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지구와 접신한 사람들 “맨발로 걸으면 만병이 낫는다”

정시행 기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3-10-30 07:43

믿음인가 과학인가··· 전국 ‘맨발 걷기’ 열풍
본지 정시행 기자가 지난 23일 서울 서대문구의 ‘신상 맨발길’인 안산 황톳길을 걷고 있다. 1시간쯤 맨발로 걸었더니, 딴 건 몰라도 초저녁부터 잠이 쏟아지긴 했다. 맨발 걷기가 각종 질환에 효험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진짜인가 궁금해 나와봤다’는 초심자들도 많았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본지 정시행 기자가 지난 23일 서울 서대문구의 ‘신상 맨발길’인 안산 황톳길을 걷고 있다. 1시간쯤 맨발로 걸었더니, 딴 건 몰라도 초저녁부터 잠이 쏟아지긴 했다. 맨발 걷기가 각종 질환에 효험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진짜인가 궁금해 나와봤다’는 초심자들도 많았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만병통치라잖아. 밑져야 본전이니 해봐요.”

지난 23일 서울 서대문구 안산 황톳길. 쌀쌀한 가을 아침에 신발과 양말을 벗고 흙을 밟자 소름이 돋았다. 발가락을 오므린 채 끝없이 밀려드는 맨발의 사람들을 바라봤다. 패딩 점퍼 껴입은 부부, 털모자 쓴 노모를 부축한 중년 남성, 아기 발을 벗겨 풀어놓은 엄마들이 묵묵히 흙길을 오갔다. 맨발로 접신(接神)한 지구의 기운이 지치고 병든 우리를 구원할 거라는, 간절한 마음들. 조용한 숲은 거대한 기도 도량을 방불케 했다.

생소한 느낌에 발을 못 떼는 기자에게 60대 여성 최모씨가 “처음이면 살살 걸어보라. 발을 땅에 대기만 해도 자기장인가 원적외선인가가 몸으로 들어온다”고 말을 걸었다. 관절염 때문에 전동 휠체어를 타고 산에 올라왔다는 최씨는 자신의 발을 들어 보이며 “난 맨발 걷기 8일 만에 굽었던 발가락이 펴졌고, 어제는 처음으로 진통제와 수면제를 안 먹고 잤어요”라고 했다. 기자도 이날 1시간 남짓 맨발로 걸은 뒤 초저녁부터 잠이 쏟아졌다.

맨발 걷기 열풍이다. 맨발로 걷기만 해도 불면증·우울증, 두통·요통, 고혈압과 당뇨병, 말기암 등 각종 난치병과 만성질환을 고쳤다는 ‘간증’이 이어진다. 전국 지자체마다 맨발 걷기 길 조성에 불이 붙었고, 황토 산지에선 흙 쟁탈전이다. 그간 게르마늄 팔찌부터 오일풀링, 요가·명상, 올레길 걷기, 간헐적 단식 등 각종 건강법 바람이 불었지만 요즘 맨발 걷기의 인기는 강도가 사뭇 다르다.

이날 안산에서 만난 이들에게선 생생한 ‘맨발 신화’가 쏟아졌다. 뇌종양 투병 중인 박모(26)씨는 “방사선과 항암 치료도 받았지만 맨발 걷기 덕에 예후가 좋은 것 같다”며 “오늘도 대형 병원 진료 직전까지 ‘맨발’ 하러 들렀다”고 말했다. 두 살 아들을 데려온 30대 주부는 “아이 아토피 때문에 생후 6개월부터 전국의 좋다는 흙길을 찾아다니며 맨발 걸음마를 시켰다”며 “이후 아토피는 물론이고 감기 한번 안 앓았다”고 했다.


당뇨병 환자 함모(75)씨는 “똑같이 걸어도 맨발로 걸으면 효과가 다르더라”고 했다. 매일 운동화 신고 걸을 땐 공복 혈당 수치가 100을 넘었는데, 똑같이 걸어도 발을 벗었더니 수치가 80대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비만과 고지혈증이었다는 50대 금융사 임원은 “아파트 단지에 맨발 걷기 길이 생겨 매일 퇴근 후 걸었더니 두세 달 새 10kg이 쑥 빠졌다”면서 “간헐적 단식을 병행한 덕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맨발 걷기를 할 때 동물 분변이나 상처에 의한 감염을 막기 위해 파상풍 예방 주사를 맞는 경우도 급증했다.

