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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전 주문한 냉장고가 아직 안왔다···세계 경제 ‘공급 절벽'

밴조선에디터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1-03-06 12:41

코로나 시대의 아이러니, 수요 급증의 부작용

요즘 미국·캐나다 등 북미(北美)에선 지난해 주문한 가전제품을 아직도 못 받았다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8개월 전 주문한 냉장고와 오븐, 붙박이 가전을 아직도 못 받았다는 사람들의 사연이 TV 방송에 나올 지경이다. 가전 유통업체 고어멘스는 “수개월째 이어진 공급 지연에 유통업체도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했다. 현지 가전제품 공장에 부품과 소재 공급 차질이 심각해지며 나타난 현상이다.

그래픽=김의균
그래픽=김의균



신종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으로 바닥을 쳤던 수요가 급반등하면서, 세계 경제에 ‘공급 절벽’이라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반도체 품귀로 폴크스바겐·도요타·GM 등 자동차 업계가 생산 중단 사태를 겪는 중이다. 미국에선 가전제품과 자동차 부품 생산에 쓰는 강판(鋼板)이 부족해 업체 간 쟁탈전이 벌어지고, 유럽에선 플라스틱 원료(합성수지)가 부족해 가격이 폭등했다. 심지어 유리 부족으로 TV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LCD(액정 표시 장치)와 OLED(유기 발광 디스플레이) 생산이 차질을 빚을 것이란 예상까지 나온다.

공급 절벽은 신종 코로나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세계 경제에 심각한 위협이다. 생산 증가를 가로막아 실물 경제 회복을 지연시키는 것은 물론 인플레이션(지속적 물가 상승)을 초래,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시장의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사 UBS그룹의 악셀 웨버 회장은 “신종 코로나로 수요가 급격히 줄면서 ‘디플레이션(지속적 물가 하락)’을 예상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의 문제를 겪고 있다”고 했다.

◇수요 급증에 공급 감소까지 ‘이중 충격’

먼저 각국의 봉쇄 조치와 사회적 거리 두기 여파로 예상치 못한 내구재의 수요 급증이 발생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스타벅스나 레스토랑에 가서 쓰던 돈을 넷플릭스를 보기 위한 TV나 스마트 기기, 가구·인테리어 구매 등에 쓰면서 ‘수요 충격’이 나타났다”고 했다.공급 절벽은 수요가 갑자기 늘거나, 반대로 공급이 갑자기 줄어서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의 공급 절벽은 이 두 가지가 모두 동시에 나타난 드문 사례다.

여기에 공급 위축이 겹쳤다. 지난해 상반기 신종 코로나발 경기 침체가 닥치자 완제품 제조 업체들이 생산량을 대폭 줄였다. 관련 부품 및 원자재 업체는 즉각 구조 조정과 생산 품목 전환으로 대응했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하반기에 공산품 수요가 급반등하고 다시 부품·원자재 공급 요청이 쏟아졌지만, 생산 시설과 인력을 이미 줄인 상황이라 이전 생산량 회복에 6개월~1년 이상이 걸릴 전망이다. 자동차용 반도체가 대표적 사례다. <본지 2월 5일 C2면>

건축 자재, 디스플레이, IT 부품 등 상당수 공산품에서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미 지난해 소비·생산 통계가 나온 미국에선, 내구재 관련 지출이 2019년 같은 기간 대비 6.4% 늘어난 반면 내구재 생산은 전년 대비 8.4% 줄면서 수요와 공급 간 불균형이 극심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운송망 병목마저 발목 잡아

운송망의 더딘 회복은 이를 더욱 심화시켰다. 디스플레이용 유리 제조업체 코닝은 최근 “운송 문제로 유리 제조와 납품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며 “반면 TV와 IT(정보 기술) 제품용 디스플레이 유리 수요는 계속 늘어나 주문량을 대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온라인 쇼핑 급증과 이로 인한 해외 직구 물량 증가도 악영향을 미쳤다. 시장조사 업체 IHS마킷은 “지난해 미국으로 온라인 쇼핑 업체를 통해 수출된 상위 다섯 제품군 물량이 전년 대비 평균 37% 늘어났다”면서 이로 인해 공급망의 병목 현상이 더 심해졌다고 분석했다. 판매는 미국이나 유럽의 현지 온라인 쇼핑몰이 하지만, 배송은 중국의 제조업체가 고객에게 직접 하는 이른바 ‘드롭시핑(dropshipping)’ 판매가 급증했고, 이것이 글로벌 운송망 부담을 가중시켜 공급 절벽을 초래한 여러 원인 중 하나가 됐다는 것이다.

