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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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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2-04-11 10:23

허지수/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제10회 한카문학상 산문(동화)부문 으뜸상
나른한 오후, 봄 햇살이 가득한 공원에는 산책을 하는 사람들과 호수위로 활짝 핀 연꽃들로 인해 향기로운 꽃냄새가 여기저기 진동을 했다. 엄마 다람쥐는 콩이에게 200살 나무 할아버지 집에 가서 사람들이 놓고 간 콩과 씨앗들을 챙겨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콩이는 이제 10살이었다. 호기심과 장난이 심해서 늘 엄마에게 꾸중을 듣지만 마음은 착해서 주위에 이웃인 나무 할아버지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며칠 전, 콩이는 씨앗과 콩을 가지고 오다가 그만 어딘 가에 묻어두고 잊어버려 엄마에게 혼이 났었다.
“콩아, 오늘은 절대 호수에 가지 말고 씨앗과 콩을 챙겨와, 알았지?”
“네, 엄마.”
콩이는 엄마에게 얼른 대답하고 나무집에서 나와 200살 할아버지가 사는 집으로 총총 뛰어갔다. 공원에는 한 여자 꼬마가 산책을 하다가 콩이를 발견하고 얼른 다가와 조용히 말을 걸었다.
“귀여운 다람쥐야. 어디가?” 7살짜리 어린 여자 아이는 두 눈을 반짝이며 콩이를 쳐다보고 조용히 말을 건넸다.
“나는 엄마 심부름 가.” 콩이는 동그란 눈으로 여자 아이를 한 번 올려보고 다시 총총 뛰어갔다.
엄마 다람쥐는 항상 콩이에게 사람과 독수리를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엄마가 어렸을 때, 친한 친구와 밖에서 놀다 친구가 그만 잠자리 채로 사람에게 잡혀 가서 사육당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독수리는 나무 위에서 햇빛을 즐기는 다람쥐를 순식간에 낚아 채여 간다고 말했다. 세상 밖은 너무도 무서웠다. 엄마 다람쥐는 호기심 많고 순진한 콩이가 늘 걱정되고 불안했다. 어느새 도착한 콩이가 200살 나무 할아버지를 보고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오냐, 콩이 왔구나, 콩이 오면 주려고 이렇게 챙겨 놓았지.” 할아버지는 거칠고 마른 나무 가지로 씨앗 한줌을 콩이 앞에 내놓았다. 오늘은 씨앗이 많아서 콩이는 너무 신이 났다. 게다가 콩이가 좋아하는 땅콩까지 더했다.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콩이는 입안 깊숙이 씨앗 하나하나를 쑤셔 넣고 땅콩은 엄마가 만들어준 작은 배낭 가방에 가득 넣었다. 이젠 집에 가서 엄마를 기쁘게 해줄 생각하니 콩이는 너무도 행복했다. 그런데 순간 콩이는 집에 가는 길에 잠깐 호수에 들려 예쁜 연꽃들이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콩이는 작년에 처음으로 연꽃들을 보고 너무 감격했다. 하얀 연꽃과 핑크 빛 연꽃들이 연 잎 위에 활짝 펴서 향기로운 냄새와 우아한 자태로 햇살에 눈이 부셨다. 그리고 세 살 터울의 덕형을 만났다. 덕형은 늘 콩이에게 호수 근처로 와서 살라고 했지만 콩이는 절대로 그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엄마에게는 덕형을 만났다고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다람쥐와 오리들은 서로 친하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콩이는 잠깐 호수에 가기로 하고 이름 모르는 나무 아래 흙을 파서 씨앗과 콩이 든 가방을 숨겨 놓았다. 그리고 실수로 다시 찾지 못할 까봐 들꽃 하나를 심고 ‘콩이 거” 라는 글씨도 새겼다. 신나게 호수로 달려 간 콩이는 아름다운 연꽃들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때였다. 오리들이 연꽃 위로 푸다닥 하고 날개를 펼치면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사이로 덕형이 하늘에서 멋진 포즈를 하고 살포시 물 위로 착지했다.
