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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을 맞지 못한 분들

김인종 vine777@g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3-01-03 17:28

로스엔젤레스의  그리피스 파크 천문대.  유명한 헐리우드 사인이 코 앞에 보이는 산이다.   1월1일  새벽 5시반   사방은 깜깜하지만  천문대 주차장은 줄이어 들어오는 차량들로 곧 만석이 된다.  새해 해맞이를 하기 위해  어둠과 추위를 헤치고들 왔다.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 10명중  9명은  한인.  세계  어느나라에도 이렇게  극성맞도록  부지런한 민족은 없을 것이다.  

 땅에도 별이 있다는 어느  산사나이의 말처럼,   이 시각 그리피스 파크에서 내려다 본 로스엔젤레스 시가지는   수많은  전등들이  별들처럼  반짝이며  광활한 LA땅을  밝히고 있다.    주차장에서 3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산정상에는넓은 공터가 나온다.   해가 뜨지 않아 사방은 캄캄하지만  새해 해돋이를 맞이 하려는 한인들이 이미 산정상에 운집했다.   어느 한인 성당의  교인들  30여명이 촛불을 들고 예배를 드리고 있다.   “주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산정상에서 조용히 퍼져 내려가는 찬송은 새해 첫소리로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도 해보지 못한  해맞이인데…”   한국에서 여행을 온 모녀가 신기하다는 듯 사방을 둘러보며 하는 말이다.    해맞이 한인들은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산허리에서 올라오는 찬바람을 마다 않고 맞고  서있다.   부부, 연인들이 자연스럽게 부둥켜 안고 아직은 캄캄한  동쪽하늘을 본다. 

“지는 해를 보면 안돼.  뜨는해 의 정기를 받아야지.  그것도 신년 첫 해의 정기를…”  젊었을 때는 이런 말들에 콧방귀를 꼈지만,  나이들수록  남이 좋다는 건  가급적   따라해보는 겸손(?)함으로 바뀌었다.

새벽 6시반.  해뜨는 시각.  아니나 다를까.  로스엔젤레스의  겨울아침은 낮은 구름으로 시작한다.  샌버나디노 마운튼 자락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햇님은 구름속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곤청색 새벽하늘과  산마루에 걸쳐진  진회색 구름,  그 밑으로 진하게 깔린 주홍빛  해무리로 계사년  첫날은 시작됐다.        

2013년 첫날을 끝내 맞지 못한 분들이 있다.   12월30일 오리건주 블루마운튼 84번 프리웨이 빙판길에서  한인 관광버스가  추락한 사건은 연말연시의 한인사회에  충격이었다.   캐나다  밴쿠버의  한인 여행사 소속 관광버스에  탄 47명중,   42명이 한인이었으며   9명이  2012년을 마지막으로 생을 마감했다.   

한국에서 온  67세 정운홍,   63세 김중화 부부는 시애틀의 딸집을 방문해 사돈인  67세 반연,  63세 반춘호 부부와  사이좋게  서부일주 관광에 나섰다.  반연씨만 살아남고 세 분은 명을 달리하셨다.

밴쿠버에서  버스에 합류한 김유민양은  11살이었다.  조기유학생인 김양은  12살을 맞지 못했다.  시애틀 인근의 시누이를 방문하고  함께 가족여행을 떠났던 김애자, 김만선씨 부부중  부인 61살 김애자씨는  숨졌다.  남편은 부상입원중이다.   

마이클 손(손문길), 레이첼 손 부부와  19살 아들 리처드손 가족은 이번에  함께 여행을 떠났다가 아들  리처드가  꽃다운 삶을 마감했다.   아버지도 중상이다.      리처드는  대학 2년생으로  불우어린이를 돕는 데 열심이었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리더로 인기가 높았다.   주변인들은 그가 너무 일찍 천국에 갔다고 말한다.    문석민, 이영호, 그리고  데일 오스본도 사망자 명단에 올랐다…

보도된 대로 이번 사고에서 극적으로 운명을 달리한 그룹도 있다.  한국에서 와 밴쿠버에서  버스에 합류했던 김영미씨 일행  5명은 라스베가스에 도착했을 때  여행을 포기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라스베가스에서 밴쿠버까지  귀환길  24시간이  너무 부담이 돼서,  로스엔젤레스 인근 부에나 파크에 사는 시누이에게 픽업을 부탁한 것이다.  이들에게 2013년 첫날 뜨는 해가 얼마나 고마왔을까.  

2012년 여행길에 올랐다가 2013년을 맞지 못한 로스엔젤레스의 부부도 있다.   지난달 22일  로스엔젤레스 인근에  거주하는    64살의 한인부부가  크리스마스 여행을 떠난 후 돌아오지 않아 친지들이 실종신고를 냈다.  한씨부부는  며칠 후  캘리포니아의  유명한 관광지 세코이아 국립공원의  캠핑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한씨부부는 차량안에서 개스 히터를 틀고 자다가 숨진 것으로 일단 밝혀졌다.  한씨부부는 캠핑장 인근의 온천을 자주 찾았었다.  이들이 사체로 발견된 날은 오리건 버스추락 참사가 발생한 날이었다.

캐나다 뱅쿠버,  미국의 시애틀, 로스엔젤레스, 라스베가스, 그리고 한국이 연결된 이번 사건은 640마일의 긴 육로를 달리는 무리한 스케줄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짧은 시간 안에 ,보다 많은 곳을 , 더 싸게 방문하는 일정이다.  운전자는 귀로길에 오르면서 예감이나 하듯  산악 눈길 운전에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2013년  새해의 해는 여늬 날처럼 떴다.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따라  그 해의 의미는 다르겠다.  그날  로스엔젤레스 그리피스 천문대  정상에서의 새해 해맞이는 농악대의 춤판으로 마무리 됐다.  흥겨운 농악 속에,  떠오르는  첫 해의 정기를 받으며  새해 소망은 무엇이냐고들 물었다.  누구는 속으로 가만히  그만의 소망을 빌었다.  그 전날 만난  동문들이  아침부터 막걸리로 2012년 마지막날을 기리며, 큭큭대며 웃으며  부른 노래는  “잘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  -  새마을 운동가였다.   

그러나  새해 아침에  산을 내려오며,  상큼한 바람에 가슴을 펴며,   중얼거린  말은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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