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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만 그득한 이상한 ‘매운탕’ "아보츠포드 일식 집 `세미'가서 스시 먹고 나오면 바보래요~"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10-22 00:00

일식 레스토랑‘세미(She-Mi)’

주말을 맞아 당일코스로 호프, 해리슨으로 나들이 갔다가 돌아오는 길. 한국이라면 필시 근처 어디쯤 맛있는 토종닭도리탕을 파는 식당이 있을 것만 같은 한적한 도로변. 차는 슬금 슬금 막히고 배는 출출한데 저녁 식사시간까지 시내에 닿을까 말까 어중간한 시간. 창 밖을 보니 아보츠포드를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무작정 고속도로를 벗어나 낯선 지역으로 방향을 바꾸기가 두려울 때 90번 출구가 보인다면 과감하게 핸들을 꺾어 보자. ‘McCallum’으로 방향을 잡고 5분이면 도로선상 왼쪽에 나지막한 지붕의 일식 집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인 최동구씨가 운영하고 있는 ‘세미’일식당이다. 매운탕을 시키면 은대구 뼈에 야채만 가득해 보이는 ‘이상한 매운탕’이 있다. 맛? 먹어본 다음 이야기 해도 늦지 않다.

◆ ‘징글 징글’한 아보츠포드 잉꼬부부의 비밀
잠시도 부인이 없으면 찾아 나서는 남편. 겉으로 보기엔 ‘징글’한 잉꼬부부다. 그러나 속내를 알고 보면 그것만도 아니다. 매운탕을 시켰더니 정말 부인부터 찾는다. 
-국물을 어떻게 만들길래 이렇게 칼칼하면서 맵지는 않고 달콤하면서도 설탕 맛은 아닌가요?
“거, 양파를 많이 쓰는 편이에요. 집 사람 오면 물어보세요.”
-생선이 무르지도 않고 퍽퍽하지도 않은 건 사전에 보관하는 특별한 비법이 있나요?
“소금과 식초로 만든 소스에 잠깐 담궜다가 꺼내는데…… 집 사람 오면 물어보세요.”
대화가 이렇다. 그저 사람 좋은 웃음만 ‘허허……’하는 통에 갑갑해서 주방으로 들어가, 아무나 아줌마를 잡고 ‘부인이냐’고 물어도 직원도 주인 닮는다더니 웃기만 한다.

◇ 일식당 이라고 하면 으례껏 스시, 생선회의 신선도에만 관심을 갖게 된다. 세미 일식당에서는 스시를 잊어버리고 매운탕과 은대구찜 부터 시킨 다음 부족할 때 스시를 먹어도 늦지 않다.  아보츠포드까지 찾아가서 매운탕만 먹고 일어나도 억울하지 않다. 사진에서 주인 최동구씨 곁에 서 있는 이가 부인 최점숙씨.

◆ 딱 한가지로 폼 나는 집! 매운탕
일식당 ‘세미(She Mi)’를 가서 일식 메인 메뉴에서 스시만 챙겨 먹고 나온다면 바보다. 이 집의 진미는 매운탕에 있으니까. 그리고 또 하나 별미는 ‘은대구찜’이다. 메뉴판 볼 것도 없이 ‘매운탕 하나! 은대구찜 하나!’ 외치면 끝난다. 매운탕 다 먹고 나서 맛없는 사람, 팁 대신 구겨진 바지 줄 세우며 태연히 걸어 나와도 된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
이 집은 얼핏 뼈만 그득해 보이는 ‘이상한 매운탕’ 딱 한가지로 폼 나는 집이다. 혹여 사람 좋아 보이는 첫 인상의 주인 최모씨가 “스시가 더 맛있다”며 마음을 흔들더라도, 꿋꿋하게 ‘매운탕, 은대구찜’을 고집 하시길. 한 숟갈 떠서 입안에 넣고 삼킨 다음 수저가 바빠지는 이 마술 같은 매운탕과 은대구찜은 그의 부인 최점숙씨의 솜씨다.
칼 맛이야 11년째 부동의 대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남편 최동구씨가 한 수 위란 건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매운탕과 은대구찜은 그의 부인이 사부를 단연 앞지른다. 굳이 따지자면 부인의 이런 솜씨의 뿌리는 남편이 원조이긴 했을 터. 하지만 어쩌랴. 뛰어난 스승은 자신보다 훌륭한 제자를 길러내는 것이 일생일대 최고의 광영인 것을. 주인 아저씨, 그게 못내 억울하다고 하면 ‘주머니 돈이 쌈지 돈’이라 위안 삼으시던가. 손님이야 원조가 제자든 사부든 이웃집 할머니든 돈 내고 사 먹는 음식, 맛있게 만들어주는 사람을 ‘시조’로 떠 받들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이해해야 한다.

