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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와 체면과 염치와 자존심과 비즈니스

김인종 vine777@g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4-01-24 09:16

로스엔젤레스 남쪽 오렌지카운티의 한인중심지 부에나파크의 한 커피숍.  

랩탑을 들고 자리를 잡은 젊은이들이 커피한잔이나 스낵을 시켜놓고 하루종일 컴퓨터를 한다.  가게 안으로 새 손님들이 들어오지만 자리가 없어 그냥 나가기가 일쑤다.  한인주인은 속이 터진다. 테이블이 30분에 한번씩은 손님이 바뀌어야 비즈니스가 된다.  멋진 인테리어에 좋은 의자들을 마련했더니 돈이 안되는 손님들이 와서 죽치기가 일쑤다. ‘멍석을 깔았더니 개가 지나간다고…’ 주인의 푸념이다.

그래서 이 한인주인은  죽치는 손님들을 쫓아내기 시작했다. “당신들 때문에 손님들을 놓친다. 나가라”.  아예 와이파이 인터넷 서비스도 끊었다. 얼마후 젊은 랩탑 손님들은 끊어지고 ‘진짜로’ 커피를 즐기는 손님들이 오며 비즈니스는 피어났다.  랩탑족으로부터 갖가지 영어 욕설을 들으며 자존심을 상하고,  체면이 구겨졌지만 수십만 달러를 들인 비즈니스는 되살릴수 있었다.

로스엔젤레스 의 한인노인들 사이에는 단골다방들이 있다. 맥다방, 스타다방, 킹다방 등이다. 맥도날드 햄버거가 ‘맥다방’,  별 무늬가 있는 칼스 주니어 햄버거가 ‘스타다방’, 그리고 버거 킹 햄버거가 ‘킹다방’이다.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이들 햄버거 가게를 가면 별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우리는 ‘죽치는 한인들’이기 때문이다.

맥도날드 햄버거에  한인노인들 4명이 들어와 시니어 커피 두잔을 시킨다.  2달러도 안된다. 네 노인들은 널찍하게 자리를 잡은 후,  카운터에서 커피 두잔을 받으며 “뜨거운 물 두잔”을 더 달란다. “설탕봉지와  프림”도 7,8봉지씩 달란다.  그리고는 자리로 가서 커피 두잔을 뜨거운 물 두잔에 나누어  커피 4잔을 만든다.  설탕과 프림도 푸짐하게 넣고는 손님 4명이  2달러의    즐거움을 몇시간이고 나눈다.   

일 요일 오후면 인근 한인교회의 예배가 끝난 후 한인교인들이 그룹으로 맥도날드를 찾는다. 이들은 프렌지 프라이 한두봉지(튀긴 음식이라 건강에 나쁘다며 많이 주문도 하지 않는다), 커피 두세잔을 시키고는 8명, 9명이 둘러앉아  2시간 이상 성령충만(?)한 대화를 나눈다.   이를 보고있는 햄버거가게 주인이나 매니저는 속이 끓는다.  그래서 이들 한인동네 맥도날드나 버거킹에는  ‘더운 물 50센트’, ‘추가설탕 5센트’ 등을 알리는 한국말 쪽지가 붙었다. ‘음식을 30분안에 끝내시오’ 라는 협박성(?) 사인도 붙게 됐다.  공짜서비스를 남용하는 한인들에게 시달린  캐쉬어들은  한인고객들에게 퉁명스럽다.  아예 ‘시니어 커피 없음’이라는 방침의 맥도날드도 많다.

로스엔젤레스에서 24시간 오픈하는 데니스 레스터랑. 이 역시 한인들이 즐겨찾는 ‘죽치기 식당’이다. 물론 끼니는 인근 한인식당에서 고추장, 김치로 잘 먹고 커피타임으로 이 레스터랑을 찾는다.  적게는 5,6명 많게는 십여명의 한인손님들이 이 레스터랑의 저녁자리를 차고 앉아서는 모두 커피 혹은 ‘just water’를 주문한다.   염치도 없고,  자존심이나 체면같은 것은 오래전에 던져버린 한인들의 모습이다.  이곳에서도 도매금으로  한인들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  

죽 치는 랩탑 손님들을 쫓아내는 한인업주와,  역시 죽치는 한인손님들에게 골머리를 앓는 패스트후드 가게 주인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드디어 그 꼬리가 미국신문기자에게 밟히면서 뉴욕타임즈가  한인노인들과 맥도날드 햄버거와의 피곤한 숨바꼭질을 보도했다. 기사 제목도 자못 놀림조이다.  ‘앉고, 앉고, 또 앉을 권리에 대한 퀸즈 맥도날드에서의 싸움’이다. 맥도날드 햄버거가 문을 여는 오전 5시부터 등장한 한인 노인그룹이 해질 때까지 들락날락 죽치는 행태에 화가 나서 맥도날드 햄버거 매니저가  911 긴급구조 신고를 했다. 경찰이 도착해 이들 한인노인들을 쫓아냈다. 뉴욕타임즈와  인터뷰를 한인노인의 말이 걸작이다. “경찰이 나를 쫓아내면 나는 두블럭 정도 돌고 와서는 다시 맥도날드로 와서 앉아.”

이같은 쫓아내고, 또 죽치는 숨바꼭질 싸움이 계속됐다.  CNN 방송도 이를 받아서 ‘심심풀이 가쉽’으로  보도했다. 이곳 로스엔젤레스 래디오 토크쇼 진행자들도  키득대면서 ‘맥도날드 코리언 노인센터’의 한인들을 빈정댔다.  “20분 안에 커피를 끝내라고 써 붙였다며?” “코리안노인들은 뜨거운 커피를 어떻게 20분안에 마시냐며  해뜰때 부터 해질 때까지 커피마실 시간을 주어야 한대. 하하하”

경찰을 불러 우리 노인분들을 쫓아냈다고? 뉴욕  퀸즈 한인단체가 맥도날드 햄버거 불매운동을 펼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뉴욕 주하원 론 김 의원이 중재에 나섰다.  햄버거가게는 한인노인들을 존중해 강제로 쫓아내자 않고, 한인노인들은 비즈니스를 존중해 오전 11시에서 오후 3시 사이에는 한시간 이상 머물지 않는다는 합의였다.  그 합의가 어떻게 지켜지는지 이번주에도 뉴욕타임즈 기사가 났다.

어 느 쪽이 옳을까?  제일 편한 대답은 양비론이다.  경찰을 동원해 한인노인들을 쫓아내는 맥도날드도 나쁘고, 남의  영업에 방해가 되는 행위의 한인노인들도 나쁘다는 ‘둘 다 나쁘다’이다. 과연 그런가?  염치와 체면과 자존심을 지키는 쪽은 어느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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