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한국에 20억 최신 암 치료기 보내면서 정작 자신은...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doctor@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1-04-11 10:10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서른 살 때 한국 와서 구강암수술‘코만도’등 36년간 외과수술 전파
은퇴후 미국 돌아간 뒤 20억 최신 암치료기 예수 병원에 보내주고
자신은 응급실당직으로 근근이 생계 꾸려

병원에서 하는 암(癌)수술 중에 '코만도(COMMANDO)'라는 것이 있다. 입 안에 생긴 구강암을 치료하는 방법이다. 암 덩어리가 퍼진 턱뼈는 물론, 암세포가 전이된 목 주변의 림프절까지 몽땅 잘라내고 긁어내는 대(大)수술이다. 하필이면 수술 이름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위세를 떨쳤던 영국 특수부대 '코만도'와 같아 무시무시하게 들리는데, 두경부(頭頸部·머리와 목) 영역에서 가장 난도가 높은 외과 수술이다. 지금은 암 조기진단이 많아져서 이 수술을 받는 환자는 드물지만, 병세가 진행된 구강암 환자는 '코만도'를 받아야 생명을 건질 수 있다.

이 수술이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것은 1960년대였다. 설대위(薛大偉)라는 외과의사가 최초로 선보였다. 그는 한국인이 아니다. 1954년부터 1990년까지 36년간 전주 예수병원에서 의료선교사로 활약한 미국인 의사 데이비드 존 실(David John Seel)의 한국 이름이 설대위다.

다음은 그의 제자가 회상한 당시 수술실 장면이다. 1967년, 아침부터 푹푹 찌는 무더운 여름. 혀에 암이 생겨 주변으로 퍼진 65세 남자 환자가 '코만도 수술대'에 누웠다. 설대위는 혈관과 신경, 근육을 일일이 확인하며 암 덩어리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요즘처럼 절개와 지혈(止血)이 동시에 이뤄지는 '전기 메스'가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 CT나 MRI가 있어서 암이 어디까지 파고들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수술은 눈과 손에 의지하며 더디게 진행됐다. 그럼에도 설대위는 뛰어난 절개 기술을 발휘해 수술 부위가 마치 해부학 교과서에 나오는 그림 같았다고 한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그는 점심을 빵으로 때웠고, 허기진 저녁에는 날계란을 섞은 우유를 마시며 수술에 임했다. 한시도 수술실을 떠나지 않았고 메스를 놓지 않았다. 수술실에 달랑 하나 붙은 에어컨으로는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겹겹이 입은 수술복 안의 열기를 식힐 수 없었다. 급기야 간호사들은 얼음 주머니를 그의 수술복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마에 줄줄이 흐르는 땀이 시야를 가리자 주변에서 연방 그의 땀방울을 닦아냈다. 그렇게 16시간40분이 지난 다음 날 새벽 3시경, '코만도'는 끝났다. 잠시 눈을 붙인 설대위는 아침 5시 반에 다시 병원으로 나와 수술 환자의 상태를 제일 먼저 돌봤다고 한다.

설대위는 당시 의술 수준으로는 도저히 살릴 수 없는 환자들을 극적으로 회생시키는 드라마를 연출했다. 이런 신기(神技)와 헌신 탓에 전국에서 환자가 구름처럼 몰려왔다. 병원 복도와 계단까지 줄을 섰으며, 병원 주변 여관에 수술 대기 환자가 넘쳐났다. 그는 연일 계속되는 수술로 과로한 탓에 폐결핵에 걸리기도 했다.

설대위는 외과 수술로 명성을 날리던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의 튜레인 의과대학을 수석졸업하고, 외과 의사의 길로 들어섰다. 미래가 촉망받는 젊은 의사였지만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 땅을 찾아와 외과 수술의 진수를 선보였다. 우리나라 최초로 종양 진찰실을 개설했고, 국내에서 처음으로 암 등록 사업을 펼쳤다. 대한두경부학회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을 역임했으며, 최신 방사선 암 치료법도 소개했다.

