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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약 없이 백발이 흑발로··· “까매지는 바나나가 가르쳐줬죠”

밴조선에디터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1-04-18 14:00

발색샴푸 개발한 카이스트 이해신 교수
이해신 카이스트 석좌교수가 자연의 갈변현상을 이용해 만든 샴푸로 실험한 자료를 들고 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이해신 카이스트 석좌교수가 자연의 갈변현상을 이용해 만든 샴푸로 실험한 자료를 들고 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늘어나는 새치·흰머리, 그냥 두자니 나이 들어 보이고 염색하자니 독한 염색약이 걱정된다. 염색 머리에 뿌리가 올라오면서 흑백 경계선이 생기는 것은 더 보기 싫다. 중장년의 공통된 고민이다. 이 고민을 해결해줄 반가운 소식이 있다. 머리만 감아도 백발이 흑발로 변하는 샴푸가 개발됐다. PPDA, 5-디아민, 황산톨루엔 같은 염모 성분이 전혀 없는데도 매일 샴푸를 사용하면 서서히 머리카락 색깔이 어둡게 변한다.

나이를 거꾸로 돌리는 샴푸를 개발한 사람은 이해신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과 석좌교수이다. 그동안 염색약 ‘제로’를 내세운 염모샴푸를 주장하는 제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대만큼 발색이 안 되는 바람에 시장에 안착하지는 못했다. 이해신 교수가 개발한 제품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지난 4월 9일 대전에서 올라온 이해신 교수를 서울 송파구에 있는 비에이치랩(BHLAB·대표 배형진) 사무실에서 만났다. 비에이치랩은 모발색이 변하는 기능성 샴푸를 이해신 교수와 공동개발한 바이오코스메틱 기업이다.

“염색샴푸라고 하면 안 됩니다. 염색이 아니라 발색입니다. 염색은 착색을 시키는 것이고 발색은 없던 색깔이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개념 자체가 완전히 다릅니다.” 이 교수는 당부의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 교수가 개발한 샴푸는 천연성분을 기반으로 한 특허물질이 산소와 반응해 흰머리, 새치머리를 발색하게 만든다. 곤충이 상처를 자가치유할 때 나오는 물질의 브라우닝 현상과 과일의 갈변현상에 착안했다고 한다. 이 교수의 설명이다.

“바나나 껍질을 까면 까매지고 사과, 감자도 갈변이 되잖아요. 차도 우릴수록 진해지죠. 원래는 색깔이 없었는데 산소랑 접촉하면 까매집니다. 바로 폴리페놀 성분 때문입니다. 모든 식물에는 폴리페놀이 들어 있고 산소를 만나면 예외 없이 갈변현상이 일어납니다. 햇빛은 갈변을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곤충도 폴리페놀이 있습니다. 사람은 피가 나면 딱지가 생기고 새살이 돋지만 곤충은 피가 없기 때문에 상처가 나면 체액이 나와 딱딱해지면서 갈변이 됩니다. 그 원리를 이용한 겁니다.”

천연 접착제 폴리페놀이 산소를 만나면

설명을 듣다 보니 궁금증이 생겼다. 폴리페놀 성분을 집어넣어 샴푸를 만들어도 물에 씻겨 내려가면 그만이다. 머리카락에 달라붙어 있어야 효과가 있을 것 아닌가. 바로 이 접착에 대한 연구가 이 교수의 전문 분야이다. 그는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에서 홍합 단백질의 접착 연구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홍합 연구는 2007년 7월 과학학술지 네이처의 표지를 장식했고 사이언스지에도 논문이 실렸다. “물속에서도 붙어 있는 홍합의 접착력은 바로 폴리페놀 성분 때문입니다. 이미 1980년대에 사이언스지에 관련 논문이 실렸지만 그땐 주목받지 못하다가 15~16년 전부터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면 와인을 마실 때 떫은맛이 느껴지죠? 바로 폴리페놀 성분 때문입니다. 접착 성질을 가진 폴리페놀이 혀에 달라붙기 때문에 떫은맛을 느낄 수 있는 겁니다.”