한편 부작용을 호소하는 이도 늘었다. 한 신장병 환자는 “주말엔 뒷산, 평일엔 학교 운동장을 맨발로 열심히 걸었는데 두 달 만에 수치가 더 나빠졌다”며 “주치의가 ‘피로와 탈수 때문’이라며 당장 그만두라고 했다”고 했다. 어느 학부모는 “아토피 앓는 딸이 맨발 걷기 40일 만에 얼굴에 진물이 흐르며 악화됐다”며 “동호회에선 ‘명현 현상(치유 과정서 오는 이상 반응)’이니 꾹 참고 계속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어쨌든 맨발 건강법은 대세다. 맨발길 조성·관리는 선거로 심판받는 지자체마다 민생 복지의 가늠대가 됐다. 서울 서초·양천·노원·동작·성동구 등은 최근 맨발길 확장 사업을 속속 발표했다. 안산 황톳길도 두 달 전 문을 연 ‘신상’이다. 이날 서대문구청 직원들은 전북 고창, 경기 파주 등에서 공수해온 새 황토를 수레째 싣고 와 덧깔고 물을 뿌려 다졌다. “흙이 찰기 있어야 걷기 효과가 높아진다는 주민 지적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발 씻는 세족장도 두 군데 있지만 최근 입구에 한 곳 더 설치했다. 서울의 한 구청은 이달 초 개장을 목표로 새 황톳길을 만들었는데, 공사 현장을 매의 눈으로 감시하던 맨발인들이 “합성 부직포 위에 흙을 올리면 효과가 없다”고 항의해 이걸 고치느라 개장을 늦췄다고 한다.

확신이 강할수록 영토를 넓히고 싶은 법. 갈등도 생긴다. 문화재청은 지난 3월 전국 모든 조선왕릉에 ‘경내에서 유교 예법에 어긋나는 맨발 보행을 금한다’는 안내문을 붙였다. 왕릉이 조용히 흙길 걷기 좋다는 소문이 나자 맨발 동호회가 단체로 찾아오고 화장실에서 흙발을 씻는다는 민원이 빗발쳐서다. ‘맨발걷기 국민운동본부’ 같은 민간 단체는 “우리 모두 맨발로 태어났는데 왜 천시하냐” “불결한 건 맨발이 아니라 신발”이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미국에서도 1994년 설립된 ‘맨발 걷기 생활 소사이어티’란 단체가 논란을 일으킨 적 있다. 일부 회원들이 “인간의 발을 24시간 해방시켜야 한다”며 학교와 직장, 지하철과 공항, 백화점 등을 맨발로 다니고, 운전도 맨발로 하자고 주장해서다.

왜 맨발 걷기일까. 기본적으로 걷기 자체는 검증된 최고의 운동이다. 별다른 준비물이나 기술이 필요 없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기분도 전환된다. 떠들썩하게 놀고 마시던 등산 문화에 대한 거부감으로 ‘미니멀 산행’인 맨발 걷기가 떴다는 분석도 있다. 맨발의 지압·마사지 효과도 분명 있다. 김범수 인하대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맨발로 걸으면 발과 발가락의 반사·감각 신경이 살아나고 근육이 강화된다”면서도 “전체적 건강에 도움 될 수 있지만 맨발이 필수라곤 할 순 없다”고 말했다.

맨발 옹호가들이 한발 더 나간 게 일명 어싱(Earthing), 즉 접지(接地)에 의한 자연 치유 효과다. ‘지구는 음전하가 풍부한 천연 항산화제다. 인체는 전자파와 활성산소 등 각종 독소로 오염돼있는데, 지구의 자유전자가 맨발을 통해 들어와 몸을 충전시키면 염증이 완화되고 유전자가 치유된다’는 논리다. 오랫동안 기(氣) 연구가들이 주장하던 대체 의학 이론과 비슷하다.


