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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할 그 때가 강한 때이다

권순욱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06-05 10:04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실존주의 철학용어 가운데 한계상황 이란 것이 있다. 이는 삶의 정황이 너무나 힘든 상태로, 마치 죽음 앞에서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극한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와 같은 상황 앞에서 인간은 대체적으로 도피하려 하거나 현실에 눈을 감아버림으로써 자기 존재가 상실되는 길로 빠져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와 같은 상황 가운데서도 진지하게 그 과정을 성찰하노라면 하나뿐이며, 한 번 뿐인 자기 존재의 자각에 이르게 되기도 한다.
 
삶을 돌아보면 나에게도 한 때 정신과 육체가 마치 소금물에 저린 배춧잎처럼 너무도 지치고 피곤하여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생의 가장 깊은 바닥을 헤매던 때가 있었다. 참으로 숨이 막히고, 앞이 안 보여서 하루하루 견디어 가기에 벅차던 날들이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동안 품어 본 때였다.
고등학교 졸업반시절이었다. 내가 그렇게도 의지하던 아버님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한 나는 체육시간에 기계체조를 하는 중에 실수를 하여 오른쪽 옆구리에 큰 부상을 입고 늑막염이 심화되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대학 진학을 앞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밤잠조차 제대로 이룰 수 없는 어려운 와중에 시력까지 악화   되어 그야 말로 내 인생의 어려운 길을 들어서게 되었다.
한쪽 눈의 시력이 거의 회복 할 수 없는 절망에 처해 있던 그 무렵 지체의 다른 한 쪽에서는 참출성 늑막염과 결핵으로 몸이 점점 망가져 가고 있었다. 더 이상 집에서 버티기가 어려워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병원으로 떠나면서 나의 남은 삶을 담보로 하나님께 도전장을 던진  때가 바로 그 시기였다.
 
입원하여 거의 6개월이 되어가던 어느 날 외롭게 뜬눈으로 밤을 지세는 중 새벽녘에
 ”이젠 내 인생도 거의 끝을 보게 되는구나.” 하고 아픈 눈을 감고 병원 천정을 바라보는 바로 그 때 어둠을 가르며 내 동공 속으로 떠오르는 빛 하나가 보였다.
“네가 약할 그 때가 곧 강함이니라.”는 음성과 함께 ...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한 참 후에야 그것은 내가 어려서 주일학교 시절에 배운 성경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고백임을 알게 되었다. 순간 나는 떠나올 때 내 인생을 걸고 따져 보겠다던 도전장을 힘없이 내려놓고 말았다.
나는 일기장의 한 여백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분의 손이 짧아 바꾸실 수 없는 상황이 있을까?”
“하나님은 평소에는 속삭이지만, 고통 중에는 소리쳐 주신다.” 는 C. S. 루이스의 고통의 순간에 대한 글이 생각났다.
인간은 오히려 신체적인 힘이 약한 존재요, 본능이 미약하게 발달한 존재요, 의존성이 큰 존재이다. 이러한 인간이 강해질 수 있음은 천부적인 강함이 아니라, 자신의 약함을 자각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역설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을 강하다고 고집하는 사람이 강한 자가 아니라 자신을 약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이 강해질 수 있는 그 역설 말이다.
세계 최대 전자회사인 일본의 마쓰시타 그룹의 회장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말한 성공 비결이 생각났다.
"하나님은 내게 세 가지 은혜를 주셨다. 가난했기에 어릴 때부터 구두닦이, 신문팔이 등 많은 세상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몸이 약했기에 항상 운동에 힘써 늙어서도 건강할 수 있었으며,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기에 세상 사람들을 모두 나의 스승으로 여기고 언제나 배우는 일에 게으르지 않을 수 있었다."
마쓰시타의 강함은 그의 약함을 자각하는 순간에서 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인간은 자신이 약하다고 느껴질 때 자기보다 더 강한 절대자를 찾아 그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절대자를 향하여 자신을 맡길 때 평소에는 보지 못하던 크고 비밀한 것을 보게 되며 그것으로 인해 새 힘을 얻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우리는 자신이 스스로의 강함을 믿고 그것을 의지할 때는 결코 다른 힘의 원천을 바라볼 수가 없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사람만이 그 앙망하는 법을 터득하게 되어있다.
우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서 때로는 지치고 연약해질 때가 있다. 그렇다면, 그 때가 바로 우리 삶이 가장 강하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일 때인 것이다. 또한 그 때가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갈망하는 자리임을 기억할 때이다.
세상적인 시각에서 보면 인간의 한계상황은 어쩔 수없는 숙명적인 사실로 받아드려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상황 가운데서도 진지하게 그 과정을 성찰하노라면 하나 뿐이며, 한 번 뿐인 자기 존재의 자각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약함과 강함의 함수관계”를 마침내 알아 가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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