그는 정년퇴임을 하고 미국으로 돌아가서는 집에 '설대위'라는 문패를 달고 '한국인'으로 살았다. 20억원 상당의 최신형 암 치료기를 예수병원에 보내주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쌓아 놓은 재산이 없어 노년에 응급실 당직 의사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말년에 치매를 앓았는데, 미국 병원 중환자실에서 한국말로 뭔가를 계속 말해 미국 의료진을 당황하게 했다고 한다. 그러다 지난 2004년 7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물론 그의 한국행(行)은 선교가 목적이었다. 설대위와 같은 수많은 의료선교사가 이 땅에 있었기에 '울지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가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또한 실력과 품성을 갖춘 외과 의사의 전형이었다. 그에게 수술을 배운 제자들은 그가 외과 의사가 본받아야 할 최고·최선의 모델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요즘 젊은 의사들은 외과를 외면한다. 외과 의사의 삶이 힘들고 어려우면서, 상대적으로 보상은 적다는 이유다. 1970년대 초 미국에 유학 가서 그곳에서 의사 생활을 하려는 한국의 젊은 의사들에게 설대위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럼, 한국 환자는 누가 돌보는 것인가요?" 40년이 지난 지금, 첨단 의료를 자랑하는 한국에서 그의 반문(反問)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제 한국의 외과 수술은 누가 할 것인가.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침몰 참사에 교감自殺까지… 소화 안되고 일손 안 잡혀
전 국민이 집단적 패닉(panic·감당하기 어려운 정신적인 공황) 상태에 빠졌다. 많은 이들이 뉴스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고, 여객선 침몰 뉴스를 차마 못 보겠다는 이들도 있다. 이유 없이 소화가 안 되고,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망자가 추가로 확인될...
"기침은 이제 팔꿈치 안쪽으로 막으세요!"통상 재채기나 기침이 나오면 많은 이가 손바닥으로 입을 막거나 주먹으로 가린다. 침방울이 주변으로 멀리 튀지 않기 위한 나름의 조치다. 하지만 이 방법이 손을 통해 폐렴 관련 세균과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주요...
자와드 재건 성형 전문가 방한, 올해 오스카 다큐 수상작 주인공
"여성의 얼굴에 염산 테러를 하는 것은 무자비하고 끔찍한 범죄죠. 여성의 피부뿐만 아니라 영혼의 상처까지 치료해줘야 합니다."염산 테러를 당한 여성을 집중적으로 재건 성형해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파키스탄 출신 영국 성형외과 의사 모하메드...
작년 숨진 25만7396명 중 7만1579명이 암으로 사망… 전년보다 0.8%p 줄어
암(癌)은 지난 1983년부터 30년간 줄곧 한국인의 사망원인 1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매년 올라가던 우리나라 전체 국민의 암(癌) 사망률(전체 사망자 중 암으로 죽은 사람의 비율)이 사실상 처음으로 꺾였다. 하지만 암 발생률(인구 10만명당 암 발생자 수)은 여전히...
한국인의 암 발생 패턴이 몇 년 사이에 크게 변하고 있다. 부동의 1위였던 위암이 1위를 내준 데다 환자 수로는 처음으로 감소 추세를 보였다. 지난해 환자 수가 4만4593명으로 전년보다 1.7% 줄어든 것이다. 10대 암 중 진료 환자가 준 것은 위암이 유일하다....