이 교수는 홍합의 접착 단백질 연구를 활용해 혈우병 환자나 아스피린 복용 환자들에게 유용한 ‘접착성 지혈제’를 만들고 ‘피 안 나는 주사기’를 연구했다. 일반적인 주사기는 바늘을 빼면 피가 나지만 그가 연구한 주사기는 바늘을 빼는 순간 바늘 바깥쪽에 붙어 있던 접착제가 순식간에 상처를 덮어 봉합한다. 이번에 개발한 샴푸도 그가 지금까지 해온 연구와 맞닿아 있다. 이 교수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폴리페놀은 곧 접착제이고 산소를 만나서 발색한 것”이라면서 “성분보다 어떻게 만드느냐가 관건이다”라고 말했다. 성분을 알아도 카피를 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발색샴푸 개발은 2016년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정부 R&D과제 사업에 선정돼 시작했다. 심사 통과부터 난관이었다. 염색과는 개념이 다르다 보니 심사위원들을 이해시키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배형진 비에이치랩 대표의 말이다. “인천남동공단에 샴푸 제조공장이 몰려 있습니다. 공장마다 찾아가 이런 샴푸를 같이 개발해보자고 설득했지만 다 차였습니다. 이유는 한 가지였습니다. 샴푸는 계면활성제로 씻어내는 것이고 염색은 색을 입히는 것인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는 것이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여기까지 왔으니 밥이나 먹고 가라는 겁니다. 기존의 상식에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인 거죠.”

시행착오도 숱하게 겪었다. “너무 진해도 안 되고 흐려도 안 되고 최적의 레시피를 만들기 위해 인모를 가지고 수만 번 테스트하고 모든 종류의 폴리페놀을 이 잡듯 찾았다”는 것이 배 대표의 말이다. 내부 변색을 막기 위해 산소를 차단하는 용기를 개발하는 데만 화장품 포장용기 제조업체와 손잡고 1년이 걸렸다고 한다. 내용물이 나올 때도 공기가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3중 차단 장치를 만들었다. 배 대표는 “실리콘, 설페이드계 계면활성제 등 유해성분은 빼고 검은깨 추출물, 블랙커민씨 추출물 등 폴리페놀 덩어리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넣어서 발색뿐만 아니라 탈모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폴리페놀의 접착성분이 코팅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모발이 풍성해 보이는 효과도 있고 헐거워진 모공에도 작용해 탈모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사용하면 발색이 될까. 이 교수는 “습도, 온도 등 환경, 조건에 따라 차이가 크고 모발 상태에 따라 다르다. 거품을 낸 후 5분 정도 기다리거나 헤어드라이기로 말리면서 열을 가해주면 발색이 더 잘된다”면서 “건강한 모발보다 파마, 염색 등으로 손상된 모발이 효과가 더 좋다”고 말했다. 인모를 가지고 임상시험을 한 결과 4주 정도면 갈색으로 변하고 두 달이 지나면 흑갈색으로 변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샴푸를 사용하다 중단하면? 3주 정도는 유지된다고 한다.

설명대로라면 획기적인 제품이다. 효과는 소비자가 확인해줄 것이다. 비에이치랩은 먼저 오는 5월 글로벌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킥스타터를 통해 ‘모다모다(MODAMODA)’라는 브랜드로 첫 도전을 시작한다. “킥스타터는 신제품이어야 도전이 가능하고 전 세계 바이어들의 눈이 집중되는 만큼 거기서 성공하면 세계 수출시장의 보증수표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배 대표의 말이다. 국내 시판(300mL·2만원대 후반)은 킥스타터 론칭 이후인 6월부터 하고 정기구독 판매 등을 계획하고 있다. 이 교수는 “글로벌 시장 등을 겨냥해 다음 과제는 컬러(color) 연구”라고 했다. “눈의 색깔이 다양하잖아요. 블루도 있고 브라운도 있고. 그게 다 폴리페놀입니다. 눈 색깔이 다양한 것처럼 모발도 여러 가지 색깔로 만들 수 있습니다.”

황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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