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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의 대통령과 권투선수

김인종 vine777@g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2-05-17 16:27

로스엔젤레스에 오면 꼭  들러보아야 하는 명소가 있다.   코리아타운 북서쪽  페어팩스 지역에 있는 그로브 쇼핑몰이다. 

헐리우드와 베벌리힐이  이웃해 있고  유명  상점,  레스터랑들이  모여 있는 아름다운  쇼핑 파크이다.    운치있는 트롤전차도 종을 울리며 운행된다.   

유명 헐리우드 스타들의 활동을 전하는  TV 프로 ‘엑스트라’ 쇼가 이곳 야외에서  녹화된다.   세계적인  권투챔피언  매니  파퀴아오가  지난 수요일 이곳에서 인터뷰 녹화가  예정됐었다. 

그러나 그로브 쇼핑멀 측은 이 인터뷰 녹화를 금지시켰다.  매니 파퀴아오가 동성결혼에 대해 한 말 때문이다.  잘 아시겠지만 매니 파퀴아오는 필리핀 출신 권투선수로서  무려 8개 체급의 챔피언을 석권한  현대 권투계의  살아있는 신화이다. 

1998년 플라이급 챔피언, 2001년 슈퍼 밴텀급 챔피언,  그이후로  라이트급 챔피언,  라이트 웰터급,  웰터급  챔피언들을  KO 시키며 복싱사상 전무후무한  8개급 챔피언 보유자가 됐다.  2008년에는 미국의 권투영웅 오스카 델라요야를  이겼고,  2011년에는 푸에르 토리코의 권투영웅 미겔 코토를  뉘었다.  

필리핀에서  2년전에 하원의원에 당선됐고,  헐리우드를 오가며 영화와 음반제작 사업을 벌이고 있다.  스포츠계와 헐리우드의 명물이다.  그런 파퀴아오가  지난 16일  그로브 쇼핑멀에서의  ‘엑스트라 ‘ TV 프로그램 녹화를 취소당하고,  본인의 집에서 이 쇼를 녹화하면서 게이 커뮤니티에 사과했다.

소동의 발단은 오바마 미국대통령이다

오바마대통령은  5월14일 월요일  전용비행기를 타고 로스엔젤레스로 날라왔다.    유명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가 주선한  모금파티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정치일에 나서기 좋아하는  클루니가  그의 스튜디오 시티  자택에 마련한  모금디너 좌석값은  1인당  4만달러이다.  

잘나가는 헐리웃 스타들이 다 모여들었고  목표액  1,500만달러가 모였다.  오바마대통령이 이 거금을 받기에  앞서 헐리우드를 기쁘게 할  건수를 준비해야 했다.  그래서   나온 오바마의 느닷없는 선언이  “나는 동성결혼을 지지한다.” 이다.   정가가 발칵 뒤집히면서 어리둥절한 국민들도 많았다 -  왜 느닷없이?    오바마는 4년전  2008년 선거에 나올 때는 이  이슈에 대해 거리를 두면서 “동성결혼 문제는 진보중(evolving)인 사안이다”라고 조심스럽게 언급했을 뿐이다. 

그러나 지난주 오바마는 백악관에서 가진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나는 동성 커플이 결혼을 할 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확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고 분명한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오바마의 동성결혼 지지 선언은 1500만달러 모금파티 접대용,  그리고 추후 쏟아질 게이 커뮤니티의  후원금을 겨냥했다는 추측들도 있다.  정치평론가들은 경제회복이 최우선 이슈인  요즈음에  이같은 선언은  미국의 여론분열을 야기할 뿐이라고  평한다. 

게이 커뮤니티는 오바마를 구세주 보듯하며 감사를 연발했고(물론 물질적인 후원도 오바마 사이트로 쇄도했다),  복음주의 기독교계에서는 오바마가 본색을 드러냈다며 분개했다.   이때 우리의 권투영웅 매니 파퀴아오가  한마디 하고 나선 것이다.                                                                                                                            

파퀴아오는 필리핀의  보수성 잡지인 이그재미너와의 인터뷰에서,  오바마대통령의  동성결혼 찬성에 대해   “ 나는 동성결혼에  동의하지 않으며 동성결혼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 발언에 기자가  몇줄을 첨가한 것이다.  이 기자는 파퀴아오가  구약성경의 레위기를 인용해 “남자가 남자끼리, 여자가 여자끼리  성행위를 하는 것은 혐오스럽다.  그들은 죽음에 처해져야 한다”  고 말한 것으로 적은 것이다. 

이 인터뷰가 보도되자 게이 커뮤니티의  항의와 분노가 파퀴아오 쪽으로 쏟아졌고,  파퀴아오 후원기업인  주류업체 헤네시,  컴퓨터회사 휴렛패커드등에도 불똥이 떨어졌다. 

후원기업들은 서둘러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면서 파퀴아오에게 압력을 가했다.  이 와중에서 이그재미너 기자의 레위기 구절 첨가가 밝혀졌고,  이 기자는 이번주  이 사실을 인정했다.  파퀴아오도 사과와 함께 입장을 밝혔다. “나는 동성결혼에 대해 반대한다.  나에게도 게이 친구가 있고 친척이 있다.   동성연애나 동성결혼을 비난하는 말은 결코 하지 않았다.”  그는  승부사 답게 똑바로 말했다.  “나는 신의 말씀을 나의 입과 마음에 가지고 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동성결혼은  신의 말씀과 법에 어긋나는 것이다.”   파퀴아도는 지난해 콘돔사용과 낙태허용의 입법화를 반대하는 운동을 하기도 했다. 

전성시절  LA커머스 카지노에서의 도박,  밤샘 파티 등으로 생활이 문란해졌다.   부인  진키로부터 이혼 소송을 당하자  그는 정신을 차리고  부인의 말대로 밤마다 성경공부를 하며 독실한 크리스찬으로 되돌아 갔다.                                  

세월이 가면서 대세는 동성결혼의 승리로 기울고 있다.  여론 조사기구 갤럽이  미국전역을 대상으로 한 지난주 조사에서  동성결혼 찬성이 50%, 반대가 48%이다.  십여년전만해도 40(2002년 38%)대 60으로 반대가 압도적이었지만 이제는 역전됐다.  보수 기독교인이 많은 내륙 주에서는 아직도 동성결혼 합법화가  이루어지지 않지만,  기독교층이 엷은 주에서는 동성결혼이 속속 합법화되고 있다. 

그리고  젊은 층들은 동성결혼에 대해  더이상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곳 남가주 한인 기독교단체들이 최근까지 동성애 교육법안 의무화를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배는 이미 물이 차서 기울어 졌다.   오바마대통령의 동성결혼 찬성 선언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흑인층의 표와  중간성향 유권자들의 표심이 떨어져 나간다는 보고도 있다.   남가주 한인 라디오방송의 여론청취에 따르면   한인들은 대부분 오바마에 실망을 표시하고 있다.  권투선수 파퀴아도에게서 약간의 위안을 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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