◇공급 절벽發 인플레이션 우려 급증

이는 공산품의 가격 인상으로 직결된다. 독일 보험사 알리안츠(Allianz)의 카타리나 우터뮐 수석 경제학자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공급 절벽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하반기부터 소비자에게 전달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가전과 IT 관련 제품은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가격 상승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 기관 갭 인텔리전스는 “지난해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 기간 냉장고와 세탁기 할인율은 약 24%로 2019년보다 각각 12%포인트, 6%포인트 낮아졌다”고 밝혔다. 그래픽카드와 메모리 등 IT 부품 가격도 상승세다.공급 절벽은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수요 확대와 공급 부진 모두 가격 상승 요인이다. 주요 제조업 부품과 원자재 가격은 이미 급등세다. LCD 패널 가격은 작년 하반기 82%(32인치 기준) 올랐고, 플라스틱 수지(PP·PE) 가격은 작년 12월 이후 25% 올라 t당 1500유로가 됐다. 미국 내 열연강판 가격은 지난달 1t당 1176달러를 돌파하며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미국의 기대 인플레이션율(BEI·미래 물가 상승률 전망치)은 2.24%로 2014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하반기 마이너스(-)를 맴돌았던 유럽의 인플레이션율도 지난 1월 0.9%로 1.2% 포인트나 뛰어올랐다. 인플레이션은 최근 급등한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시장에 치명타다. 낮은 물가 상승률 덕분에 가능했던 세계 각 국의 초저금리 정책에 제동이 걸리면서 금리 상승이 시작되고,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초저금리로 풀려나간 막대한 대출의 이자와 원금 상환 부담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보유한 주식과 부동산을 처분하려는 움직임으로 연결된다.

◇“소재 직접 만든다” 수직 계열화 나서

공급 절벽과 이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산업과 경제에 구조적 타격을 준다. 정봉주 연세대 교수(산업공학과)는 “자동차 업체같이 물품 발주에서 납품까지 걸리는 시간이 긴 완성품 제조 업체가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했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감산 조치에 들어간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예상 피해액만 15억~20억달러(약 1조7000억~2조2000억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생산 단가 및 차량 판매가 상승으로 인한 이익 감소와 매출 감소는 고려하지 않은 수치다.

제조업 생산 차질은 기업 매출 감소와 폐업에 따른 고용 불안, 가계 소득 감소로 직결되므로 실물 경제의 회복 부진과 소득 격차 심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각국 정부도 공급 절벽을 이겨낼 대책 마련에 팔을 걷어붙였다. 미국과 유럽, 일본 정부는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 해결을 위해 지난 1월 대만 정부에 협조를 요청했다. TSMC와 UMC 등 대만 정부가 지분을 보유한 반도체 위탁 생산업체가 현재 매출의 3~5%에 불과한 자동차 반도체 생산을 늘리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기업들은 아예 부품·소재를 자체적으로 만드는 ‘수직 계열화'도 강화하고 있다. 미국 테슬라는 리튬 배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네바다에 세계 최대 리튬 배터리 제조 공장 ‘기가팩토리’를 갖고 있는데, 한술 더 떠 네바다주에 리튬 등 희토류를 직접 채굴해 정제할 수 있는 시설 투자에 나섰다. 채굴부터 정제, 부품 생산, 완제품 생산에 이르는 전 과정을 한 회사에서 하겠다는 것이다.

◇부품·소재 ‘리쇼어링’ 강화 대세로

공급절벽의 궁극적 해결책은 현재의 글로벌 공급망을 아예 재편하는 것이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는 “전 세계적으로 180개 제품은 특정 1개 국가가 공급의 70%를 담당하고, 다국적 기업은 하청 업체만 수백개에 달한다”며 “(현재의 글로벌 공급망은) 충격에 상당히 취약한 구조”라고 분석했다.

이는 전 세계 기업들의 ‘리쇼어링(reshoring·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본격화로 이어질 전망이다. 유엔 무역개발회의(UNCTAD)도 “현재의 글로벌 공급망은 일시적 수요 급증에 공급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며 “(인공지능·로봇에 의한) 자동화에 힘입어 리쇼어링이 확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이 가장 적극적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선 때부터 “미국 내 생산(Made in All of America)”을 내세우며 리쇼어링 강화를 천명했고, 최근 연방정부가 미국 제품을 우선 구매하라는 행정명령과 주요 첨단 소재에 대한 공급망을 점검하라는 행정명령을 잇따라 내렸다. TSMC와 삼성전자 등 반도체 위탁제조업체의 미국 투자도 독려 중이다. 맥킨지는 “이러한 공급망 재조정으로 향후 5년간 전 세계 무역의 15~25%에 해당하는 수출 물량이 다른 국가로 이동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은 최근까지 신종 코로나발 공급 절벽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와 기아가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특근을 줄이며 생산량 감축에 나선 정도다. 한국 제조업의 공급망과 생산 기지가 중국·동남아·일본 등 인접국에 퍼져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최근 공급 절벽이 반년 이상 지속하면 한국 경제에도 직접 타격이 될 수 있다. 세계적으로 리쇼어링이 확산하면서 국가간 수출입이 줄어들면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결국 타격을 입히게 될 가능성도 있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장은 “핵심 소재가 아니더라도 LNG 운반선 부품이나 극자외선(EUV) 반도체 장비 등은 미국·유럽에 의존하고 있어 공급난이 이어지면 한국에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안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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