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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의 괴물 – '빅 원'과 같이 산다

김인종 vine777@g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4-04-04 11:49

꼭 10년전,  1994년이다.  새벽,  침대에서 곤한 잠에 있을 때 벼개를 통해 땅속 깊은 곳에서 기차가 달려오듯  '꽈르르르'  소리가 커져  왔다.  그리고   바로 귀밑  땅에서 '꽝' 소리가 났다.  그 기분나쁜  소리는 평생 잊지 못한다. 

뒤이어  벽이 흔들리고 침대가 좌우로 움직였다.  '우우우우…'   땅은  동물처럼  울어대며 집을 흔들어댔다.  아내와 나는 아이들을 깨워  밖으로  뛰어나왔다(지진대비요령에는  책상밑에 들어가거나,  벽의 기둥 모서리에  붙어 서있으라고 하지만,  필자의  경험상  주택가에서는 일단  집에서  빨리 나오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

강도 6.7의 노스리지 지진이었다. 서둘러 차를 타고 회사로 향하는  프리웨이에서 차가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핸들통제가 힘들었다.  처음에는 옆의 차 운전자가  난폭운전을 하는줄 알았다.  땅은 프리웨이도 흔들어대고 있었다.    그때  '땅은 살아있구나'라고  깨달았다.  코리아타운 서쪽의   10번 프리웨이가  두동강이 나면서 마침 그곳을 달리던  순찰차가 떨어져  경찰이 숨졌다.

아름다운 이름이라  잊지도 않는다  -   '메도우 아파트' .   LA북쪽  노스리지의  주택가에 있다  .  취재를 하러 달려간 그곳  3층 아파트는 성냥갑처럼 쭈그러지며  맨아래  1층 천장이 땅에 납작하게   붙어버렸다.   한인  여성이 거의 실신지경에서  자신의 유니트 근처를 맴돌고 있었다.  “남편과 큰 아들이 저 안에 있어요…”  간호사였던 이 여성은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었지만,  새벽 출근준비를 하고 있던  남편,  사제수업을 하던  큰  아들을 그녀는 더이상  이 세상에서  볼 수가 없었다.

2014년 3월28일 금요일  밤.   몇몇 부부들과 성경공부를 하고 있었다.  '우우우우…'  –  땅이 우는  소리이다.  로스엔젤레스에  30년을 살며 수많은(?) 지진을 겪으면서 흔들림의 첫 느낌으로 대충 어느정도의   지진임을 안다.  이번 것은 셌다.  집을 쥐고 흔들어대는 강도가 심상치 않았다.  거대한  괴물이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감이 왔다.   10여명의 우리 일행은 순간적으로 밖으로 나갈 것인가  말것인가를 결정하지 못한 채  흔들리면서 수십초 동안 서로의 얼굴들만 쳐다보았다.   앞에  앉은  유씨의 전화벨이 울렸다.  “뭐,  벽이 갈라졌어?... 죽는 줄 알았다고? …깨졌어?”  집에 있는 부인의 떨리는 목소리였다.  성경공부와  지진은  별다른 관계가 없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해지려 해도 나쁜일은 일어났다. 

밖에서는 앰불런스들의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달려갔다.   진도 5.1의  중급지진이었지만  진앙지가 가까운 곳이었다.

“벽에  페인트 칠들이 다 떨어지면서 금들이 갔어요.  그릇도 떨어지고.  저희는 지금 무서워서 집에 못들어가요.  아직도 땅이 흔들려요.  큰 길의 소화전이 터져서 물바다에요…”  이번 지진의 진앙지인  오렌지카운티  라하브라에 사는 지인이 전화로 알려왔다.   “유리창이 깨졌어요.  벽에 금이가고… “  라하브라 옆에 있는 풀러튼 친구의 전화이다.  “굴뚝이 무너졌어요”   플러튼 거주 지인이 카톡에 올렸다.  “무서워서 집에 못들어가고 애들은 지금 차에서 자고 있어요” 교회  반주자의  카톡이다.  

다음날 사진클럽 모임에 갔다. “꽝하고 흔들리면서 부엌 캐비넷의 그릇들이  와르르 쏟아지며 깨졌어요.  크리스탈 모아 두었던 장이 넘어가면서 다 부서졌죠.   막 자려고 하던 참인데 나가려니까 신발을 찾을 수가 없는 거에요…” “아니 바쁜데 신발은 왜 찾아요?” “바닥이 온통 유리라서 신발이  없으면 움직일수가 없잖아요.  오늘까지 계속 흔들려요.   저희는 무서워서 아직도 바깥 차에서 자요.”  “담장들이 무너진 집들도 많아요”

이번 지진은 특히  부유층 지역인 오렌지카운티 주택가를 강타했고 한인들이 많이 사는 라하브라, 플러튼 지역에서 피해를 많이 냈다.  “LA가  다 좋은데 이 지진때문에 ...”  LA생활에 막 재미를 붙이고  눌러앉으려던  한 지인은 한국에 돌아갈까하는 옵션을 다시 고려해 보고 있다.  그런데 다음날 한국에서도 지진이 났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국에도?  꽤 큰 거란다.

LA라하브라 지진의 여진이 아직도 흔들대고 있던  화요일  칠레에서  8.2도의 강진이 터졌다.  쓰나미 경보도 나왔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기다리는(?)  '빅 원'은 아니라고 한다.  빅원은 최소한  8.7 이상이라고 한다.  한인들은 모이면  빅원이야기를 한다  - “언젠가는 온다는데…”  마치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는 말투와 비슷하다.   쓰나미와 같이 오면  LA의 반이 물에 찰 것이란다.  

서두에서 언급한,  노스리지 지진에서 남편과 큰 아들을 잃은 한인여성.   몇년전 신문에  기사가 났다.  남편과 큰아들이 좋은 곳에 가 있음을  확신한 후 봉사와 나눔으로 지낸다.  그리고  둘째 아들이  신부서품을 받았다.   형의 몫까지  해낼 꺼란다.   사진의 얼굴이 무척 밝다.  언젠가는 올 것이라는 땅속의 괴물,   '빅 원'과  함께  살면서도   LA인생은  여전히  희망과 기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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