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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의 대반전... '同性愛·동거 인정' 물꼬 터

파리=이성훈 특파원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10-14 11:11

세계주교회의에서 '禁忌' 깨는 중간 보고서 발표
가톨릭이 현실을 반영해 그 동안 금기시해 온 동성애(同性愛)와 비혼(非婚) 동거 등을 인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가톨릭계의 이번 결정은 교리(敎理)뿐 아니라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법체계에까지 적잖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가정 문제를 다루기 위해 지난 5일 바티칸에서 소집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는 13일 동성애와 동거, 이혼을 포용하고 인정하자는 취지의 중간 보고서를 발표했다. 12페이지 분량의 이 보고서는 “동성애자들도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헌신할 수 있는 재능과 자질을 가지고 있다”며 “이들은 자신을 환영하는 교회를 만나길 원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죄악시해 온 동성애를 종교적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동성 결혼을 금지한 기존 입장은 유지했다. 보고서는 또 “너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가톨릭의 이혼 과정에 대한 불만이 많다”며 이혼 절차를 간소화할 것임을 시사했다. 가톨릭 신자가 이혼을 하려면 결혼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증명해 교회법원(사제를 재판장으로 해 교구별로 설치된 종교기구)으로부터 결혼 무효 판결을 받아야 한다. 이 과정을 생략한 채 이혼하거나 재혼을 하면 죄를 지은 것으로 간주된다. 보고서는 또“안정적인 수입과 일자리 때문에 결혼을 미루거나 비용 문제로 종교의식을 생략한 채 결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동거의 긍정적 측면을 인정했다.

가톨릭계는 동성애·이혼·동거 등을 금기시하는 교리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현재 프랑스는 이혼율이 40%에 이르고, 일반 가정의 50%는 동거나 계약 결혼 등 전통적인 결혼 방식을 거치지 않는다. 이런 현실과 교리간 괴리는 유럽에서 가톨릭의 쇠퇴를 불러온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프랑스에서 가톨릭 신자는 전체 국민의 80% 안팎으로 추산되지만, 매주 미사에 참석하는 비율은 그중 20%가 안 된다. 유럽에서 가톨릭 신자 수도 감소 추세에 있다. 바티칸 라디오는 “가톨릭은 지난 2000년 동안 동성애를 본질적인 장애로 여겨왔다”며 “이번 보고서는 가톨릭계의 충격적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기독교 문화권인 미국·유럽에선 보수주의자들이 남녀 간의 결합만 인정한다는 성경 해석을 동성애 반대의 주요 논거로 활용해 왔다. 하지만 신(神)의 뜻을 해석하는 권위를 가진 교황 등 교회 수뇌부가 동성애를 인정한다면 이런 종교적·도덕적 근거가 흔들릴 수밖에 없고, 이에 기반한 법적·사회적 변화도 급물살을 타게 될 수 있다. 그러나 바티칸이 동성 결혼 금지에 대한 입장을 유지했다는 것은 최근 미국 등 각국에서 일고 있는 동성 결혼 합법화 주장에 제동을 건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런 가톨릭계의 입장 변화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등장과 관련이 깊다. 그는 지난해 9월 동성애와 관련해 “만약 어떤 사람이 동성애자이고 그가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면, 누가 그를 판단할 수 있겠느냐”고 말해 변화를 예고했다.

BBC는“이번 회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승리”라고 평했다. 이번 보고서가 곧장 가톨릭 교리의 변경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주교회의는 오는 19일까지 추가 토론을 거쳐 최종 보고서를 내놓을 예정이다.

또 이를 바탕으로 교구별로 심도 있는 토론을 벌이고, 내년 10월 예정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총회에서 이 문제를 또다시 다룬다. 그 후 교리변경 여부는 교황이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된다. AP통신은“보수주의자들은 이번 보고서가 가톨릭계에‘대혼돈’을 가져올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파리=이성훈 특파원

→세계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
가톨릭이 당면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교황이 세계 주교 대표자들을 소집해 여는 회의이다. 그 자체로 의사 결정 기구는 아니지만, 통상 교황은 주교 시노드에서 논의된 결과물로 '지침서'를 만들어 교회의 규범으로 삼는다. 3~4년마다 열리는 정기 총회와 필요에 따라 소집되는 임시 총회로 나누어진다. 이번에 열린 시노드는 가정 문제를 다루기 위해 교황이 소집한 임시 총회이다.


<▲ 가정 문제 논의하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 13일 참석해 주교들과 함께 가정 문제에 대해 논의하다 고민에 잠겨 있다. 그의 뒤에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 그림이 걸려 있다. 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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