◆ 이상한 매운탕
이 집을 발견한 건 순전히 기자의 예리한 혀 끝이 찾아 낸 ‘특종’이랄까? 생색 낸다고 욕해도 할 수 없다. 뭐 이렇게 먼 소도시까지 가서 맛있는 음식 발견한 생색 좀 낸다 한들…….
에구, 돌 날아올라.
이전에 우리나라 강원도 어느 소도시처럼 차량도 사람도 한가롭기만 하던 아보츠포드에 최근 한국 유학생들이 밀려 들면서, 맛있는 한국 음식점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듣고 있었다. 하지만 어지간한 미식가가 아니고서야 그렇게 열성적인 발품을 팔면서 그 먼 길 가서 한끼를 먹고 올 사람이 있을까 싶어 까맣게 잊어버렸다.
며칠 전,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길을 달려 아보츠포드 한인회장 선거 취재를 가면서, 주최측에 ‘완전 원망’을 퍼부으며 달려갔다.
식탁 위에 저녁식사로 올라 온 메뉴는 달랑 매운탕 한 냄비. 게다가 아보츠포드 음식점 인심 참 사나운 듯, 냄비 속에는 머리 뼈만 그득하다. 그것도 반쯤 먹고, 반쯤 식어 별로 식욕이 동하지도 않은 때깔이다.
예의상, 뜨는 시늉만 하려고 매운탕을 뒤적거리는데 정말 살은 ‘쬐금’ 붙어 있는 은대구 머리 토막들만 들어있다. 시골 인심 박해졌다더니 손님은 제쳐두고 아보츠포드 시민들끼리 그새 맛있는 속살은 싹 건져 먹고 생선 머리만 남겨져 있다.  
“매운탕이 왜 뼈만 있어요?”
“아, 이게 생선 이것저것 회 뜨고 남은 뼈로 만든 서더리탕일 거에요.”
“이거 은대구매운탕이에요. 이 매운탕 웨스트 밴쿠버에서도 찾아와서 먹는 거에요.”
푸, 웨스트 밴쿠버에 먹을 음식이 없어서 생선 뼈다귀 서더리탕 먹으러 아보츠포드까지? 거짓말이 좀 심하다는 생각. 하지만 꾹 참으며 매운탕 속에서 무 조각 하나를 국물과 떠서 한입 먹었다.
그리고……

◆ 쏘가리, 메기, 붕어! 몽땅 꿇어! 
아무 말도 못했다. 햐! 매운 듯 칼칼하면서도 맵지는 않고, 그러면서 달착지근한 끝 맛에 할 말을 잃었다. 웨스트 밴쿠버에서만 찾아 올 일이 아니다. 일부러야 오지 않겠지만 한국에 살고 있다 해도 한번 왔던 사람이라면 방문길에 꼭 다시 찾게 될 것 같은, 쏘가리, 메기, 붕어! 몽땅 꿇어! 그런 맛이다.
이럴 때 전화를 걸고 싶은 곳이 몇 있다. “밴쿠버에는 한국처럼 매운탕 끓일만한 생선이 없어서 그 맛을 내지 못한다”고 했던 사람, 분명 온갖 정성을 다하는데도 깊은 맛을 내지 못하는 어떤 집, 경력만 믿고 스스로 최고라며 자부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면, 우리 독자들은 어디서나 안심하고 매운탕 하나는 마음껏 먹을 수 있을 텐데.  

◆ 냄비 속에 뼈만 가득한 비밀
이미 맛을 보긴 했지만, 바글바글 끓는 매운탕을 시켜 본격적으로 진수를 맛 보기 전 최대의 궁금증 하나부터 해소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아, 서더리탕이 아니구요. 은대구의 머리 맨 끝은 잘라버리고 눈이 있는 부분부터 아가미 직후몸통의 직전 목 살만 매운탕꺼리로 쓰죠. 아무리 맛있는 생선이라 해도 살이 너무 많으면 퍽퍽한 맛이 나고 목 부위의 살이 가장 맛있죠.”
‘큭’ 웃었다. 생선에 언제 목이 있었던가? 직업에 따라 보는 각도가 참 다르구나 고개가 끄덕여진다. 주인의 이런 센스가 정겹다. 제법 살이 많이 붙어 있는 은대구찜에도 비법이 있지 않을까 했다. 부부가 서로 얼굴만 쳐다 본다. “그깟 비법 아무리 가르쳐 줘도 따라 할 사람 없다”고 했더니 쏟아놓는 비법은 이렇다.
매운탕 육수는 보리새우와 표고버섯을 듬뿍 넣고 끓인 육수에 양파 다대기로만 단 맛을 내고, 은대구 찜은 불의 온도가 핵심이라는 말. 정종과 물엿, 마늘로 만든 양념을 끓이다가 은대구를 넣어 옛날 숯불 온도에 가까운 은근한 불에서 오래오래 졸여, 생선 살 속으로 양념의 훈이 먼저 스미듯 들어간 다음 양념이 배어들어야 맛있는 찜이 된다는 것. 
군산이 고향이라는 주인아줌마가 서비스로 내 놓은 해물전도 특이하다. 손바닥 만한 전이 밀가루보다 오징어가 더 많이 씹힌다. 어머니가 멀리서 다니러 온 자식에게 오징어 다리 한 개라도 더 먹이려고 촘촘히 썰어 많이 넣고 부쳐 낸 것처럼, 꼭꼭 씹히는 오징어 전이 먹어도 먹어도 참 많이도 먹힌다. 공짜라 먹는 줄 오해 받을까 창피하게. 

*영업시간  
    월~토 11:30 am ~ 10:00 pm
    일  11:30 am ~ 9:00 pm(연중무휴)
*주소   2443 McCallum Rd.
               Abbotsford
*문의   604-850-1242

이재연 기자 jy@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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