이 ‘접지 만능주의’를 신봉해 맨발 걷기는 물론, 설거지할 때도 ‘물 자기장’을 접하려 고무장갑을 안 낀다는 이들도 생겼다. 맨발 걷기 할 때 지구 자기장을 더 잘 흡수하게 해준다는 ‘접지 밴드’까지 불티나게 팔린다. 전자공학 교수와 의사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학계에서 검증된 적 없는 이론”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말기 전립선암 환자가 맨발 걷기 두 달 만에 완치됐다’ 같은 소문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객관적인 추적 관찰 사례는 없다” “다른 치료법 등 복합적 요인이 있을 것”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인다. 한 의사는 “낫는다는 강력한 믿음을 가지면 실제 몸이 좋아지는 플라시보 효과 아니겠냐”고 했다. ‘맨발로 사는 아프리카 마사이족이나 야생 동물은 성인병을 앓지 않는다’는 맨발 단체 주장에 대해선 “마사이족과 동물들 평균 수명이 얼마죠?”라고 되묻는 의사도 있었다. 참고로 마사이족 수명은 40년 정도다.

족부 전문의인 이영구 순천향대 부천병원 교수는 “요즘 맨발 걷기를 무턱대고 하다 봉와직염·족저근막염·지간신경종 등이 생겨 병원을 찾는 환자가 갑자기 늘었다”며 “당국이 맨발 걷기를 규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특히 당뇨 환자는 발에 감각이 없어 상처가 나도 잘 모르는데, 맨발로 걷다 잡균에 감염돼 발을 절단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교수는 “면역력이 약해진 암 환자, 발바닥이 얇아진 노인도 맨발 걷기가 독이 될 수 있다”며 “마사지를 원하면 집에서 지압판이나 수건으로 발을 꾹꾹 눌러도 된다”고 했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1980년대부터 범행···피해자 1명 이상"
변호인 "모든 혐의 전면 부인"
자동차 부품 업체 ‘매그나’(Magna)의 설립자인 억만장자 프랭크 스트로나크(91) / Wikimedia캐나다 정부로부터 국민훈장(Order of Canada)을 받았던 90대 억만장자가 지난 40여 년간 성폭행을...
콜하버에서 수상비행기와 보트가 충돌하는 모습 / CBC 영상 캡처 밴쿠버 콜하버에서 수상비행기와 보트가 충돌해 2명이 다치는 일이 발생했다.   밴쿠버시경(VPD)에 따르면 지난 8일...
공항에서 수화물을 쉽게 찾기 위해 여행가방(캐리어)에 리본이나 러기지택 등 액세서리를 달아둘 경우 수화물이 늦게 나올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최근 미국 뉴욕포스트는 ‘수화물...
▲송편버섯/ 국립생물자원관국내에 자생하는 송편버섯이 근육세포를 보호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근감소증이 우려되는 중노년이나 근손실에 민감한 헬스인들에게...
[아무튼, 주말]
[김지호 기자의 위스키디아]
훈제 맛은 피트···열대 과일 계열은 버번
견과류 고소함은 셰리··· 얼음은 크고 단단한 걸로
▲가쿠빈 하이볼(왼쪽)과 하쿠슈 하이볼. /김지호 기자손님이 몰트바에서 “하이볼 한 잔 주세요”라고 하면 바텐더는 생각이 많아진다. 처음 보는 손님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는...
6월 27일부터 신청 가능··· 120만 명 혜택
임시 거주자도 조건 충족 시 대상에 포함
곧 더 많은 캐나다 주민들이 캐나다 공립 치과보험(Canadian Dental Care Plan; CDCP)을 이용할 수 있게 될 예정이다. 18세 미만의 자녀를 둔 캐나다 가정과 장애가 있는 성인들은 오는 6월...
사우스 써리의 주택가에서 총격 사망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에 따르면 7일(금) 오전 8시 46분쯤 써리 164 스트리트와 10애비뉴 인근 주택가에서 총격이...
협상 기간 연장··· 금요일 파업 우선 보류
협상 결렬 시 다음주 수요일부터 파업
7일 오후부터 예고됐던 캐나다 국경관리청(CBSA)의 파업이 우선 보류됐다. 그러나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다음 주 수요일부터 파업이 진행될 수 있어, 여름 휴가철 출입국 절차에 차질이...
