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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하키팀의 전설 ‘독사감독’ 박영조씨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8-01-10 00:00

특별한 과거, 이 분야 전문가 / 왕년에… 전 한국·캐나다·싱가포르·하키대표팀 감독 박영조씨

◇박영조 감독은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후회도 미련도 없을 만큼 하키와 한평생 열심히 뛰었던 추억이 전부라고 말한다. 그는 4월 26일 빅토리아에서 열리는 올림픽 예선전에 참가하는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맛있는 식사를 사주고 격려할 예정이라며 모처럼 활짝 웃었다.

“네, 박영조입니다.” 사전에 박영조 감독의 전화라는 것을 알고 건 거였지만, 신호가 울린 후 바로 들려오는 사무적이고 간결한 대답에 하마터면 “정말 그때 그 ‘독사 감독’ 박영조 감독님 맞으세요?”라고 할 뻔 했다.

지금 나이가 20대 후반인 사람들이라면 ‘박영조’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여자 하키의 불모지였던 한국을 일약 하키 강국으로 변모시킨 우리나라 여자하키의 전설적인 감독. 81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꼴찌’를 했던 팀을 맡아 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따내, 당시 ‘금보다 값진 은메달’이란 찬사와 함께 우리나라 하키를 세계 최강으로 도약 시켰다.

12년간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 태릉선수촌이 생긴 이래 최장수(長壽) 감독을 지낸 그는, 98년 밴쿠버로 이민한 후 캐나다국가대표 남자하키 감독과 2005년 싱가포르 여자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하고 2007년 밴쿠버로 돌아와 평범한 생활인으로 지내고 있다.

■ 우리나라 하키계의 전설적인 감독

현대캐피탈 배구선수들이 선두를 달리고 있던 삼성화재에 대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삼성과 경기를 시작하기도 전 이미 패배감에 빠져 경기를 펼치는 것을 본 김호철 감독이, 대회가 끝난 후 합숙소의 시궁창 연못에 뛰어들어 선수들에게 말보다 행동으로 투지를 일깨워 승리로 이끈 일화는 유명하다. 훗날 현대캐피탈이 삼성화재를 꺾고 ‘힐스테이트 2006~2007 V리그 챔피언 시리즈’에서 2연패를 달성한 후, 사람들은 “김호철 감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스포츠에서 팀의 사령탑인 감독의 지도력과 리더십은 팀의 우승과 실력에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영조 감독. 그는 우리나라 하키계의 전설적인 감독이다. 서울 환일 중학교 시절 처음 스틱을 잡은 후, 경희대학교 하키선수였던 그가 졸업 후 교사로 재직하던 중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발탁되었다.

그러나 그가 81년 우리나라 여자하키의 사령탑에 오를 때만해도, 여자하키는 비인기 종목이라는 설움에 성적은 세계 최하위의 상처뿐인 ‘꼴찌’팀이었다. 국가지원도 전무한 상태에서 선수들의 사기는 땅바닥에 추락해있었? 가능성조차 희박한 그야말로 ‘오리무중(五里霧中) 지경에 빠져 있었다.

■‘독사 감독’으로 변신

그래서 박감독은 선수들의 투지를 일깨우기 위해 당근과 채찍을 함께 들었다. 아니 당시에는 당근보다는 채찍이 더 많았다. 할수 있는 최대한 혹독하게 선수들을 다그쳤다. 이때 땡볕에서 하키 경기를 하는 자세로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운동장을 뛰게 한 것으로 유명한 그의 별명은 ‘독사 감독’.  당시 선수들을 통해 그의 훈련일지를 살펴보면, 매일 새벽 훈련장인 성남하키구장에서 남한산성까지 왕복 20여km를 뛰게 했고, 따라오지 못하는 선수는 대표팀에서 제외한다는 전제를 붙였다. 그래서 만들어진 작품(?)이 임계숙 선수였고, 가장 애정이 가는 선수도 임계숙 선수였다.

언젠가 임 선수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하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박영조 감독님이요”라고 대답, 기자는 “얼마나 훈련이 힘 들었으면……” 생각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임계숙 선수는 또 유럽 선수들에 비해 작은 체격과 체력의 열세를 끊임없는 훈련으로 커버하기 위해, 한겨울에도 남한산성을 달릴 때는 “그냥 쓰러지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훈련이 그만큼 고되고 힘들었다는 얘기다. 매일 이어지는 훈련에서도 끝날 즈음엔 ‘기어서 나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 훈련, 그리고 또 훈련이 만든 성과

이런 스파르트식 강훈련으로 박영조 감독이 팀을 맡은 지 10개월 만에 출전한 81년 뉴델리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는 역사적인 쾌거를 올렸다. 이후 85년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다시 금메달을 따냈고, 세계대회 첫 출전이라는 기록과 함께 세계대회에서 수확한 우리나라 하키사상 첫 금메달이었다. 이후 서울에서 열린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에서는 또다시 은메달을 따내 세계를 놀라게 했다.
88년 서울올림픽에서 그에게 몰려든 내외신기자들 앞에서 박감독은, “프로 팀 하나 없는 나라에서 어떻게 은메달을 따낼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가방 크다고 반드시 공부 잘 하냐”는 조크로 응수했다.

■‘독사 감독’의 힘과 저력

‘독사감독’ 아래 독한 선수들이 한마음이 되어 이를 악문 투혼으로 연이어 일궈 낸 세계대회에서의 우승. 이런 것이 바로 감독인 그의 힘이며 능력이었다.

“훈련에 훈련 밖에 믿을 게 없었습니다. 스포츠란 즐기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선수들에게는 결과만 남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처럼 치열한 대회에서 단 1초라도 방심하면 진다는 각오가 있어야 하죠. 거친 소리도 많이 했고, 선수들이 자존심 상하는 일도 많았겠지만 모두 잘 참으며 믿고 따라줘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모든 승리는 ‘믿고 따라 준 선수들 덕분’이라는 그는, 비인기종목의 설움을 극복하고 올림픽 등 세계대회에서 우승으로 이끈 공적이 인정되어, 대통령 표창과 함께 90년 제28회 대한민국체육상 수상과 맹호장, 백마장, 기린장, 제2회 스포츠서울 체육상 등을 수상했다.
이밖에 94년 서울시 정도(定都) 600년 기념 타임캡슐에 들어갈 인물로 선정되어, 2994년 개봉 될 예정인 타임캡슐 안에 그의 업적과 이름이 기록되었다.

■ 4월 빅토리아에서 열릴 올림픽 예선전 기대

98년 이민 이후 캐나다하키팀 감독을 맡았던 그는, 2005년부터 싱가포르 대표팀을 맡아 캐나다를 떠났다가 시민권 취득을 위한 거주기간 일수를 채우기 위해 계약기간만료 1년을 남겨두고 밴쿠버로 돌아왔다. 그는 요즘 빅토리아에서 오는 4월 펼쳐질 베이징올림픽예선전을 앞두고 우리 대표팀을 만날 생각에 들떠있다.

“한국, 캐나다, 쿠바, 아일랜드, 말레이시아, 이탈리아 팀이 맞붙어서 1등 하는 한 팀만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중요한 경기죠. 내가 가르치던 감독, 코치들이 선수들과 오게 될 날을 생각하면 마음이 설레입니다. 우리 선수들 꼭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것으로 믿습니다.”

이재연 기자 jy@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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