“형, 멋있다. 어떻게 하면 나도 형처럼 물위로 착지할 수 있어?” 콩이는 덕형에게 뛰어갔다.
“콩이 왔구나, 당연히 넌 못하지, 날개가 없어서.” 덕형은 호기심 가득한 콩이 얼굴을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난 왜 날개가 없지?” 콩이는 자신의 손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넌 나무에 사는 다람쥐, 난 호수에 사는 오리….”덕형은 유유자적 호수 물위로 헤엄을 치며 물장구를 쳤다. 마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잘난 존재인 것처럼 뽐내고 있었다.
“나도 날고 싶어, 형처럼…. 하늘을 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줘”
“뭐? 날개가 없는데 어떻게 하늘을 날 수 있어?” 덕형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파란 물 속으로 고개를 파묻고 두 다리는 공중을 향해 쉴 새 없이 좌우로 흔들었다. 곧이어 덕형은 잡은 물고기 한 마리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콩이에게 한가지 팁이 있다면서 생선 가시를 뱉아냈다.
“나무 잎으로 날개를 만들어서 연습을 해봐, 혹시 알아 나처럼 날 수 있을지…”
“진짜, 형! 나도 그렇게 하면 날 수 있어?” 콩이는 눈을 크게 뜨고 팔짝팔짝 뛰었다. 덕형이 말한대로 콩이는 얼른 튼튼하고 큰 나뭇잎 두개를 찾아 다녔다. 그리고 될 수록이면 높은 나무 위에서 착지 연습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생각해 보니 200살 나무 할아버지가 제격일 거 같았다.
“할아버지, 저 나무위로 올라 가도 돼요?”
“콩아, 나무 위는 너무 위험해,” 할아버지는 콩이가 너무 걱정스러웠다. 아주 옛날에 동네 다람쥐 한 마리가 나무 위로 올라가서 독수리에게 잡혀간 기억이 났다.
“괜찮아요 할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콩이는 할아버지에게 함박웃음을 보이며 귀엽게 애교를 보였다.
“그럼, 약속 하나만 하자. 절대 나무 꼭대기 위로는 올라 가지 말거라.”
“네, 알겠어요.” 콩이는 중간 정도의 나무 높이에서 나무 잎을 양손에 꽉 쥐고 크게 한 숨을 내쉬었다. 나무 아래를 보니 조금 겁은 났지만 덕형이 하늘을 나는 모습이 자꾸만 머리 속에 떠올라 용기를 내서 두 발을 앞으로 조금씩 내밀었다. 나도 날 수 있다. 나도 하늘을 날 수 있다. 하고 몇 십 번을 외쳐 보기도 했다. 콩이는 입을 꾹 다물고 두 발을 떼자마자 나뭇잎으로 두 날개 짓 하듯 하늘을 휘저었다. 허공에 붕 떠있는 다리는 십일자로 쭉 피고 두 팔은 훨훨 위아래로 휘저어 가면서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지상 아래로 천천히 하강했다. 그리고는 흙바닥에 닿자 마자 몸이 튕기듯이 나동그라졌다. 콩이는 떨어진 몸이 바닥에 충격을 받아 잠깐 놀라기는 했지만 기분은 날아가듯이 기뻤다.
“야호, 내가 하늘을 날다니. 나도 덕형처럼 하늘을 날았어.”
“콩이야, 괜찮아? 다치지는 않았어?” 200살 할아버지는 콩이가 너무 염려스러웠다.
“아뇨, 전혀 다치지 않았어요.” 너무 마음이 들떠버린 콩이는 조금 욕심이 생겼다. 나무 꼭대기로 올라가 연습을 한 번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잠시 낮잠에 빠진 할아버지를 확인하고 나무 꼭대기 위로 올라갔다. 하늘과 가까워진 나무 꼭대기 위는 말그대로 놀라웠다. 바람은 더욱 시원하게 불었고, 산과 나무들이 제각각 키가 달라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 때, 어디선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회오리 같은 바람을 일으키고 콩이의 몸을 순식간에 잡아 채서 하늘 위로 금세 날아올라갔다.
