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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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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08-10-09 00:00

 

“하나님, 내가 여자로 태어나지 않고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대인 남자들이 매일 하는 아침 기도다. 그들은 배타적이다. 선민의식으로 고집스럽게 뭉쳐있다. 그런 점이 초대 교회를 이끌어 가던 리더들을 어렵게 했다.
유대인과 이방인들은 툭하면 교회 안에서 음식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피가 있거나 목 매 죽인 짐승의 고기도 절대 사절이다. 자신들이 즐기지 않을 뿐 아니라 그를 먹는 이방인들 조차 싫어했다. 사도 베드로 역시 유대인이긴 마찬가지였다.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사도행전 10:14)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인은 기피 1호 민족이었다. 유대문헌인 벤 시라에는 “우리가 전적으로 혐오하는 민족이 셋 있는데 세일과 블레셋에 사는 자들이다. 또 하나는 민족이라 부르고 싶지도 않는 놈들이다. 세겜에 거주하는 멍청한 족속들이다”고 적고 있다. 세겜의 멍청이들이 바로 사마리아인이다.
이들은 원래 같은 핏줄이었다.
유대인이 순수 혈통을 지켜 온 반면 사마리아인은 이방인과 혼인하였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들은 동일한 하나님을 섬겼다. 다만 유대인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두었고 사마리아인은 그리심산을 자신들의 예배처로 고집했다.
한 핏줄의 이웃임에도 불구하고 이들 사이에는 늘 유혈이 낭자했다. 예루살렘으로 가던 어떤 갈릴리 사람이 사마리아 지역에서 살해를 당했다. 유대인들은 그에 따른 복수로 사마리아인들을 대량 학살했다. 이런 사건은 늘 되풀이 됐다. 말만 이웃일 뿐 실제로는 원수나 다름없었다.
유대에서 갈릴리로 돌아가면서 예수는 굳이 사마리아를 지나갔다. 요단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될 터인데 한사코 적의(敵意)로 가득한 땅을 택했다. 길에서 예수는 한 여인을 만난다. 해가 중천에 떠 있던 우물가였다. 여인은 혼자 물을 길러 나왔다.
여인의 이름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저 사마리아 여인으로 불려진다. 그럼에도 이 여인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고백을 접하게 된다. 여인이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는 이가 오실 줄 내가 아노니”라고 하자 예수는 “내가 그로다”며 스스로 메시아임을 밝혔다. 신약성경 전체를 통해 예수가 자신을 메시아로 직접 표현한 유일한 대목이다.
예수는 왜 생애 단 한번의 메시아 선언을 적지(敵地) 사마리아에서 이름없는 여인을 상대로 했을까. 예수는 이 여인을 만나기 전 지식인이면서 유력한 관리였던 니고데모를 만나고서도 굳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를 통했더라면 메시아 선언은 더욱 큰 효과와 파장을 가져 다 주었을 것이다.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은 차이가 있었다. 당시 유대사회에서 그 차이는 오늘날 흑인과 백인 혹은 아시아인, 기독교인과 이슬람교인, 부자와 가난한 자 보다 더 확연했다. 하지만 예수는 그 차이로 인해 사마리아인을 차별 하지 않았다.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의 차이를 알았지만 그것이 차별을 당해야 하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보여 줬다.
예수는 유대인들을 상대로 숱한 이적을 행했으나 사마리아에선 침묵했다. 그러나 온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메시아로 따르는 진정한 이적을 보여 준 곳은 오히려 사마리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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