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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늙고 싶다” 두 번째 이야기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8-09-19 00:00

“이렇게 늙고 싶다” 두 번째 이야기

은퇴는 끝이 아니라 시작

손상대씨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적극적으로 대외 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노인들이 은퇴 후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이 그의 눈엔 안타깝게 비춰진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인생의 전환점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노인이니까 이런 일은 할 수 없어, 젊은 사람들이나 해야지, 하는 생각은 자신을 나약하게 할 뿐입니다. 저는 노인에 대해 사람들이 생각하는 낡은 개념을 없애고 싶습니다. 노인들도 자기뿐 아니라 남을 돌보면서 살 수 있고, 또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예가 서정건씨의 은퇴 후 삶은 조금은 남다르게 보인다. 그는 한국에서 직장생활과 개인사업을 30년 넘게 한 후에, 밴쿠버로 건너왔다. 환갑 가까운 나이에, 이른바 ‘은퇴 이민’을 택한 셈이다. “보다 넓은 땅에 자녀들을 풀어놓고 싶었다”는 게 그가 이민을 결정한 주된 이유였다. 은퇴 후 밴쿠버에 온 이후, 그는 오랫동안 동경하던 ‘붓’을 마침내 들게 되었다. 서정건씨에게 있어 붓은, 그의 은퇴 후 삶을 윤택하게 해 준 고마운 벗이기도 하다.     

“누구나 그럴 거라 생각하지만, 젊었을 때는 늙는다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해요. 자기 직업에 열중해서 살아야 하니까 말이죠. 그러다가 막상 노년에 접어들게 되면 모든 게 막막해집니다. 그래서 필요한 게 취미에요. 전 그 취미로 서예와 수필 집필을 택했습니다. 저는 이공계 출신인데, 전기 기술사로 한국전력 등에서 오랜 시간 일했지요, 그런 일을 하면서도 늘, 뭔가 감성적인 것을 그리워했던 것 같아요. 서예와 수필이 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서정건씨의 작업세계는 단순히 취미생활 안에 머물지 않았다. 붓글씨로 성경을 필사해 세상의 주목을 받기도 했고, 자신만의 문집을 내기도 했다. 그는 밴쿠버의 독특한 날씨 덕분에 좋은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좋은 글로 풀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밴쿠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불만 중 하나가 비가 너무 많이 온다는 것이죠.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비를 사랑하며 살라고 얘기해 주고 싶습니다. 비가 오면 좋은 일을 상상하면서 살라고 얘기해 주고 싶습니다. 은퇴 후 노인들에겐 긍정적 사고가 더욱 더 필요하겠지요.”

취미생활도 작심삼일로 끝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노인들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해선 꽤 단호한 의지가 필요하기도 하다. 산악인 박병준씨는 취미생활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을 ‘모임’에서 찾는다. 모임에 참여하면 소속감과 의무감을 동시에 챙길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제 생각엔 어떤 조직에 몸을 담고 있어야 산행을 하던지, 사냥을 하던지, 계속 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혼자 취미생활을 하게 되면, 스스로에게 너무 관대하게 되지요. 이 핑계 저 핑계를 들면서, 취미 생활을 점점 멀리 하게 되는 걸 종종 볼 수 있어요.”

 

배우자는 노년기에 특히 보석 같은 존재

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인간은 배우자가 사망했을 때 가장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한다. 물론 통계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할 순 없겠지만, 배우자의 중요성에 대해 이의를 달긴 힘들 것이다.

배우자로부터 받는 사랑과 정, 그리고 두터운 신뢰는 가정의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한 하나의 필수조건이다. 특히, 노년기에 접어든 사람들에게 배우자는 마음 툭 놓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의지가 된다. 어찌 보면, 함께 늙을 수 있는 누군가가 오랜 시간 자신의 옆을 지켜준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행운일 수 있다.

서정건씨는 “늙을수록 더욱 필요한 존재가 바로 배우자”라고 얘기한다.

“누군가와 함께 해로하는 것 자체가 큰 복이지요. 부부는 같이 사는 만큼 정도 깊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서로 닮아가지요. 외모나 식성, 습관이나 사소한 말버릇 같은 것도 닮아갑니다. 제 경험을 볼 때, 닮아가기를 거부하는 부부는 같이 살지 못하거나 늘 싸움만 하는 것 같습니다.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닮아가는 부부가 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지요. 마음에 맞는 배우자와 함께 하는 것, 이것이 노년의 가장 큰 축복이 아닐까요.”

배우자와의 정을 돈독하게 하는 방법 중 하나로, 박병준씨는 ‘동행’을 꼽는다. 무슨 일을 하던지 함께 가고, 함께 하는 것이다. 박병준씨의 취미 생활은 산행, 사냥, 여행 등 무척 다양한데 그는 이 모든 일을 아내와 함께 한다.

