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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잠시 후에 죽는다면

김인종 vine777@g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4-05-02 16:29

잊으려 하면 또 터진다.

이번주 뉴욕타임즈 등 미국 주요매체는 선실에 갇힌 아이들이 마지막 순간에  그들의 셀폰에 기록한 동영상들을 보도했다.  “구명조끼가 한개 없어요”… “내 것 입어”… “선생님들도 괜찮은건가?”…”엄마사랑해요, 아빠 사랑해요. 둘 다 사랑해” …”침몰 안할꺼야, 안해야만 돼”…”엄마 보고싶어” “살건데 뭔소리야”… “살아서 보자”…그 사이사이 안내방송은 “절대로 움직이지 마세요” “현재 위치에서 이동하지 마세요”,  학생들이 “네”하고 다소곳이 대답하는 모습들도 있다.

이 비디오를 전하는 라디오의 한 미국인 앵커는 마지막 순간의 이들의 선한 모습에 울먹이며  
그사이 선장은 팬티바람으로 구조선을 탔다고 분개한다…  우리가 잠시후에 죽는다면 지금 어떤 모습일까?

'오렌지카운티 한인회는 세월호 분향소를 사흘 더 연장해 열기로 했다'  '샌디에고 한인회는 한인회관에 세월호 분향소를 마련했다' '곳곳의 교회 음악회에서 세월호를 추모한다' '달라스 한인회는 임시분향소를 마련하고 희생자 유가족들을 위한 모금함도 함께 설치' '시카고 한인회에 합동분향소 설치'  '뉴저지 한인 밀집타운인 팰리세이즈 파크의 팰팩고등학교 전교생이 노란 리본 달기 캠페인' '애틀란타교회 협의회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위한 특별 기도회를 개최한다'.....

로스엔젤레스 한국총영사관의 '기원의 벽' 앞에서는 촛불 기도회가 이어지고 있다.  “실종자수가 0이 될 때까지 계속됩니다.”  

실종자는 언제나  0이 되려나?   숫자의 게임을 보는 듯하다.  실종자 수가 줄어가면 그 수만큼 사망자 수가 얹혀진다.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단원고등학교  학생의 부모가 자신들의 업소에 붙인 글귀이다.  얼마나 좋을까 들어가서 기쁨을 나누려 하는 순간도 잠시,  아들은 죽어서 돌아온 것이라고 부모는 말한다.  그래도 시신이라도 안을 수 있었다며  부모는 스스로 위로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한인사회도 어떻게 슬픔을 풀어나갈지 답답한 모습이다.  분향소, 촛불모임, 기도회등을 열며 행사를 벌이지만 이미 뚫린 가슴들은 메울 수가 없다.

평일 점심.  LA코리아타운 윌셔가의 북창동 순두부를 찾으니 몇몇 여성들이 업소 앞에서 까만 리본을 달아준다.  북창동 순두부로 이름을 날린 여사장님도 검은 복장으로 동참하고 있다.  함께 온 동문은 리본을 달았지만 나는  피했다.  훈장처럼 보여서다.   

촛불집회,  기도회,  헌화 , 노란 리본, 까만 리본…   하물며 정성을 다한  장례까지라도 희생자와 가족을 위로할  이벤트는 없을 것이다.  자식들이 차디찬 바다에서 죽어가는 것을 생중계로, 그것도  ‘느린 모습’의  비데오로 본 가족들에게 무슨 위로가 닿을까.    

물세례를 받은 정홍원국무총리가 책임을 지고 사임하겠다니까  사임한다고 욕이다.  평소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방송인 이경규가  '사고지역과 가까운 전남에서'  골프를 쳤다고 욕이다.  대통령이  희생자 가족과 국민에게 사과를 했더니 '국무회의에서 했다'고 욕이다.  세월호의  소유주가  '구원파'라니  구원파는 물론,  개신교에게도  욕이다. 

많은 사람들의 축하 속에서 은퇴기념식을 하는  빙상의 여왕 김현아도 기념식내내 크게 한번 웃을 수가 없다.  합동분향소에 화환을 보냈더니 화환보냈다고 욕이다.  공무원이 LA로 출장을 나왔더니 이 시점에 무슨 출장이냐고 욕이다.  위로는 먹히지 않고 욕은 힘을 얻으며 횡행한다.

한국에서는 각종 문화행사가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그나마  정서적으로  슬픈(?) 행사,  클래식 공연등은 그런대로 이어지는데 대중음악,  새 앨범 발간, 새 드라마 홍보행사등은 모두 취소됐다.  같은 행사장에서도  클래식 같은  음악은 진행시키고  대중음악은 취소하니 대중음악인들의 분노와 불만도 크다. 

봄씨즌을 맞아 대대적으로 행해지는 각종 페스티벌도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  행사를 연기하거나 취소했다.    식당, 여행, 숙박업들이 몇주간 찬서리를 맞으며 업주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이번 주 미주여성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미씨 USA'는 뉴욕타임즈, CNN등에 세월호 참사 관련 광고를 내겠다며 모금을 시작했다.  하루도 안돼  당초 목표인 광고비 5만8천여달러를 넘어 10만달러에 육박했다.  광고는 세월호 침몰  희생자수를 그래픽 디자인하며  '남한의 세월호가 침몰했고, 박정권도 침몰했다  South Korea Sewol ferry has sunk, so has the Park Administration '라는 타이틀을 뽑았다. 

이 광고를 뉴욕타임즈에 내면  한국민에게 어떤 위로가 돌아올까.

우리가 잠시후에 죽는다는 것을 안다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세월호의  아이들이  시신으로 전해온 그 셀폰으로 말한다.  욕은 한마디도 없다.  “내 것 입어” “선생님도 괜찮은지 여쭤봐”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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