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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의 후손들 – 오락이냐 도박이냐

김인종 vine777@g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3-09-19 17:38

골프장.  교회 장로님과 집사님.  장로님이 한 홀을 먹고  돈을 챙기려는 순간,  집사님이 나서며 “숲에서 볼을 빼내어 친 것은  1타를 더 먹는 것이므로 파가 아니고 보기” 라는  ‘법대로’ 시비를 걸었다.  결국 이 교회팀 라운딩의 성령충만은 온데간데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이들 골퍼들은 이같은  내기골프가 ‘도박’이  아닌  ‘오락’이라고 주장한다.  죄의식을 가리려는 위안이다.

이번주 화요일 오전 7시반.  LA경찰국 동양인수사과와 풍기단속반 경찰들 백여명은 코리아타운 한인가정집  7곳을 덮쳤다.  웨스턴, 아드모어, 켄모어, 아이롤로 스트릿… 모두 낯익은 코리아타운 거리들이다.  비밀리에 운영돼 오던 이들 사설도박장에서 경찰은  슬롯머신 35대와 판돈 3만6천여달러를 압수했다.  슬롯머신은 텍사스, 애리조나주등에서 구입해 왔다고 한다.

이들 불법 도박장들은 ‘사랑방’이라 불리운다. 고스톱 화투게임,  실제 지폐를 이용한 슬롯머신들을 운영하면서 24시간 성업을 이루고 있다.  한인노인들을 위해서는  밴차량을 이용해 노인들을 실어날랐다. 웰페어를 타는 날이면 이들 한인노인들이 곗날처럼  사랑방으로 몰려들었다.  이날 체포된 한인들의 한결같은 외침은 “무슨 도박? 재미로 하는건데”.  고스톱을 점당 50센트에 쳤는데 무슨 도박이냐고 단속경찰에게 소리친다.  도박에 빠지는 사람들의 첫 증상은 자기가 하는 짓이  심심풀이 해소를 위한 오락이라고 굳게 믿는다는 것이다.     

이날 동양인수사과의 발표에 따르면 LA코리아타운에만 30여곳 이상의 불법 사설도박장 - 사랑방이 성업하고 있다고 한다.  사랑방을 찾는 사람들은 ‘곗꾼’이라 불리우며,  도박판에 자금을 대주는 ‘꽁지’들이 조직적으로 영업을 한다. 이들 꽁지들에게 웰페어를 타는 노인들은 봉이다.

이들의 소셜 시큐리티 , 생계보조비 수표들을 담보로 해서 칩을 제공하며 고스톱과 포커판을 벌인다.  소셜연금 수표, 보조금을 탕진한 노인들도 많다.  밤을 새우며 하루종일 ‘일’하시는 곗꾼들을 위해 가사 도우미들이 식사를 제공한다. 

계모임처럼 이들 곗꾼들은 서로  아는 사이이거나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이 모아진, 당사자들에게는 ‘오락모임’이다.  특히  할 일이 없어진  은퇴자나 노부부들이 시간이 많아지면서 ‘단순히 여가’를 보내는 정도로  사랑방을 드나들기 시작한다.  “도박은 단순한 게임이 아닙니다. 돈을 잃으면 빌리는 악순환이 시작되고 결국 사채업자에게 꾀이게 됩니다.” 경찰의 말이다.

사랑방 별로 출입하는 계층, 연령층도 다르다.  대부분 사랑방들이 깨끗하고 분위기가 좋다.  사랑방의 ‘물’에 따라서 장년층이 포커판을 벌이는 곳,  아줌마들의 고스톱 방들이 있다.

미국에서 도박이나 성매매는 중범으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티켓을 발부받고 법정에 출두해 초범인 경우 벌금형으로 끝난다.  도박장운영에 대해서는  매니저만 책임을 지면 된다.  단속후에 다른 매니저를 또 고용하면 된다.  성매매와 도박이 코리아타운에서 뿌리 뽑히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박이나 성매매는 다른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범죄가 아니기 때문에,  바이스(vice), 즉 풍기문란, 도덕적 범죄로 간주해 처벌이 중하지 않은 것이다. 경찰들도 그리 심각한 범죄로 취급하지 않는다.

“도박하려는 사람들은 라스베가스 카지노 버스타고 가는 거고,  우리는 오갈데 없고 시간이 많아 이렇게 모여 소박하게 노는데  웬 도박이라는 거냐?”   중독증 카운슬러는 도박의 경우 푼돈 도박은 도박이 아닌 오락이라고 여기며,  자신이 중독돼 들어가는 과정을 계속 부정한다고 한다.  자신의 존재가 인정되지 않는 상황,  자녀가 떠난 고립된 생활,  우울증, 그리고 소일거리를 찾지 못하는 한인들에게  ‘몰두할 곳’(도박이 아닌)을 제시해 주어야  도박경향을 예방할 수 있단다.   

또다른  골프장.   매달 수요일,  30년지기 고등학교 동창들이 모여서 치는 골프 라운딩. 홀마다 모여서서  몇달러씩 주고받는다.  1달러 내기 골프.  라운딩 후에 그날 판돈으로 저녁을 먹는 것이 예의(?)처럼 돼 있지만 이날도 돈을 많이 딴 승자가 ‘바쁜 일’ 때문에 사라졌다.  도망친 승자에게 전화를 걸어  승갱이를 벌이지만 “언제 그런 약속이 있었냐”고 그쪽에서 호통이다.  결국 이 모임은 ‘양심파’와 ‘치사한 팀’으로 나뉘어 갈라졌다.  

하루라도 마약을 끊을 수 없는 심한 마약중독자가 라스베가스의 블랙잭에 빠지면서 며칠간을 마약없이 블랙잭 게임을 했다. 마약 금단증세도 없었다. 도박중독이 마약중독보다 한 수 위라는 사례이다.  ‘타짜’까지 가지 않은 애매한 상황에서 ,  오락이냐 도박이냐를 가르는 기준은 그 놀이를 통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부정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하면 도박의 첫 증세라고 보면 된다고 한다.   한인사회 ‘타짜의 전통’은 우리가 모르는 일상생활의 곳곳에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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