“캐나다의 노후 생활은 한국에 비해 제도적으로 훨씬 윤택하다고 생각합니다. 노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의 폭이 넓다고 해야 할까요. 욕심만 내지 않는다면, 연금만으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을 거예요. 문제는 다른 나라에 비해 윤택한 노후 생활을 배우자와 함께 즐겨야 한다는 점이지요. 같이 사냥터를 찾고, 산에 오르고, 여행을 다니다 보면 부부간의 정은 자연스럽게 돈독해집니다. 어떤 공동체 의식 같은 것도 생기게 되지요.” 

손상대씨도 ‘선교여행’을 되도록이면 아내와 함께 하려 한다. 지난 6일 선교활동의 일환으로 영국을 찾았을 때도, 그의 옆엔 아내가 있었다.

“부부간의 갈등이란 건 존재하기 마련이죠. 젊은 부부들은 이 갈등이 더욱 심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배우자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서서히 깨닫게 될 겁니다. 노년기 행복의 기본은 바로 가정의 화목이라고 생각해요. 서로 이해하고, 도와주고, 그리고 함께 늙는 것이 바로 인생이지요.”

 

건강한 삶, 노년 행복의 기본

평균수명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건강수명이다. 노인들에게 있어 ‘외롭게 병든다는 것’만큼 안쓰러운 일도 없다. 병상에 누워 노년을 보낸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아깝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건강은 인생의 행복을 논하는 데 있어 꼭 빠지지 않는 단골 주제가 된다.

산악인 박병준씨는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조금은 식상하게 들릴 수 있는 원칙의 신봉자이기도 하다. 그는 약 13년 전, 58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다른 동료들에 비해 조금 이른 나이의 은퇴였다. 목재소 현장 책임자로 보수도 상당히 높은 편이었는데, 그는 조금의 미련도 없이 회사를 떠났다. 박병준씨가 회사에 사표를 낸 주된 이유는, 다름아닌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일을 계속 했더라면 돈은 좀 더 모을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하루 종일 먼지와 쇳가루와 씨름해야 하는 환경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책정된 임금이 시간당 28달러로 꽤 높았지만, 그 돈이 그렇게 아깝게 느껴지진 않더군요. 물론 수입이 끊어지니 좀 막막하긴 했지만, 어른들 말씀대로 그냥 살아지더군요. 참 안 된 얘기지만, 그때 계속해서 회사에 남은 동료 중 딱 한 사람만 건강을 지키고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어요. 자신의 몸 상태를 과신하지 말아야 해요. 나이가 들수록 더욱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병준씨는 건강 비결을 자연에서 찾는다. 자연적이지 못한 음식물, 인위적인 행동 하나하나가 그에게 있어선 건강한 삶을 가로막는 하나의 장애물로 보인다. 보다 자연과 가까운 삶을 누리기 위해 박병준씨는 숲을 찾고, 자기 집 뒷마당에 텃밭을 일군다.

“저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씨를 뿌립니다. 땅을 뚫고 올라온 새싹을 보면서, 생명의 신비감 같은 것도 느끼곤 하지요. 새싹에 물을 줄 때면, 제 갈증도 다 해소되는 것 같습니다. 텃밭을 일구는 게 생각보다 쉽진 않지만, 이런 노력으로 전 무공해 채소를 얻습니다. 저는 건강해지기 위해선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 산 저 산을 걸어 다니는 것도 지극히 자연적인 행위인 거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어찌 생각하면 비자연적인 것이에요. 스트레스는 생각의 전환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누군가 1만 달러를 사기 당했다고 칩시다. 아무리 속을 끙끙 앓아도 그 1만 달러는 다시 내 지갑으로 돌아오기 힘들어요. 대신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1만 달러에 내 스트레스를 팔았다고.”

메이플리지에 위치한 서정건씨의 넓은 뒷마당도 각종 야채들로 풍성하다. 단순히 소일거리고 보기엔 그 규모가 제법 크다. 서정건씨 부부는 이 텃밭에서 나온 무공해 식재료를 남들과 나누는 일에 전혀 인색하지 않다. 텃밭을 가꾸기 위해 적지 않은 땀을 흘렸을 터인데, 오는 손님손님 마다 싱싱한 방울토마토를 건네기도 한다.

손상대씨는 건강한 삶은 ‘정신적인 것’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정신적으로 건강하면 육체적 건강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나이든 상태를 비관적으로 보고 나약한 마음을 먹게 되면, 몸도 덩달아 쇠약해진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취재 후기>

조선일보가 만난 세 명의 노인은 물론 밴쿠버 노인사회의 대표 단수는 아니다. 노인 관련 주제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눈도 있을 테고, 행복한 노년을 위한 다양한 ‘아주 특별한 조언’도 존재할 것이다.

다음에도 ‘노년특집’이 기획된다면, 좀 더 구체적 사례에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캐나다 사회에서 노인이 받을 수 있는 혜택, ‘백발 청년’을 과시하는 노인들의 활기찬 삶, 노인들만의 각별한 모임 등이 의미 있는 이야기 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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