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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의 성곽도시 카르타헤나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8-07-03 00:00

꿈같은 파나마운하 크루즈(4) 허억(밴쿠버 문인협회 회원)

4월 25일, 오늘은 에메랄드와 커피 그리고 마약으로 유명한 남미의 콜롬비아를 향하여 항해하는 날이다. 이렇게 항해만 하는 날은 단체활동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나는 아내와 함께 둘이서 9시 반에 있는 파나마운하 설명회에 갔다. 수에즈운하를 건설한 불란서 사람이 자신 있게 시작했다가 질병과 재정난으로 처참하게 실패한 후 미국이 그 건설권을 사들여 어려운 작업에 군인까지 동원해서 완공한 후 운하를 운영해 오다가 1999년 파나마에 이전한 이야기를 착 가라앉은 음정(tone)으로 아주 재미없게 설명해서 나는 간간이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설명회에서 나오자마자 6층 트랙으로 가서 걷기 시작했다. 태평양의 수면표고(水面標高)가 카리브해 쪽보다 9.9m나 얕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했다. 걷는 동안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을 만나 함께 토의했다. 그리고 아마도 지구가 서(西)에서 동(東)으로 자전하기 때문에 지구상의 바닷물이 서쪽으로 약간 밀리는 것이리라고 함께 결론을 지었다.

오후에는 춤을 가르치는 곳으로 갔다. 우리 팀이 다 모였다. 오늘은 ‘차차차’를 배웠는데 한 시간 동안 온 정신을 다 쓰면서 뛰고 나니 운동도 많이 되고 치매예방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됐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라도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매우 무료하리라고 느껴졌다. 저녁시간에는 영국의 유명한 테너 가수가 온다고 하여 극장에 갔다.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는 듯이 자기 자랑을 하며 노래를 부르는데 음악을 잘 모르는 나의 귀에는 별로 신통치 않게 들렸다.

4월 26일, 우리 배는 정확하게 오전 7시에 콜롬비아의 카르타헤나(Cartagena)에 도착했다. 영어로는 카르타제나라고 발음하는데 이곳 사람들은 카르타헤나라고 부른다. 우리보다 먼저 Holland America Line의 Westdam이라는 유람선이 정박하고 있었다. 이 나라는 열대성 기후로서 일년 내내 기온의 변화가 없으며 평균기온이 섭씨 32도나 되는데 지표의 높이가 1000m 높아짐에 따라 기온이 6도씩 떨어진다. 오늘도 쾌청한 날씨여서 몹시 덥지만 아직 우기에 접어들지 않았으므로 습도는 높지 않아 그래도 견딜 만했다.

우리는 구(舊)시가지로 갔다. 해안을 따라 만리장성의 폭보다 두 배정도 넓어 보이는 성곽이 길게 뻗쳐있고 바다로부터의 어떠한 공격도 막아낼 수 있는 견고한 요새가 지어져 있다. 여기저기 성당, 수도원, 광장, 높이 매달린 발코니 등이 보이고 유명한 장군들의 동상과 그 때에 쓰였던 화포 등이 전시되어 있다. 옆으로 누워있는 나체의 여인상 그리고 높이 세워진 인디언 여자의 동상도 있다. 우리 일행의 남자들은 모두 다 65세가 넘은 시니어(senior)들인데 아직도 남자의 기운이 남아있는지 그 나체 여인상에 둘러서서 사진을 한 장 찍고 한 바탕 우스개 소리를 하고서야 그곳을 떠났다. 사람들은 거의가 메스티조로 보이는데 뚱뚱한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골목마다 그림이니 티셔츠니 팔려고 쫓아다니는 행상들이 많이 있고 과일을 머리에 이고 팔러 다니는 여인도 있어 함께 사진을 찍고 1달러 팁을 주기도 했다. 어떤 건물 앞에는 온몸을 검은 옷으로 두르고 장승처럼 꼼짝 안하고 서 있다가 가끔가다 한 번씩 조금 몸을 움직여서 행인들을 깜짝 놀라게 사람이 있는데 지금도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그저 광고 수단이겠지 하는 생각이다.

중미의 모든 국가가 그러하듯이 이 나라도 천주교국가이다. 우리는 오래된 큰 성당으로 안내되었는데 신부가 나와서 미사를 집례하고 100명에 가까운 신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우리 일행 중에도 천주교인들이 있어 잠시 기도했다. 성당 문 앞에는 불구의 여인이 앉아 손을 내밀고 있어 기쁜 마음으로 1달러를 건네주고 그곳을 떠났다.

