결혼 6년만에 쌍둥이를 출산하였다. 나이 들어가며 가슴 설레는 일이 그리 많지않았는데 이토록 가슴이 설레고, 기뻤던 순간이 근래 있었던가 싶다. 참으로 고맙고 감사할따름이다.생각해보면 우리 삶은 ‘만남’의 연속인 셈이다. 세상에 태어나 부모를 만나고, 일가친척의 사랑과만나고, 친구들을 만나고, 직장 동료를 만나고, 배우자를 만나고, 자녀를 만나고 그리고 마침내손주를 만나게 된다. 물론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 그...
민완기
준비없는 이별 2020.07.20 (월)
금요일 오후 1시 30분, 권사님이 소천하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주일 저녁 부군 장로님과 함께 저녁식사를 맛있게 드시고 양치를 하기 위해 2층 욕실로 올라가셔서는 그만 그대로 쓰러지신 후, 6일을버티시다가 결국……권사님을 처음 뵙게 된 것은 이민 오던 해, 첫 주일 예배 때였다. 이제 막 개척한 지 6개월된 작은교회를 우연히 한국에서부터 알게 되어 이민 가방을 미처 다 풀기 전에 맞이한 주일날, 설레고 또떨리는 마음으로 4식구가 교회를 나가...
민완기
     시절이 하 수상하다.    ‘사회적 거리’는 인간 관계의 단절만이 아니라, 모든 삶의 양식을 뒤바꾸어 놓았다. 악수가 사라지고, 출근과 영업이 사라지고, 예배와 집회가 막히고, 교실은 폐쇄되고……. 마스크를 하고 나선 산책길에서 만난 나뭇가지에는 새 순과 꽃 몽우리가 지천이지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내가 알던 그 봄이 아닌 것이다.       인간인지라 이럴 때 일수록 그 끝이 언제인지가...
민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