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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없이 거저 주던 사람

김인종 vine777@g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1-11-25 14:50

“홈리스들에게 돈을 주는 것은 쓰레기같은 낭비이다.”

“그들이 그 돈을 어디에 쓸 것인가로 정죄하지 말라. 그냥 주어라”... 누구 말이 맞을까.

매주 일요일 아침 로스엔젤레스 다운타운의 5가와 타운 애비뉴에 가면 수백명의 홈리스들이 줄서있다.

이들 앞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할아버지가 있다.  전날 은행에서 찾은 빳빳한 달러 현금을 들고 줄선 홈리스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한다. 아이와 함께 있는 어머니들에게 제일 먼저, 그다음에 불구자,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의 순으로 돈을 나누어 준다. 대부분에게 1달러씩을 나누어주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5달러, 10달러,  아이딸린 어머니에게는 100달러도 준다. 이렇게 나누어 주는 돈이 일요일마다 2,000에서 2,500달러이다.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등 특별한 날에는 15,000 달러를 나누어 준다.

이 할아버지, 달러 빌 약칭 DB로 불리우는 머리스 체이스 신부가 지난 일요일 하늘나라로 갔다. 92세이다.   빨간 스웨터에 노트르 댐 캡을 쓰고 30년간 다운타운 스키드 로우를 찾았던 달러 빌 신부의 빈자리에, 이번 추수감사절 전날부터 수많은 추모객들이 모여 들었다.  천여명의 홈리스들, 그를 기억하는 수많은 기부자들, 자선단체 봉사자들은 그가 없는 타운 애비뉴에서 빈자리를 나누었다.

“네가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다” 여기서 ‘작은 자’란 가난하고 힘없는 자이고 ‘나’는 예수를 뜻한다.  머리스 신부가 항상 하던 말이다. “나는 그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합니다.  이말을 그들에게 전하기위해 나는 거리에 나섭니다.” “그들이 돈을 받아서 어디에 쓸 것인지 묻지 마세요. 그리고 그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지 마세요. 그들도 누리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있는 귀한 인간들입니다.” “그들도 ( 하나님에게) 잊혀지지 않았고, 사랑받는 존재들입니다.” 

머리스신부가 자신의 만족과 선전을 위해서 이같은 현금낭비를 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말했다.”나는 그들이 빈 주머니에 드디어 돈이 들어왔다는 기쁨,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을 돌본다는 희망을 가지고 돌아가게 할 뿐입니다.”

머리스 체이스 신부는 1919년 3월17일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 변호사인 아버지의 뜻을 따라 변호사가 되려했다. UCLA를 졸업하고 UC버클리 법대로 들어갔다. UC버클리에서는 과회장도 맡아서 일했다.

그러나 2년후인 1953년 그는 법이 아니고 사랑으로 사람들을 봉사하기로 결심하고 와싱턴 DC에 있는 신학교 세인트 폴즈 칼리지로 진학해 신부가 된다. 샌디에고, 팜 데저트 등에서 시무하던 그는 1960년대 중반에 보다 복잡하고 넓은 땅 로스엔젤레스로 진출한다.

카톨릭계 대학인 로욜라 메리마운트 유니버시티에서 기금모금을 위해 일하면서 그는 ‘사교클럽 신부님’이란 별명도 얻는다. 이 과정에서 그는 나중에 그의 헌신활동에  힘이 되는 많은 후원자들과 만나게 된다. 1980년대 부터 전무후무한  ‘현금 구제사역’을 시작하는데 그에게 현금을 대는 후원자들로는 코미디안 밥 호프, 영화배우 그레고리 펙,  프랭크 시나트라, 지미 수튜어트,  머브 그리핀, 빈 샐리등이 있었다. 그가 현금을 많이 소지하고 나타나므로(실제로 그는 칼로 위협을 당했고, 두들겨 맡기도 했다) 로스엔젤레스 경찰이 그를 호위했는데 나중에 경찰국장도 그의 후원자가 됐다.

“가난한 홈리스들에게는 모든 것이 더러운 상태이다. 돈이라도 깨끗한 것을 주자” 머리스 신부는 그래서 꼭 빳빳한 새 현금을 마련한다. 2년전 그의 90살 생일 3월17일에는 15,000 달러의 새 지폐를 홈리스 들에게 나누었다. 그에게 현금을 받은 홈리스들은 30년간 10만명이 넘는다.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의 연말이 되면 구제단체에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지원해 온다. 구제단체들은 고맙기도 하지만 왜 평소에 하지 않다가 크리스마스 시즌에만 이렇게 몰리는가 한숨짓는다.  머리스신부는 80세가 되면서부터 그의 체이스 스키드 로우 채러티 재단을 맡아 현금을 나누어 줄 후계자를 물색했지만 죽기까지 적절한 인물을 구하지 못했다.

많은 그의 동료 신부들은 일요일날 교회에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일요일마다 미국의 홈리스 메카라는 로스엔젤레스 다운타운의 가장 가난한 거리에 서있을 인물이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머리스신부가 일요일이면 방문하던 다운타운의 프레드 조단 미션은 그가 없는 이번 추수감사절에 그를 대신해  15,000달러를  홈리스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머리스신부는 그가 만난 테레사수녀에게서 들은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Touch the poor”.  그는 갔지만 그의 심장은 많은 이들의 가슴에서 다시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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