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의정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열 두 살이 지난 큰아들이 요새 부쩍 짜증을 잘 내곤 한다. 아무래도 사춘기가 찾아온 것 같다. 평소 천성이 착하고 따뜻한 편이라 엄마인 나에게도 곧잘 “사랑해요.”라며 의사 표현을 잘하던 아이가 갑작스레 차갑게 대하거나 기존과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며 적잖이 당황 중이기도 하고, 내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아이와 부딪힘 없이 무난히 이 시기를 지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사춘기가 그렇게 어렵다.
애들 아빠는 그렇게 사춘기가 요란하지 않았다고 어머님이 말씀하시곤 했다. 말수가 좀 줄었던 것 말고는 무탈하게 사춘기를 지나서 부모 입장에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고 하셨다. 솔직히 어머님의 저 말씀을 들을 때 내심 뜨끔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사춘기가 꽤 요란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어려서는 말수도 적고 얌전한 편이었기 때문에 별문제를 일으키는 아이가 아니었는데, 사춘기가 되고 나서는 부모님께 반항을 꽤 했다. 물론 밖에서 친구들한테는 친절하게 굴긴 했는데, 희한하게도 집에만 들어오면 짜증이 솟구치고 부모님과 오빠, 동생에게까지 온갖 짜증을 다 냈더랬다. 돌이켜보면 참 바보 같은 행동이라는 반성이 되곤 하지만, 당시엔 나도 어렸다. 그런 통찰력이 있었더라면 더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우리 아이의 저런 심성은 나를 닮아서 인지 모른다. 애들 아빠가 어려서 부터 지금까지 내내 따뜻한 성품을 지닌 타입이라 아무래도 날카로운 성질 머리는 엄마로부터 받았나 보다. 그런데 또 나와 닮아 그러려니 하지 못하고 순간 욱하는 마음을 참지 못해서 아이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쏘아붙이기도 한다. 덕분에 아이와 관계가 점점 더 나빠지는 것만 같아 속상하다. 최근엔 특히 핸드폰으로 다툼이 잦아져 걱정이다.
아이가 나이가 들면서 부모 품을 떠나기 전 인간관계가 친구 혹은 가족 외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테다. 그래서 인지 요새 핸드폰으로 친구들과 통화를 하고 메시지를 주고받고, 가끔은 게임을 한다고 내내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엄마에겐 이게 달갑지 않다. 나한테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이는 것을 넘어 자꾸만 아이가 늦게 까지 자지 않고 눈 아파라 핸드폰만 보고 소통하는 것이 못 내 마음이 아프고 편치 않다. 당연히 나도 모르게 잔소리가 나오는 것 같다.
그렇게 악화 일로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중이었는데, 하루는 큰 아이가 다시 예전의 그 따스한 말투로 말을 건네더라. 이게 그렇게나 기뻤다.
“엄마, 나 사춘기라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요. 엄마가 나 좀 이해해주면 안 돼요?”
순간 나는 머리를 망치에 두들겨 맞은 듯 멍했다. 그랬다. 아이는 처음 겪는 일이고 나는 오래전이긴 하지만 지나온 과정인데, 미리 알고 있는 어른으로서 아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부끄럽고 마음이 아팠다.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날 아이와 전과 같이, 아니 전보다 더 깊이 있게 어른스러운 대화를 나누었다. 아이도 힘이 드는가 보다. 자신의 마음이 뜻대로 되지 않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갑갑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나의 질풍노도의 시기도 그러했다. 이유도 모르고 힘이 들고 괴롭고 그걸 풀 수 있는 곳은 가장 가까운 이들이었기에 자꾸만 가족에게 모든 화를 다 쏟아냈다. 그때 내가 나를 조금이라도 이해했다면 후회될 말이나 행동 따위는 않았을 텐 데 무지하기만 했다. 다행히 엄마는 선생님이셨고, 이미 비슷한 십 대 들을 많이 접해보셨기 때문에 내가 심한 자극에 괴롭지 않게 많은 배려를 해주셨다. 그에 비해 나는 나보다 더 조용하고 착한 첫째 아이에게 자꾸 상처만 주고 있었다.
“아들, 엄마가 미안해. 내가 이해를 했어야 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어.”
아이에게 사과를 연신 하고, 어떻게 이 시기를 잘 극복할지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사춘기에 겪었던 나의 경험과 감정을 아이와 나누었다. 아이도 노력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조금 다른 취미를 찾아보기로 약속했다. 무언가 몰두하면 나아질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얼마 후 배드민턴 캠프 안내서를 가져와서 등록하고 싶다고 한다. 집에서 게임만 하고, 친구들과 핸드폰만 하는 것 대신 몸을 쓰면서 운동을 하면 나아질 것 같다고 하더라.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캠프에 등록을 했다. 그리고 이제 아이가 배드민턴을 즐기는 모습을 이제는 보게 되었다. 집에서도 백 야드에 있는 벽에 대고 연습을 하고 친구들과 코트를 빌려서 함께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아직 중간 중간 화가 치밀고, 짜증이 올라오는 것 같긴 하지만, 그때마다 아이는 배드민턴 채를 잡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도 아이와 부딪히는 시간이 줄고, 나 스스로도 아이가 쉬면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는 것은 커가며 겪는 과정이라 받아들이려 노력하게 되었다. 아이는 저렇게 어른이 되어 언젠가 내 곁을 떠나려고 그런 준비를 하는 중인가 보다 생각한다. 변화는 아이만이 아니라, 나도 겪어야 하는 것인데, 내가 한발 늦었다. 많이 미안했다. 나는 아마 평생 큰 아이에게는 초보 엄마일 테다. 초보 신생아 엄마, 초보 초등학생 엄마, 초보 청소년 엄마, 초보 청년 엄마.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같이 성장하는 중이다. 그렇게 함께 배우면서 이해하며 답을 찾는 게 지금으로선 가장 최선의 길이지 않을까 싶다. 오늘도 배드민턴의 셔틀 콕이 채에 맞아 날며 통통 튀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와 함께 나도 마음의 짐을 날려버리고 있다. 질풍노도는 그렇게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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