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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화재는 전화위복"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8-07-14 00:00

前문화재청장 유홍준 명지대 교수

“3년 6개월간 문화재청장을 수행하면서 최선을 다해 소신껏 일했다. 국보 1호를 소실시켰다는 불명예, 어쩌면 죽은 뒤에도 지울 수 없는 아픔을 안고 떠난다”. 지난 2월 숭례문이 불타고 난 뒤 유홍준 교수는 ‘공공의 적’이 되어 문화재청장에서 물러났다. 그로부터 5개월, 학계(명지대)로 돌아간 유교수와의 만남은 ‘남대문 화재’ 얘기로 자연히 흘러갔다. 인터뷰 할 것도 없다던 그는 특유의 느릿한 말투로 참고 있던 생각을 가감 없이 쏟아냈다.

“여한은 없다. 다만 숭례문이 불 나는 과정이라든지 불 끄는 과정에서 서운하거나 석연치 않은 것이 좀 있었다. 남대문 화재에 대한 국민, 언론의 감정이 과연 정상적이었나 그런 생각을 한다. 어쨌든 그 덕에 문화재청이나 문화재에 대한 선전은 엄청나게 해서 값비싼 대가를 찾았다 싶다”.

유교수는 ‘국보 1호를 불태운 장본인’처럼 되었던 그때를 떠올리면서 갑자기 말이 빨라졌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가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전제로 “숭례문은 불탔지만 70%가 남아있다. 육축은 그대로이고 단청까지도 남아 있다. 2층 석가래와 지붕이 날아간 정도다. 중환자실에 간 환자 정도인데 (분위기는) 영안실도 그런 영안실이 없었다”고 했다.

‘유물에도 팔자가 있다’는 유교수는 숭례문의 화재를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여겼다. 2006년 마련된 숭례문 양쪽 성벽 복원계획을 토대로 제 모습 찾기가 가능하게 됐다는 것이다. 유교수는 “당시에는 국민정서가 비뚤어져 있는 상태여서 무슨 말을 꺼내지 못했다”면서 숭례문 복원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숭례문은 거룩해 보이지 않고 성문 같지도 않았다. 성문에는 성벽의 날개가 있어야 하는데 없기 때문이다. 1.6미터 정도 높아진 현재의 지표(地表)도 원상대로 깎아 내려가야 한다. 숭례문이 가분수처럼 보였던 것도 그런 탓이다. 서울 성곽 18.9킬로미터 가운데 인왕산, 북악산 등 성벽이 남아 있는 12.5킬로미터를 제외한 나머지는 복원이 불가능한 부분이다. 남대문과 대한상공회의소 쪽으로는 성벽이 안되면 성벽 두께만큼 화강암을 밑으로 깔아서라도 연결하려는 것이다. 숭례문 전체를 손 보고 복원할 수 있는 기회다”.

“국보 1호 숭례문의 상징성도 문제가 있다. 국보 1호는 관리번호 일뿐이다. 그렇다고 국보 1호를 ‘훈민정음’으로 바꾸는 것도 일부 문제가 있다. 간송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은 겉장이 낙질 된 것이다. 국보와 보물 등급으로 나누고 문화재 관리번호만 매기는 것으로 해야 한다. 국보와 보물의 통합도 곤란하다고 본다”.

“한국 미술사 쓰고 싶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4~5권 마무리

유홍준 교수는 문화재청장으로 있으면서 광화문 복원, 서울 성곽 복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등의 큰 업적을 남겼다. 무엇보다 문화재에 대한 일반 국민의 인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공로다. 경복궁과 창덕궁은 물론이고 화엄사 등의 어렵고 복잡했던 안내판도 바꿨다. 또, 주요 문화유산 20군데의 영문이름을 중국식으로 풀어서 쓰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창덕궁 비원은 ‘Royal Secret Garden’ 경복궁은 ‘First palace of chosun Dynasty’로 하는 식이다.

유홍준 교수는 대중적 인기만큼이나 잦은 구설에 올랐다. 노무현 대통령을 정조에 비유하면서 정치적 논란에 휩싸였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광화문 현판을 교체하려는 과정도 비판이 많았다. 경회루와 창경궁 등 문화재를 행사장으로 마구 사용한다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하지만 유교수는 “그 중에는 악의적인 것도 있었고 오해도 있었다”면서 “당시 청와대와 언론의 관계가 나쁜 와중에 盧의 남자로 분류돼 비판의 대상이 됐다”고 했다.

그는 과거사 정리문제에 문화재청이 부화뇌동한 것으로 여긴다든지 광화문 현판을 정조의 글씨로 집자(集字) 하는 안을 과대 포장한 것을 그런 사례로 들었다. “원 없이 일하고 원 없이 얻어터졌다”는 유교수는 “어느 순간 스스로 대범해져서 누가 뭐라고 그래도 개의치 않는 상태가 됐다”며 언론 수준문제로 화살의 방향을 비켜갔다.

학자로서의 욕심도 감추지 않았다. 전국민의 필독서가 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4~5권이 나올 예정. 충청북도 경상남도 제주도 서울 경기도의 대표적인 문화재 하나씩만 써도 1권으로는 부족하다.

유홍준 교수는 무엇보다 ‘한국 미술사’를 쓰고 싶다고 했다. “한국 미술사는 한글이든 영문이든 아직 나온 것이 없다. 일반인과 국민 모두가 함께 읽을 수 있는 미술사책이 아직 나오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서양사람들이 한국 문화에 대해 잘 모른 것은 당연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학문적 축적을 토대로 더 이상 기다릴 것 없이 써볼 작정이다. 무척 어려운 작업이겠지만 사명감을 갖고 시작하려고 한다.”

/이용욱 기자 lee@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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