국내 첫 감염자가 발생한 지 27년 만에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 등록제'가 전면 폐지된다. 이제 에이즈는 당뇨병처럼 현대의학으로 통제 가능한 만성병이므로 에이즈 감염인을 특수관리 대상으로 묶어 불필요한 낙인과 차별을 받게 하거나, 등록...
중동의 두바이에서 간경화 말기 상태로 목숨이 위태로웠던 모하메드 알 마리(58)씨가 한국으로 날아와 극적으로 소생하기까지의 과정은 '007작전'을 방불케 했다. 그는 지난해 3월 간경화 판정을 받았고 올해 1월에는 복수가 차오르고 정신도 혼미해지는 간성(肝性)...
미리 보관한 난자로 첫 출산 - 차병원, 9년전 난자 해동 성공… 냉동 난자 재사용 최장 기록
지난 2001년, 당시 22살이던 미혼 여성 안씨(현재 나이 33세)의 미래는 불투명했다. 어느 날 찾아온 만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부터가 불확실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앞선 그에게 결혼은 할 수 있을지, 아이를 낳을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은...
인간 장기(臟器)와 생물학적인 기능이 유사한 돼지의 장기나 세포를 사람에게 이식해 질병을 완치하려는 시도는 현대 의학의 숙원이다. 사람 간 장기 기증과 이식에는 수적(數的) 제한이...
무섭게 자라는 한국 대장암 - 고기 즐기는 美·英보다 많아, 지금 추세면 20년 후엔 2배생활 자체가 '대장암 쓰나미' - 음주·흡연·업무 스트레스에 고기 회식 많은데 운동 안해위 내시경은...
해부로 못 찾아낸 증거 발견, 스위스·호주 등도 많이 사용부검 꺼리는 경우에 효과적… 한국 국과수 내년 도입 계획이달 중순, 유명 백화점이 밀집한 일본 도쿄 긴자(銀座) 거리. 쇼핑객이...
훈련병 3명 뇌수막염 감염… "전원에 예방약 투여해야" 병원 진단 무시 사태 키워 지난 4월 하순 논산훈련소에서 군의료진의 오진(誤診)과 늑장 대응으로 노모(19) 훈련병이 사망했을 때 이 훈련소에는 노군을 포함해 뇌수막염 환자가 3명 발생하는 등 전염병 사태가...
국내 의학계 반응"휴대전화 귀에 바싹 대는건 전자레인지에 뇌 데우는 꼴"… 일부 의학자들 견해도 있어휴대전화를 오래 사용하면 두통이나 귀에 통증을 느낀다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뇌와 귀 안쪽 내이(內耳)의 온도를 높여서...
나트륨 섭취량 세계 최고수준… WHO 권장량의 3배가장 큰 이유는? 직장인들 두끼 이상 외식, 식당은 맛 살리려 소금 과용과다 섭취 왜 나쁜가? 고혈압·심장병 유발하고 뇌졸중·위암 위험...
삼성서울병원 박원순·장윤실 교수팀 개가 태어날 때 체중이 380g이었던 초극소(超極小) 미숙아가 살아나 생후 9개월 만에 퇴원하게 됐다. 국내에서 가장 작은 체중의 신생아가 생존한 사례다. 정상 신생아 평균 체중은 3.2㎏ 정도다.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과도한 업무량·스트레스…지나친 자신감·방심도 한몫의사가 시키는대로 하되 따라하면 안된다는 속설 입증서울대 의대 A모(41) 교수는 지난해 직장암 수술을 받았다. 건강 검진에서...
▲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서른 살 때 한국 와서 구강암수술‘코만도’등 36년간 외과수술 전파은퇴후 미국 돌아간 뒤 20억 최신 암치료기 예수 병원에 보내주고 자신은 응급실당직으로...
"심장과 폐 기형에 얼마 못 살고 죽는다는데….낙태권유 뿌리치고 봄에 '공주' 낳아 그 해 겨울에 이별 요즘도 '생일상' 차려" ▲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뱃속의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 단지 몇 개월, 길어야 몇 년밖에 살지 못한다고 한다면 당신은 그 아이를...
강직성 척추염으로 발밑만 보던 김춘광씨의 '기적'10대 후반부터 증세 나타나… '폴더형 휴대폰'처럼 굳어져치료 맡았던 김기택 교수팀, 7개월간 7번 대수술로 펴내… 세계적으로도 유례 드물어 경북 안동 시골 마을에 살던 김춘광(50)씨는 지난 30년간 척추가 앞으로...
 1  2