한참 후, 정신을 차린 콩이는 두 눈을 슬며시 떴다. 냉기가 도는 주위를 둘러보니 너무도 낯설고 무서웠다. 돌산 꼭대기 정상 어딘 가에 있는 것 같았다. 짐승의 사체들과 뼈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었고 빨간 피들로 보이는 액체들이 바닥에 떨어져 얼룩이 졌다. 그리고는 무서운 눈으로 매섭게 노려보며 큰 날개를 펼쳐 보이는 흰 머리 독수리 한 마리가 콩이 앞에서 날카로운 이빨을 하얗게 보이며 살기를 뿜어냈다.
“잠깐만요, 독수리님. 전 제가 여기에 잡혀 온 이유를 알고 있어요. 혹시 죽기 전에 소원 한 번만 들어주시면 안될까요? “콩이는 어떡하면 이 위기를 벗어 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재치 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안되겠는데, 빨리 잡아먹어 야지. 네 소원 같은 거 난 몰라. “흰 머리 독수리는 하얀 이빨을 더 크게 보이며 콩이 바로 앞까지 성큼성큼 걸어왔다.
“사실, 전 무서운 전염병에 걸렸어요. 얼마 살지도 못해요. 건강한 다람쥐 보다 맛은 없을 거예요. 그렇지만 독수리님에게 병이 옮기는 일이 없었으면 해서 하는 말이죠. 하지만 제 몹쓸 병을 없애 줄 나무 잎을 알고 있어요. 그것만 먹으면 독수리 님이 안전해질 수 있으니까요….”
“그 나무 잎이 어디에 있는데?”
“아까 그 나무 위에 있어요. 그래서 나무 위로 올라간 거예요.”
“좋아, 그럼 그곳에 함께 가줄 테니 내게 어떤 나무 잎인지 알려줘. 넌 내게서 절대 떨어질 수 없어. 만약에 거짓말이면 널 통 채로 잡아먹을 거야.” 하며 치켜 올라간 눈을 부릅뜬 흰머리 독수리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콩이의 목을 잡고 위협을 가했다. 콩이는 너무 무서워서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네, 알겠습니다.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을 거예요.” 콩이는 눈물이 났다. 씨앗을 꼭 가져오라는 엄마 얼굴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200살 나무 할아버지가 절대로 나무 위로 올라가면 안된다고 했던 말도 떠올라 순간 너무 많은 후회가 밀려왔다. 콩이는 흰머리 독수리 등위에 올라타고 다시 200살 나무 할아버지 에게 날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잡혀 올 때는 기절을 해서 몰랐는데 흰머리 독수리가 호수 근처로 몇 번을 선회하며 지나치고 있었다. 콩이는 나무 아래로 떨어진 연습을 생각하며 용기를 내 파란 호수 아래 연꽃들을 보며 재빨리 몸을 날아 아래로 떨어졌다. 만약 콩이는 이대로 죽는다면 엄마 얼굴도 보지 못하고 떠난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물위로 막 떨어질 찰나였다. 호수 물위에 신나게 놀고 있던 덕형이 있는 힘껏 콩이의 몸을 두 날개로 활짝 펴서 안전하게 받았다. 너무 놀란 콩이는 덕형을 보자마자 눈물을 왈칵 터트렸다.
“형, 난 이제 하늘을 날지 못해도 괜찮아, 이대로 엄마하고 씨앗과 콩 먹으면서 살거야.” 콩이는 덕형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초지종 설명을 했다. 그리고 곧장 씨앗과 콩을 숨겨둔 장소로 갔다. 다행히 콩과 씨앗은 그대로 있었다. 콩이는 입안에 가득 다시 씨앗도 쑤셔 넣고 땅콩이 있는 가방도 어깨에 맸다. 너무도 이 순간이 소중해진 콩이는 다시는 엄마 말을 안 듣고 엉뚱한 행동을 하지 않기로 스스로 굳게 다짐했다. 오늘따라 날개가 없는 두 손이 콩이는 너무도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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