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들에겐 호들갑스런 수식어는 필요하지 않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 하나만으로도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능력과 업적을 인정받기 때문이다. 서예가 백석 김진화 선생(사진)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국전 초대작가,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한국 서예가 협회 고문 등, 서예가로서 김진화 선생이 지닌 이력은 남다르다. 칠순을 넘긴 나이에, 그는 밴쿠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서예가로서 또 다른 꿈을 꾸고자 한다. ‘프레이저밸리 한국어학교 서예담당 강사’가 바로 그것.
“밴쿠버에서 살게 된 지 이제 막 3개월 정도 지났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이곳에 정착했던 아들네 가족과 합치면서 저의 이민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지요.”
밴쿠버에서 갖게 된 ‘한국어학교 서예담당 강사’라는 명함은, 그의 명성에 비하면 얼핏 소박해 보일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진화 선생은 개강을 앞둔 요즘, 밤잠을 설칠 만큼 흥분된다고 고백한다.
“이곳에서 다시 붓을 들고, 사람들에게 서예를 하는 기쁨을 알려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80년대를 한국에서 보낸 한인이라면, 동네 이곳 저곳에 버젓이 자리잡고 있던 서예학원에 대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당시 서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집집마다 벼루 한두 개 정도는 있었고, 동네 문방구에서도 붓이나 한지 등을 팔았다. 엄마 등쌀에 밀려 서예학원을 다니는 아이들도 꽤 됐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서예를 멀리하기 시작했고, 가보처럼 여겨지던 벼루 위에 먼지가 가득 쌓이게 되었다. 김진화 선생은 이런 현실이 안타까웠다.
“사람들이 붓글씨를 멀리 하게 된 건 입시위주 교육이 확대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문제는, 서예를 하면서 얻을 수 있는 장점마저 외면당했다는 겁니다. 전통문화 자체를 소홀히 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예에 대한 관심도 수그러들 수밖에 없었지요.”
붓을 들면 잡념이 사라진다. 일상생활의 걱정으로부터, 사람들과의 얽히고설킨 감정으로부터 잠시 자유로워질 수 있다. 붓을 든 순간은, 하얀 백지 위에 자신이 써내려 가는 글씨에 집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신이 탄탄해지는 것, 바로 이것이 백석 김진화 선생이 말하는 서예를 하는 기쁨이자 장점이다.
“서예의 또 다른 장점은, 조금은 산만한 아이부터 일상이 무료한 노인들까지, 붓을 들 힘만 있다면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김진화 선생은 이번에 새롭게 여는 서예교실에 특히 노인들이 많이 참석해 주길 바라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뭔가 주기적으로 할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취미생활로 여행이나 골프를 거론하긴 하지만, 그것들은 아무리 즐거워도 매일매일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서예는 다르지요. 하루 몇 시간씩 꾸준히 할 수 있고, 꾸준히 한 만큼 성취감도 느낄 수 있으니까요. 남녀노소 상관없이 서예를 통해 조금이라도 삶이 윤택해진다면, 그것으로 전 만족합니다.”
김진화 선생은 ‘서예의 중흥’이라는 자신의 꿈을 이곳 밴쿠버에서도 이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이번에 선보이는 서예교실이 바로 그 꿈의 출발점이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문의 프레이저밸리 한국어 학교 민완기 교장 (604)729-0160
토요반(25일 개강/오전 10시~12시) 화요반(27일 개강/오전 10시~1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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