이 나라는 에메랄드와 금이 많이 나서 반지, 목걸이 등 여성들의 장식품을 파는 가게가 이곳 저곳 있다. 운전기사는 우리를 그런 곳으로 자주 안내하는데 거기서는 음료수를 무료로 주고 냉방도 잘 되어 있어서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보석의 값도 잘 흥정하면 1/4 정도로 살 수가 있다. 그러니 흥정을 제대로 못 하고 사는 사람은 그만큼 비싸게 사는 바보가 되는 것이다. 관광객을 상대로 세워진 간이상점들이 수도 없이 많은데 그곳을 통과하는 것은 너무 덥고 복잡해서 고역이었다. 그래도 쇼핑을 좋아하는 여인들은 이것저것 할인을 해가면서 구입한다. 집이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선물을 잔뜩 기다리고 있는 손자 손녀들의 얼굴이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우리를 태우고 다닌 기사는 영어실력이 아주 시원치 않았다. 우리가 콜롬비아에서 생산한 커피를 사기 위하여 그곳으로 안내하라고 몇 번이나 요청했는데 알아들은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던 그가 우리를 그냥 배까지 태우고 온 것이다. 우리가 항의를 하자 그 때에야 알아듣고 2, 30분 동안 달려가서 커피가게에 갔다. 가게점원이 한국사람이다. 너무 구릿빛으로 얼굴이 타서 도저히 알아볼 수가 없다. 우리는 선물용으로 최상품이라는 것을 몇 봉지씩 사 가지고 급하게 배로 돌아왔다.
여행을 하면 마음이 좀 흥분되고 서두르게 된다. 일행 중 한 분이 커피 5봉지를 사면서 “하나에 7달러이니까 5x7 =42 맞지요?” 하고 묻자 점원이 “예” 하고 대답해서 돈을 주려고 하는데 그의 아내가 “오 칠 사십이가 어디 있어요? 오 칠은 삼십 오지”해서 깔깔대고 한바탕 웃었다.

원래 콜롬비아에는 칩차스(Chibchas)라고 불리는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산악지대에 살면서 광산과 세공업에 종사했다. 스페인은 이 나라를 정복한 후 내륙지방에 풍부한 에메랄드와 금을 자국으로 수송하기 위하여 카르타헤나항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하여 해적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스페인 왕은 이 항구를 적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하여 성곽을 둘러쌓게 하고 도로를 일부러 좁고 꾸불꾸불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르타헤나는 16세기에 5번이나 점령당했다. 그 중에도 가장 유명한 것은 1586년에 있었던 해적 Francis Drake의 공격이었다. 그는 카르타헤나 내항까지 침공하여 시가지를 불태워버리겠다고 협박한 후 1000만 페소(peso)를 배상금으로 받고서야 조용히 물러났다.
 
1686년 스페인은 5900만 온스의 금을 들여 두께가 50피트에 이르는 견고한 성벽을 해안을 따라 준공했다. 그리하여 1741년 영국이 186척의 군함과 2만4000명의 병력으로 공략해왔을 때 그들은 성공적으로 이 도시를 방어할 수 있었다. 지금도 해수면에서 135피트 높이로 솟아 있는 웅장한 스페인의 요새 San Felipe(스페인 왕의 이름을 딴 것)은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으며 많은 관광객을 부르기도 한다. 우리 일행은 날씨가 너무 덥고 요새가 엄청나게 높아서 감히 올라갈 생각을 못 하고 사진만 찍고 떠났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곳을 올라가 보지 못한 것이 몹시 아쉽게 여겨진다.

해안을 따라 심어놓은 무궁화나무는 키가 큰 편에다 새빨간 꽃이 이때까지 내가 보아온 것보다는 더 크고 깨끗하게 만발하여서 아주 예쁘게 보였고 항만 저쪽으로 보이는 신시가지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이 신 시가지는 경관이 뛰어나서 콜롬비아의 마이애미라고 불린다. 거리에는 우리나라의 현대 및 기아차가 많이 보여서 마음이 흐뭇했다.

우리가 1989년 이태리에 갔을 때 소매치기가 많으니 주의하라고 경고해서 많이 긴장했었는데 이곳에도 소매치기가 많다고 해서 여권과 돈주머니를 몸 속 깊이 감추는 등 각별히 조심했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이 조금 거칠게 행동하는 것과 제복을 입은 군인들이 많이 보이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

콜롬비아는 181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려고 봉기했다가 실패한 후 1819년 다시 영웅적 봉기를 감행하여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였다. 매년 11월 11일에는 환상적인 의상과 가면을 쓰고 시민들이 시가행진을 하여 그 날을 기념한다.

저녁에는 라틴 음악과 춤의 향연이 극장에서 벌어졌다. 춤과 노래가 정말 일류급이라 관객들은 모두 많이 즐겼는데 그들은 미국, 캐나다, 영국, 우크라이나 등 세계 각국에서 모인 젊은이들이어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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