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취사병에서 청와대, 밴쿠버로...요리는 천직”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8-05-01 00:00

특별한 과거, 이 분야 전문가 프랑스 요리 & 일식요리 전문가 정연식씨(일식당 ‘태’대표)

미션에서 일식당 ‘태’를 운영하고 있는 정연식씨. 롯데호텔 연회부와 레스토랑 ‘쉘브른(Shelburne)’에서 17년 동안 근무하며 우수직원으로 표창을 받은 것만도 세 차례, 알라스카요리경연대회, 농수산부 주최 요리경연대회 등 90년 중반부터 이민직전인 2002년까지 개최된 30여 각종요리대회에서 우승을 휩쓸었던 프랑스요리 전문가다. 그는 MBC 문화방송 신년특집 ‘요리천하, 맛있는 대결’에서 1등, 황금국자를 부상으로 받는 등 출전한 대회마다 우승을 차지했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시절 청와대 만찬 외부 초빙요리사와 88서울올림픽 해외귀빈 요리사로 각종 양식요리가 그의 손을 거쳐 귀빈들과 선수들에게 제공되기도 했다.

■ 19세에 요리의 세계 입문

“뭐, 과거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현재 열심히 일하며 사는 게 중요하죠……”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했던 것일 뿐”이라며 말끝을 흐리는 정연식씨의 화려한 과거를 알게 된 건 우연하게 발견한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TV화면을 촬영한 듯 선명도가 좋지 않은 사진 속에서 MC임성훈씨가 손에 황금국자를 높이 든 요리사와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이다. 상장을 들고 서 있는 요리사가 정씨였다.
19세에 입문한 양식요리로 기능올림픽과 세계요리경연대회 및 국내 요리경연대회에서 우승하고 받은 상장과 트로피, 사진을 창고에 보관하기 위해 종이상자에 포장하던 과정에서 빠져 나온 사진을, “액자가 깨어지면 직원들이 다칠까봐” 벽면 한 켠에 ‘대충’ 걸어 둔 것이라 했다.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사진 컷에 담긴 내용을 짐작하기가 힘들지만 조명이 비켜 간 어스름한 불빛 아래서도 ‘1등 정연식’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 온다.

■ 프랑스요리 전문가

미션지역에서 일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그의 전문요리는 엉뚱하게도 프랑스 요리. 일식은 이민 후 시작했지만 어깨너머로 배운 것은 아니다. 오랜 경험으로 익숙한 ‘칼 질’과 프랑스 요리에서 응용한 독특한 맛의 소스를 개발해 호텔 스타일 맛과 데코레이션으로 2년 만에 스시 맨으로 인정받고 있다.  
어릴 적부터 그의 꿈은 하얀 가운에 머리 위에 멋진 조리모자를 쓴 조리사가 현란한 손놀림으로 수십 가지 소스를 뿌려 맛있는 스테이크와 양식을 조리해 내는 서양요리사가 되는 것이었다.  충남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부터 친구들이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이력서를 쓸 때 그는 양식레스토랑 주방을 기웃거리던 그가 처음 입사한 음식점은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양식 레스토랑. 돈까스와 비프스테이크, 오므라이스를 내 놓는 것이 손님들의 주문 메뉴 대부분이었지만 양식조리사를 향한 그의 꿈이 발아(發芽)하기 시작한 곳이다.  
 
■87년 롯데호텔 연회부 입사

그가 ‘요리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한 것은 군 입대 후 취사병으로 차출된 것이 도화선(導火線)이었다. 정식 요리사는 아니었지만 레스토랑에서 근무한 경력이 인정되어 군내 중령계급 이상의 영관급식당 취사병이 되었던 것.
“외국 손님들과 외부 귀빈 접대를 위한 요리를 하면서 ‘아! 이런 재료가 이렇게 맛을 낼 수 있구나’ 요리에 눈이 뜨이면서 서양요리의 참 맛을 느끼기 시작했죠. 그리고 제게 약간의 재능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죠.”
제대 후 서울 암사직업훈련원에 등록, 본격적으로 요리 공부를 시작한 그는 1년 만에 한식, 일식, 양식, 중식조리사 자격을 취득했다.
정식 조리사로서 그의 첫 직장은 부곡관광호텔. 2년 만에 다시 서울 롯데호텔 조리사 공개채용에 응시했다. 87년이었다.
그가 이민을 떠난 2003년까지 연회부와 호텔 내 프랑스 레스토랑 ‘쉘브른(Shenbrun)’에서 근무하며 미국 알라스카주 주최 수산물요리대회, 기능올림픽, 농수산부 주최 요리대회 등 30여 개의 국내외 굵직한 요리경연대회를 휩쓸었다.
MBC ‘요리천하’에서 그는 거위 간 요리 에피타이저, 메인 요리로 랍스터 버터 구이, 디저트로 익은 감을 이용한 ‘무스케잌’에 수프로 프랜치 버섯 요리를 내놓았다.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방청객과 심사위원의 직접 시식을 거치는 채점에서 시청자와 심사위원단 모두 만장일치로 우승을 차지했다.

■요리사로서 자긍심 심어 준 롯데호텔

정연식씨는 되돌아보면 가장 참신한 아이디어와 왕성한 의욕으로 들끓는 그의 20대와 30대 시절을 몽땅 보낸 롯데호텔은 그에게 직장이상의 의미가 있는 곳이라고 했다. 
“제가 누린 명예와 수상경력은 반드시 제 손을 거쳐 노력한 과정이 만든 결과였지만, ‘특급호텔 조리사라는 프리미엄도 전혀 배제할 순 없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너무 많은 것들을 소유한 그때는 미처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을 만큼 바쁘고 정신 없이 요리에 미쳐 있었죠.”
그가 청춘을 보낸 롯데호텔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전부를 성취할 수 있었던 곳이었고, 또 요리사로서 자긍심을 심어 준 직장 그 이상의 의미라는 말일 게다.
 
■청와대 만찬 프랑스 요리사

“청와대 요리사들은 일상적인 청와대에서 소요되는 요리를 담당하는 직원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귀빈이나 외부 손님을 초대하는 만찬에는 외부 전문조리사를 초빙합니다. 이때 특급 호텔이나 유명한 음식점에서 출장을 가게 되죠.”
그는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만찬 요리사로 일을 했던 이색 경력도 있다. 하지만 조리할 때마다 달라지고 발전해야 하는 요리는 과거경력 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프랑스 요리는 음식의 맛 이전에 먼저 먹는 사람이 느끼는 음식의 색깔, 그릇, 모양, 뜨겁기를 조절 해 후각이 느끼는 향을 조절하고 맛을 완성시키는 섬세한 디자이너죠. 혀는 오히려 가장 마지막에 느끼는 부분입니다.”
그의 말은 외형적인 모양 안에 담긴 ‘맛을 요리하는 것이 진정한 요리’라는 의미다. 이렇게 프랑스 요리를 극찬하는 그가 지극히 간편한 일식을 요리하는 것이 의아스럽다. 그의 대답은 간단하다. “사람에겐 여러 종류의 야망이 있지만 자식이 있다면 부모의 야망은 미련 없이 2순위가 될 수 있다.”고. 그 역시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과 올해 대학에 입학하는 자녀들을 위해 밴쿠버 이민을 선택했다. ‘미션’에서 4년째 일식당 ‘태’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아버지로서 자신의 선택을 지금까지 한번도 후회 해 본 적이 없다.

이재연 기자 jy@vanchosun.com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