사건 발생 7년 만에··· 작년 말 1급살인 유죄 판결
2017년 버나비 13세 소녀 살인사건의 피의자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7일 BC주 대법원은 2017년 7월 버나비에서 13세 소녀를 살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브라힘 알리에게 25년...
5월 일자리 수 늘었지만 ‘파트타임’이 대부분
임금인상률은 반등··· 금리 추가 인하 미뤄지나?
캐나다 고용시장의 둔화가 지속되면서, 풀타임 일자리 구하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반면에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나날이 상승하면서, 다음 달 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에 제동이 걸린...
자일리톨은 혈소판 응고를 촉진해 혈전 위험을 높일 수 있어 과다 섭취는 심장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Getty Images Bank몸에 이로운 역할을 한다고 알려진 인공 감미료...
팝키 없이도 신형 차량 훔쳐··· 250만弗 상당
올해 초 BC주 로워 메인랜드 전역에서 차량 수십 대를 훔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BC주 자동차범죄수사팀은 총가치가 250만 달러로 추정되는 고급 차량 29대를 절도한 델타 출신 남성...
6일 오후 3시 18분경 버나비 더글러스 로드 1번 하이웨이 웨스트바운드 모습 / DriveBC 버나비 인근 1번 하이웨이에서 배구공 크기의 바위가 달리던 차량을 강타해, 운전자가 중태에 빠졌다....
일본 국적의 32세 남성 사망
범인 범행 후 달아나··· 행방 묘연
수요일 새벽 차이나타운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남성이 다운타운 유명 일식당에서 근무 중이던 일본인 요리사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밴쿠버시경(VPD)에 따르면 5일 오전 3시 30분쯤...
캐나다·미국행 대상···맥주·와인은 올 연말까지만
에어캐나다(Air Canada)가 캐나다와 미국 내 항공편 탑승객을 대상으로 맥주와 와인, 스낵을 무료로 제공한다. 5일 에어캐나다 항공사 측은 이코노미석 무료 기내식 메뉴 목록에...
밤 11시~오전 7시 사이 1kWh당 5센트 할인
새벽에 전기차 충전, 세탁기 돌리면 최대 150불 절약
  BC 하이드로(BC Hydro)가 심야 시간에는 전기료를 할인하고 피크 시간에는 추가 요금을 받는 새로운 요금제를 발표했다.   5일 BC 하이드로에 따르면 6월부터 시간에 따라...
캐나다 상원, 4일 만장일치로 발의안 채택
“캐나다 한인사회의 문화·다양성 알리기를”
첫 한국계 캐나다 상원의원인 연아 마틴 의원이 주도한 ‘한국 문화유산의 달’(Korean Heritage Month) 발의안이 지난 4일 상원에서 채택됐다. 마틴 의원은 5일 보도자료를 통해 아미나...
4.75%로 0.25%p↓··· G7국가 중 처음
"경제 지표 따라 금리 향방 결정될 듯"
캐나다 중앙은행(Bank of Canada, BOC)이 4년여 만에 첫 기준금리 인하에 나섰다. 중앙은행은 5일 정례 금리정책 회의에서 기준금리인 오버나이트 금리를 기존 5.0%에서 4.75%로 0.25%포인트...
3억6000만원 상당 학비 가로챈 혐의
캐나다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속이고 학생들을 모집해 3억원대 학비를 가로챈 미인가 국제학교 이사장이 경찰에 붙잡혔다.인천 연수경찰서는 사기 혐의로 모 국제학교 이사장 40대...
넷플릭스·스포티파이 등 수익의 5% 기금으로
지역 신문 활성화 위해··· 콘텐츠 다양화 기대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등 해외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OTT)는 앞으로 캐나다 현지 뉴스와 캐나다 제작 콘텐츠를 위한 기금에 일정 수익을 기부해야 한다. 4일 캐나다...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