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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된장… 발효는 맛을 빚어내는 '기다림의 과학'

허윤희 기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11-09 09:50

"한식은 재료 자체의 맛을 고스란히 살리면서 발효 음식이 근간을 이룬 건강한 음식이다."

지난 1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2012 마드리드 퓨전 식문화 박람회'의 주제는 한국의 발효 음식이었다. 주최 측은 "먹으면 '감사한 마음'이 우러나는 음식"이라면서 간장·된장·고추장과 장아찌, 김치 등을 집중 소개했다.

젊은 셰프 신효섭(30)씨가 서울 종로구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윤숙자(64) 소장을 찾았다. 시간의 숙성을 통해 빚어지는 맛의 유전자를 찾기 위해서다. 한국국학진흥원 주관으로 이뤄진 이날 행사에서 두 사람은 '익음과 곰삭음'을 주제로 얘기를 나눴다.

발효는 기다림의 미학

윤숙자(이하 윤) 우리 음식은 급하게 먹는 게 아니라 만들고 발효시켜서 처음보다 좋은 맛을 내는 게 많아요. 곰삭은 맛, 감칠맛, 아미노산의 맛, 기다림의 미학이죠. 특히 모든 음식의 근간이 되는 장맛이 중요해요. 된장 하나를 봐도 오덕(五德)이라는 게 있어요. 어떤 맛과 섞여도 제 맛을 유지하는 단심(丹心), 오래 둬도 상하지 않는 항심(恒心), 비리고 기름진 냄새를 제거하는 불심(佛心), 매운맛을 부드럽게 하는 선심(善心), 어떤 음식과도 조화를 이루는 화심(和心)이죠.

신효섭(이하 신) 저는 양식이 전공인데 즉석에서 만들고 재료의 맛을 신선하게 살리는 게 많아요.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까 더 쉽죠. 반면 한식은 기본 베이스부터 곰삭혀야 하고, 날씨가 안 좋거나 햇볕이 안 들면 장맛이 변하니까 요리하기가 어려워요.

 어울림, 조화도 한식의 특징입니다. 잡채나 구절판, 신선로를 보면 음식에 다섯 가지 색깔이 잘 어우러졌죠. 동물성과 식물성, 채소와 고기, 색깔과 맛의 조화입니다. 조화 속에 건강의 비밀이 들어 있어요. '황제내경' 소문편에 보면 붉은색 음식을 먹으면 심장이 건강해지고, 흰색 식품은 폐, 황색 음식은 위장과 비장, 녹색 채소는 간장, 검은색 식품은 신장이 건강해진다고 나와 있어요.

 한식은 무엇보다 맛있잖아요. 요즘엔 외국인들도 정말 한식을 좋아해요. 말레이시아 항공사인 '에어아시아' 기내식을 맡았는데 '김치두루치기'는 최고라는 평을 받았어요. 닭고기를 익은 김치랑 볶아서 덮밥식으로 만들었는데 인기 만점이래요.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선수촌 식사를 담당했는데 그때만 해도 유럽이나 남미 쪽 선수들은 우리 음식을 낯설어했어요. 드라마 '대장금'의 인기로 한식이 많이 알려졌고, 젊은 셰프들도 한식을 알리는 역할을 많이 했죠. 2006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김치문화 특별전'에서 프랑스 달팽이 요리, 일본 오코노미야끼 등 세계 대표 요리들에 김치를 곁들여 선보였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어요. 김치의 곰삭은 맛은 어떤 나라의 음식과도 잘 어울려요.

 서울 종로구 한국전통음식연구소에서 윤숙자 소장(오른쪽)과 신효섭 셰프가 한국 음식의 발효를 주제로 얘기를 나눴다. 건물 옥상을 가득 메운 장독 위에 이들이 만든 삼색어알탕·꿩김치·전계아법 스테이크 등이 놓여 있다. /이태경 기자
더하기보다는 빼기

 조선 중기의 조리서 '수운잡방(需雲雜方)'을 보면 당시 양반 계층의 식생활을 엿볼 수 있어요. 경북 안동의 사대부 김유(1481~1552)가 쓴 음식 조리서입니다. 121가지의 조리법 중 술 제조법이 60개나 돼요. 장류가 10여 항목, 김치 15항목, 식초류 6항목, 요즘의 요구르트 같은 타락 만들기도 있어요.

 저도 이번에 처음 책을 봤는데, 더하기보다는 빼기가 많은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현대 요리는 뭔가를 계속 첨가해서 복합적인 맛을 내는데, 우리 조상은 빼기를 하면서도 어울리는 맛을 낸 게 대단합니다.

 우리 전통음식의 맛은 주재료의 맛이에요. 육류 요리에도 집 간장과 참기름 외엔 다른 양념이 전혀 들어가지 않아요. '수운잡방'의 음식들이야말로 슬로푸드면서 웰빙푸드죠. 또 제철에 나온 재료를 갖고 만든 음식이에요. 사계절이 뚜렷해서 그때마다 나오는 재료가 달랐잖아요.

발효는 과학

 '조선간장'이라고 하는 집에서 담그는 간장은 가을에서 다음해 여름까지 기다려 만들어냅니다. 10월에 좋은 콩을 삶아 절구에 찧어서 메주를 쑵니다. 짚으로 싸서 선반에다 매달면 장을 발효시키는 좋은 미생물들이 자라나죠. 정월장이 제일 맛있어요. 온도가 낮아서 서서히 발효되기 때문이죠. 메주를 항아리에 담아 맑은 소금물을 붓고 숯이며 마른 고추를 띄워 살균합니다. 45~60일 담가놓고 햇볕을 쪼이면 콩의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분해돼서 곰삭은 맛을 내는 거죠.

 '발효과학'이라는 말이 맞네요. 음식 하나에도 은근과 끈기가 들어 있어요.

두 사람은 '수운잡방'에 나오는 요리를 세 가지씩 시연했다. 윤 소장은 육면(肉糆)과 삼색어알탕·꿩김치를 전통 그대로 요리했고, 신씨는 퓨전 스타일로 재해석해 황탕(黃湯·노란 물 들인 밥과 갈빗살 고기 완자를 넣은 탕) 리조또와 닭고기 요리인 전계아법 스테이크, 동아정과 타르트를 만들었다. 신씨는 "한식의 뿌리를 알았으니 세계에 더 널리 알릴 수 있다는 자부심이 생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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